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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몸살 27호_가을] 기획(1) 여성 청년과 집, 그 너머

[허밍버드클럽_칼럼]  여성 청년과 집, 그 너머

-  자원활동가 김별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이사를 자주 다녔다. 어느 동네로 가나 집 근처에는 부동산이 꼭 두 곳쯤 있었고 지금 사는 곳도 예외는 아니다. 간판을 비롯해 거리의 글자를 보이는 대로 모조리 읽던 어린 나는 부동산 유리창에 붙은 종이들도 빠짐없이 읽곤 했다. 때때로 부모님을 따라 간 부동산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대화를 뒤로 하고 또다시 벽에 붙은 종이들과 지도만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대체로 내가 읽어내던 글자나 들려오던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이해되기 마련이었으나 어쩐지 ‘집’에 대한 것들은 줄곧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제작: 페이퍼워크


그러다 지난 여름 청년 주거권 운동 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의 주거 교육을 통해[각주:1] 주거와 관련된 용어부터 집을 구할 때 필요한 절차와 서류에 대해 처음으로 배웠다. 그제서야 막연하기만 했던 ‘집 구하기‘라는 미지의 영역에 한 발 내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을 제외하면 집을 구하는 방법, 계약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주거는 건강, 안전 등과 연결된 중요한 권리이자 주거 형태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학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영역이다. 결국 대부분 검색, 온라인 커뮤니티, 지인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정보를 얻게 되어 정보의 편차도 크고 어려운 상황을 마주쳤을 때 대처하는 것도 쉽지 않은 만큼 관련 정보를 미리 알고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청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주거 교육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초년생일수록 집구하기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주거에 대한 고민과 불안은 집을 구하기 직전이나 이미 자취를 하고 있는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 사이에서 잠시 회자되는 것에 그치기 쉽다. 또는 전세 사기와 같은 피해를 직접 겪고 나서야 도움을 찾게 되는 현실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고, 너무도 당연하게 혼자 감당해야 했던 주거의 문제는 서울 및 수도권을 생활 반경으로 두고 있는 20대 여성 청년 1인 가구에게 더욱 더 큰 무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서울로 모든 인프라가 밀집되는 한국 사회에서 서울의 청년 인구 비율은 30%를 넘길 정도로 높다. 절반 이상이 1인 가구이며 여성 청년은 그중 전체의 70% 이상으로, 남성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보인다.[각주:2]  특히 비수도권에 사는 20-24세 여성의 수도권 이주는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즉, 서울 및 수도권에서 20대 여성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대표적인 인구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각주:3]

 여성 청년 1인 가구가 경험하는 주거 불안은 단순히 ‘집세가 비싸다’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임대인과의 갈등, 열악한 주거 환경, 일상 속 범죄 불안 등 복합적이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 청년이 교통 접근성이나 생활 편의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집을 선택하는 만큼 집구하기의 우선 순위는 안전으로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다. 월세와 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안전을 확보하려는 선택은 곧 더 높은 주거비나 생활비로 이어지며 늘어난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 더 긴 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특히 여성 청년에게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정서적 안정감을 갖기 어렵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는 고립감과 우울로까지 쉽게 이어진다. 실제로 최근 여러 연구에서 여성 청년 1인 가구일수록, 수도권에 거주할수록, 그리고 사회적 고립감이 클수록 우울감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결과가 반복해서 보고되고 있는 추세다.[각주: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청년의 주거 불안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여전히 개인의 선택과 그 결과로서만 취급될 뿐이다.

현존하는 청년 주거 정책의 대부분은 만 19~39세의 단독 가구 또는 신혼부부, 정규직 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적인 소득을 갖춘 상태, 세대 분리 및 신용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반면 비정규직 비율과 시간제 근로 비율이 높고[각주:5] /사 이분법의 경계를 넘어 집에서 쉼과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여성 청년의 경우 위와 같은 정책 요건 충족 및 소득 증명이 어렵다. 또한 가사와 돌봄 등 가족 내 역할을 자연스럽게 짊어지며 원가족과의 분리가 쉽지 않기에 자산 형성이 늦어지는 특징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 청년에게 집이란, 단순히 물질적 공간의 의미를 넘어 가부장적 이성애 가족 규범을 벗어나 자율성과 독립을 구성하는&자신만의 집&을 만드는 행위[각주:6]같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현재의 청년 주거 정책은 남성 청년과 다른 여성 청년의 생애주기와 삶의 양식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채 설계되어 있다.

민달팽이유니온 강의_허밍버드클럽


지난 9월 22일, 국무조정실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민주권정부 청년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였다. 그 중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월세지원 사업’을 계속사업 전환 및 지원 대상 단계적 확대, 공공임대·분양주택 청년 선호 지역에 확대,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권리관계 분석 컨설팅과 ‘찾아가는 주거상담소’ 강화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이외에도 청년을 단순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의 주체로 세운다는 명목 아래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내에 전문분과 설치, 정부 위원회에 청년위원 10% 이상 위촉 계획과 더불어 연말에는 ‘제2차 청년정책 기본계획(2026~2030)’을 수립하고 청년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계획도 함께 내놓았다.

 이처럼 청년을 단순한 주거 취약계층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주체로 바라보겠다는 정책 방향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기존 주거정책인 주택지원, 공급지원, 주거비지원, 기타지원(부동산 중개보수 및 이사비 지원 등) 등 숫자 중심의 평면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이러한 발표에 앞서 9월 19일 있었던 [2030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가장 가까워야 할 청년세대끼리 남녀가 편을 지어 다투는…. 괜히 여자가 남자 미워하면 안 되지 않나.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건 이해하는데….” 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하며 현정부 역시 젠더 감각이 부재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말 청년을 주체로 세우고자 한다면, 연령이라는 기준을 넘어 젠더, 장애, 빈곤, 노동 형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그중에서 여성 청년 1인 가구 ,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며 안전에 대한 젠더화된 공포와 그로 인한 주거 격차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여성 청년의 경험과 언어가 중심이 되어 담론을 확장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때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어떤 논의도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청년은 결코 연령만 정의할 수 있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청년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다양한 얼굴들 속에서, 여성 청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바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1. 허밍버드클럽은 매월 주제를 선정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강좌를 듣는다. 지난 7월의 주제는 주거였으며 강좌로 민달팽이유니온의 주거교육을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https://rights.or.kr/1779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서울특별시 청년 통계(2023), 2025. 6 [본문으로]
  3. 시사IN, [청년인구 집중의 핵심 키워드, 20대 여성의 상경], 2023.11 [본문으로]
  4. 임가영송아영.(2024).청년 1인 가구의 주거 불안이 우울 증상에 미치는 영향 -임대인과의 갈등 관계와 주거 안전 인식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사회복지정책, 51(4), 135-158. [본문으로]
  5. 이민아. (2023). 노동시장에서의 위기심화와 청년여성 자살률. 한국여성학, 39(4), 31 - 66. [본문으로]
  6. 백미록. (2023). 20~30대 비혼 여성들의 주거 경험과 주거 취약청년 담론의 재구성: 청년주거정책 제도화 과정 분석을 중심으로. 젠더와 문화, 16(1), 43-7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