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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활동 소식

[칼럼] 모두의 마라톤을 위하여...

화성효마라톤 대회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칼럼] 모두의 마라톤을 위하여...
- 랄라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시간이 날 때마다 달린다
. 요 몇 년 사이 갖게 된 취미로, 달리는 것이 일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일 년에 1-2번은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한다. 유아차를 밀고 뛰는 아빠, 가이드 러너와 함께 온 시각장애인, 어린이 참가자, 나이가 많은 또는 적은, 친구, 연인과 함께 온 참가자 등등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달리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인다.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대회 당일은 모두 같은 출발지점에 선, 마라톤을 좋아하는 모두 같은 러너일 뿐. 마라톤으로 모두가 평등해진다. 최근에는 지인과 화성 효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러나, 화성 효 마라톤 참가 대상을 보고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바로 화성 효 마라톤 참가 대상 기준 때문이다.

화성 효 마라톤 참가 대상은 1, 2인 이상, 커플런, 가족런(3-5), 삼대런(5인이상)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 참가 자격을 기준으로 보자면 가족은 3인 이상이어야 하며, 커플런은 남·녀로만 제한되어 있다. 성별이 같은 참가자가 커플로 신청하면 취소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다양한 신청 대상으로 구분되어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기준에서 누군가의 관계는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처럼 동성으로 구성된 가족은 가족런으로도, 커플런으로도 신청할 수가 없다. 최근 늘어나는 비혼, 동거, 무자녀, 동성 커플 등 2인으로 구성된 다양한 관계는 이 대회의 참가 규정상 가족에 속하지 않는다. 함께 참가하기로 한 지인도 한부모 가정으로, 이 대회 가족 기준에서는 배제되는 대상이었다. 마라톤의 출발선은 평등했지만, 참가 신청 대상에서 누군가의 관계는 제외되고 있었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신청 기준 앞에서 느낄 차별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화성시 체육회, 경인일보, 후원하는 화성시 등 게시판에도 올리고 메일도 보냈다. 그러나, 질문에 답하지 않는 곳들이 대부분이고, 이미 참가 대상 선정이 끝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평등을 위해 힘써야 할 언론사와 지자체가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고 차별적인 상황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우려스럽다. 언론, 지자체 등 공공의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제시하는 기준은 시민들에게는 더 큰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가족의 형태와 구성, 관계 맺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가족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가구 중 1·2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62.1%로 새로운 가족의 기준이 되고 있다. 사실혼, 비혼, 동성혼, 동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비친족 가구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 수는 전체 가구수의 2.5%에 해당한다.(2025년 국토정책 브리프) 이런 상황에 발맞춰 2023년 국회에서는 생활동반자법 등 혼인·혈연 사유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가족 형태, 관계의 다양성에서 오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법과 제도, 사회적 변화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들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움직임, 시대적인 변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할 곳은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터, 여가 생활 곳곳이다.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 배제된다면 그것은 더 큰 차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화성 효 마라톤의 차별적 참가 기준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누군가는 그냥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참가 기준이지만 누군가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자신의 가족 형태를 부정하는 기준으로 작동된다. 그 무게감을 마라톤을 주최하는 화성시 체육회, 경인일보, 후원하는 화성시 등이 알고는 있을까.

최근 마라톤을 좋아하는 시민들이 늘면서 대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찾는 대회라면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라톤을 즐길 수 있도록 차별적인 기준은 이제 그만 사라져도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