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권하고 계세요?] “엄마, 저거 감시카메라지?”
이제 갓 6살이 된 아이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말 그대로 세상에 자기 혼자 인 냥 온 세상을 쿵쿵 거리며 뛰어다닌다. 자동차가 오든 말든 길거리를 활보한다. 온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모두 잘 잤어요?’ 라고 외치는 아이.(우리 집은 7층) 다른 이들이 보면 참 귀엽다 여길 테지만 엄마인 나로서는 참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공룡 소리로 울부짖고, 아이는 생쥐처럼 내 목소리가 안 닫는 곳을 찾아 피해 다닌다. 아이와 나의 일상은 울부짖는 공룡으로 시작해서, 음치 소프라노의 고성으로 막을 내린다. 이렇게 하루 종일 아이와 꼬리잡기 하듯 실랑이를 할 때면 내가 ‘인권 활동가’ 인 게 부끄럽다. 나도 모르게 내 지르는 고성, 삐지기, 밥 안 먹을 때마다 단 걸로 유인하기, 아래층 할머니가 올라온다고 겁주기, 그렇게 하면 키 안자란다고 위협하기. 내가 아이에게 내 뱉는 말은 ‘인권’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쯤 되는 ‘협박’과 ‘위협’의 연속이다. 그렇게 날마다 ‘육아는 힘들어’를 입에 달고 산다.
아이는 갓 돌이 지난 14개월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너무 일찍 어린이집을 보낸다는 미안함 마음에 어떤 어린이집에 보낼까 고민이 많았다. 어린이집에 보낸 후엔 걱정이 산더미였다. 가끔은 아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자기 의사를 아직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TV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어린이집 폭력 뉴스를 보면서 늘 걱정스러웠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어린이집 생활. 그 공간에서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잘 먹고 있는 것인지, 다치지는 않는지. 어린이집을 보내고 얼마 안됐을 무렵에는 아이를 찾으러 가면 괜찮은지 먼저 살폈다. 아이가 어떠한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걱정의 보따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어린이집에 대한 ‘불안’과 ‘믿음’ 사이의 시소는 늘 오르락내리락 했다.
가끔은 어린이집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최근 CCTV 의무설치 법안 통과를 보면서 그때가 생각난다. 불안과 믿음이 오르락내리락 하던 순간 말이다. 언론을 통해 아이가 선생님의 손에 맞아 날아가는 영상.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 그것을 지켜보는 CCTV. 그리고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는 우리들. 사랑 받고, 존중 받아야 할 아이의 폭력 영상이 하루 종일 무한 반복 되는 것을 보면서, 폭력에 대한 끔찍함 보다는 여과 없이 보여 지는 영상 속 아이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언론은 연일 영상을 노출 시키며, ‘어린이집 학대를 위해서는 CCTV 설치가 필요하다’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언론의 속도에 발맞춰 재빨리 CCTV의무화가 담긴 영유아 보호법안을 통과 시켜버렸다.
▲ 전국적으로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아동 폭행 신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21일 대전 서구의 한 어린이집이 이를 예방하고자 실내에 CCTV를 설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가장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은 어린이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폭력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용납할 수 없다. 당연히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른 교사는 처벌되어야 하고, 극심해지는 어린이집 학대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콕 짚은 것처럼 ‘CCTV’말고, 실효성 있는 대안 말이다. 왜 학대가 시작되었을까?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일까? 하지만, 영상 속 CCTV는 이미 누가 지켜보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지 않은가? 폭력은 지켜보고 있든, 없든 일어났다. 작은 새처럼 떠는 아이들을 보면, 그 폭력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님은 명확하다. 이 사건을 통해 CCTV는 현장의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도구이지,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럼 진짜 예방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진짜 예방을 위한 ‘대안’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그래서 참 답답하다. CCTV를 하루 종일 쳐다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엘리베이터에 탄 어느 날, 아이는 ‘엄마, 저거 감시카메라다’ 라고 말했다. ‘너, 감시 카메라 어떻게 알아?’, ‘응, 우리 어린이집 놀이터에도 있어. 뭐 하는지 보여주는 거야’ 라고 그 기능 역시도 알고 있었다. 이미 아이는 알려주지 않아도, 어린이집 생활과 매체, 엄마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CCTV의 기능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CCTV가 아이가 생활하는 교실에 설치되면, 감시카메라가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음을 아이가 먼저 알 것이다. 그리고 CCTV의 눈이 누구를 지켜보고 있는지 역시도, 아이가 먼저 알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가 관찰의 대상이 된다는 것, 그 영상이 고스란히 보관된다는 것이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폭력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의 정서와 미래 때문일 것이다.
“엄마, 저거 감시카메라지?”…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자라온 시절보다 아이의 사생활은 더 많이 노출 될 것이다. 길거리 곳곳의 감시 카메라, 자동차에, 건물 곳곳에, 골목에, 이제는 아이가 생활하는 실내에까지. ‘감시’와 ‘관찰’이 당연시 되고, 일상화 되는 시대가 왔다. 미래는 더욱 감시와 관찰이 촘촘해질 것이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다. 촘촘해지는 감시와 관찰이 아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 실내까지 들어온다니 말이다. 아이의 사생활과 개인정보가 가감 없이 보여 지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오늘 한 아이가 새로 왔는데, 오자마자 두리번거리는 거야. ‘왜 그래?’ 물으니, ‘여기는 감시 카메라 없나 봐요 라는 거 있지? 이미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니까”. 이미 아이들에게 너무 익숙해진 풍경. 아이들의 사생활과 인권은 실종되어 버렸다. 어린이집 폭력과 학대에 멍들고, 개인정보,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CCTV가 대안이 되는 세상. 아이들은 누구를 믿고, 누구와 함께 자라야 할까?
어린이집 폭력은 한 어린이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집이라는 보육현장의 문제이다. ‘믿음’과 ‘신뢰’가 무너져버렸다. 부모와 선생님은 대립하고, 그곳에서 아동의 인권은 없다. 이렇게 ‘불안’과 ‘불신’이 쌓인 어린이집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불신을 해소해야 하지 않을까? ‘믿음’과 ‘신뢰’의 회복이 필요한 때이다. 어린이집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고, 아이들의 생활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 것. 그것은 CCTV로 투명하게 보자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 운영에 서로 소통하고, 함께 결정하자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 원장이 함께 하는 운영위원회를 통해서 함께 결정하고, ‘믿음’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박봉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인원수 대비 많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아동 인권에 대한 교육과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는 원장, 교사, 부모들의 훈련도 필요하다. 아동 인권에 대한 사회적 약속과 약자인 아동에 대한 폭력과 일상적인 위험에 대한 노출 등을 돌볼 수 있는 국가의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요건들이 갖춰지지 않는 하에서 CCTV만을 설치한다는 것은 공보육을 책임지고, 아동의 인권을 모색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CCTV로 떠넘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아이는 날마다 자기 전, ‘엄마, 아까 왜 나한테 소리 질렀어?’ 라며 묻는다. 아이는 꼭 그랬다.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잘못을 일깨워주듯. 매일 밤이 되면 엄마가 왜 자신에게 화를 냈는지 물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아도 여러 번 이야기를 하면 자신은 알아들을 수 있다’며 나를 타일렀다. 아이는 나보다 어른이었고,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지켜주고, 함께 해주고, 배려해주고,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어른의 사회가 문제이다. ‘감시’와 ‘관찰’이 대안이 아니라, 필요한 건 ‘믿음’과 ‘신뢰’가 담긴 대안임을 자기 전 아이가 줬던 타이름처럼, 우리가 늦게 깨닫게 되지 않길 바란다.
2015. 3. 3. 미디어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미디어스] 가끔은 어린이집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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