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시청 홈페이지 캡쳐
몇 해 전 유럽 어느 나라에서 장거리 버스 표 예매를 하다가 당한 일이다. 언어가 서툴러 예약 시간과 날짜를 엉뚱하게 말했다. 날짜와 시간을 제대로 말하며 재예매를 요청했다. 그러나 매표원은 반환금을 내준 후, “없다”라고 말했다. 눈에 띌 정도로 고개를 꺾으며 너를 쳐다보고 싶지 않다는 신호도 보냈다.
매몰차게 거절당할 만큼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호흡을 가다듬고서야 깨달았다. 지금 저이는 ‘내 존재만으로 나를 싫어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인종차별임을 느꼈다. 수치심은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존재’만으로 박탈당해본 경험이 그 이전에는 없었다. 그것은 어찌해 볼 수 없는 수치심이었다.
2014년 12월과 2012년, 수원에서 시체 훼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모두 중국동포였다. 사건은 ‘조선족 포비아(공포)’와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공포와 혐오는 단순히 사람들의 말과 말을 건너는 수준이 아니라 관계기관 범죄예방 대책에도 담겼다.
수원시는 ‘범죄예방 대책’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집중단속(전수조사)과 시민제보를 국정원 등 관련기관 협조 하에 구축한다’는 것이다.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임대차계약 금지를 검토하고 수원 관내 기업 취업 외국인 실태조사를 통해 사실 확인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외국인 밀집지역에 특별방범기동순찰대를 편성 운영하는 등 범죄대책이라기보다는 미등록 이주민 대책으로 보는 게 마땅할 정도다.
이런 마당에 염태영 수원시장은 영통구 ‘열린대화’ 행사에서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발언을 했다. “불법 체류자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에 쓰레기가 제일 엉망으로 버려진다”며 “검은 봉투에 싸서 무단투기하는 곳이 그런 동네다”라고 말했다. 이어 “영통구는 외국인이 7천명 정도 살지만 중국인은 1천명이 안 된다”며 “영통구는 블루칼라가 아니라 화이트칼라 위주의 외국인이 사는 모양이다.
때문에 영통은 데이터 상으로 다른 구보다 안전한 동네”라고 말했다. 그이의 발언을 듣고 있으니 유럽 어느 국가에서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주민 차별과 육체노동 차별까지 고른 차별 의식이 내포된 발언이었다. 말의 문제라기보다 생각의 문제다.
비율로도 내국인 범죄가 더 높고, 미등록보다 등록 이주민 범죄가 더 높다는 통계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불법 인간, 낯선 이방인 혐오에 포획된 마당에는. 염태영 수원시장은 문제가 되자 관련자들에게 유감을 표현했지만, 공개된 자리에서 마음의 빚을 덜 수 있는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았다. 관련 대책에 대한 검토도 미루고 있다.
한국의 불안한 노동시장 정책이 미등록 이주민의 책임일까. 참혹한 범죄 가해자가 이주민의 얼굴일 수만 있을까. 염태영 수원시장의 발언과 수원시 대책은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뿌리 깊은 혐오와 차별이 또 다른 범죄의 신호탄이 되면 어쩔 텐가. 인종혐오 발언 시장이라니, 어느 국경에서 당신도 이방인이다.
2015. 1. 20. 경기일보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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