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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칼럼

[맹랑길의 육아일기⑤] 엄마에게 봄이 왔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요즘 시대는 마을은커녕 아이가 엄마, 아빠 얼굴보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맹랑길님 역시 육아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물론, 아이를 통해 새삼스레 배우는 것도 많은 요즘입니다. 맹랑길님의 육아일기를 살짝 엿볼까요?





정토회 법륜스님의 책이나 글을 보면 아이는 무조건 세 살까지 어린이집이나 남의 손이 아닌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얼마 전 이웃집 새댁 남편이 법륜스님 강연에 갔다가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것만은 지켜보자고 새댁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었단다. 새댁은 일과 공부로 너무 바쁜 사람인데 말이다.
 
나도 처음 이 내용을 접하고 결혼을 안 하신 스님께서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실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그 말은 즉, 세상 사람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는 무슨 도리 같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리, 좋다. 지켜서 나쁠 거 없다.
세 살까지는 아이의 기초가 마련되는 시기이고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을 엄마와 나누고 함께 공유하는게 좋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불안하지 않고 안정감 있게 커 나가는 데 엄마만큼 좋은 상대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상유가 세 살까지는 어린이집 같은 곳에 기대지 않고, 엄마인 내가 먹이고 키우고, 자라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내 아이의 첫 선생이 되어볼테야, 라고 굳게 다짐했던 시간은 2년여를 고스란히 던져 헌신한 나머지 더 이상의 에너지가 없다는 판단과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에 묻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내 안의 갈등은 있었지만 결정하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지난 겨울, 허구한 날 내리는 눈과 추위로 집에 갇혀 있는 시간이 참 답답했다. 그렇다고 못나갈 나도 아니었지만 외출 한번 하려면 씻고, 입고, 챙기고 등의 준비과정이 너무 귀찮아 포기한 적도 많았다. 무조건 밖에 나가자고 보채는 아이도 안스러웠고, 그런 아이와 잘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는 많이 지쳐있었다.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나는 적잖이 실망을 했다. 집에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은 포화상태라 갈 수 없는데다 아는 정보가 없기 때문에 어떤 어린이집이 괜찮은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후배의 소개로 믿을만한 가정어린이집을 알게 되었지만 매일 자가용으로 등하원을 시켜줘야 하는 부담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에 대기를 올린 게 순서가 되어 3월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어린이집이 결정되면서 나는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었다. 며칠 후면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내 시간이 주어지겠지, 하는 생각이 그 어떤 희열을 주는 듯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도 생각해 보았다. 일단 큰 그림은 나중에 그리기로 하고,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꼽아봤는데 뜻밖에도 ‘쉼’이라는 단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내가 측은해 보였다. 육아라는 게 남들이 하고 우리 엄마들이 다 하니까 그저 세상 엄마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사자가 되면 그 각각의 어려움이 현실을 슬프게 만든다. 그 누구에게 말하는 것조차 구차해 포기하는 게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것. 물론, 나와는 정반대로 육아의 힘듦이나 어려움을 슬기롭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엄마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 환경, 먹거리 등 이런 고민들을 함께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친구들과 만나자면 거리도 멀고, 늘 아이를 매달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나를 더 외롭게 했던 것 같다.
 
하루에 몇 시간이지만 아이가 엄마와 분리되어 어린이집에서 느낄 감정들을 생각하면 머리 속이 복잡해지긴 한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아이와 24시간 붙어서 잘 놀아주고 보살피는 엄마도 좋지만 에너지가 가득 충전되어 더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아이를 대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가 짜증이 있거나 화가 난 상태라면 아이를 대하는 데도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놀고 먹고 하는 시간에 엄마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어느 때 보다 환영하고 반기며 놀아줘야 한다”고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무작정 쉬고, 놀기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들었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왔을 때 열렬히 환대해 주는 일, 그리고 그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제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2013년 봄이 이렇게 왔다.

■ 글 : 길은실 (벗바리이자 다산인권센터 육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