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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칼럼

[맹랑길의 육아일기④] 아이와 환경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요즘 시대는 마을은커녕 아이가 엄마, 아빠 얼굴보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맹랑길님 역시 육아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물론, 아이를 통해 새삼스레 배우는 것도 많은 요즘입니다. 맹랑길님의 육아일기를 살짝 엿볼까요?



아침산책길, 아빠와 빨간 열매를 맛보다.



아이엄마들과 만나 수다를 떨거나 간식이라도 먹는 날이면 그날 모인 집에서는 물티슈가 수북이 쌓인다. 종이휴지를 쓰거나 걸레를 빨아 닦아도 될 일도 물티슈를 쏙쏙 뽑아 사용하는 일이 너무 대수롭지 않다. 특별하게 더러운 것을 닦은 것도 아니고, 작은 오물 하나 닦았을 뿐인데 물티슈는 제 수명을 다하고 그만 휴지통으로 가버린다. 질긴 저 물티슈가 썩어 땅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나도 사용을 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하다.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는 것도 나쁜 습관이지만 한번쯤 물로 씻어 재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사용 안할 수 없지만 가능한 적게 사용하는 게 아이를, 지구를 위해서 옳은 일이지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별의 수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 전기, 물 등을 떠올리면 나는 소비를 위해 태어난 인간 같다. 한 사람이 온전하게 먹고, 씻고, 자고, 읽고, 숨 쉬며 살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묵인하고 있는 건지 모일 일이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종이기저귀를 착용하고, 각종 유해물질이 들어있는 식품과 용품들을 먹고, 사용하며 자란다. 집안에서는 가전제품이 품어내는 전자파, 집밖에 나가면 자동차 매연으로 숨이 막힌다.
물건들을 생산하기 위해 또 다른 쓰레기를 배출하고, 자본 속에서 거래를 하는 동안 이 땅의 환경은 조금씩 썩어가고 있다.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쓰레기와 우리가 사용한 오물들은 저 먼 바다에 투기되기 일쑤고 버리기 위해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지금의 현실이다. 부모세대와는 다른 환경, 시대 속에서 살아야할 아이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막막하고 미안해질 일인데도 딱히 지구와 아이들을 위해 노력들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커다란 딜레마다.

지난해 겨울, 우리 가족은 수원 칠보산 자락에 이사를 왔다. 낯설고, 아파트 단지의 삭막함도 있었지만 단지 밖을 나가면 그동안 내가 도시에서 살면서 접하지 못했던 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칠보산의 봄과 여름, 가을을 만날 수 있었고, 두 번째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틈만 나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칠보산 자락으로 나갔다. 시원한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앉아 편하게 쉴만한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산 아래 풀과 나무와 숲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었다. 그리고 이따끔 아이 볼을 스쳐가는 바람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더운 여름날, 어김없이 산책을 하고 돌아오다가 아이는 더위에 지쳐 잠이 들었다. 참매미가 요란하게 울고 있었는데 나는 문득 수많은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곳에 사는 사람들은 휴일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 
남편은 내 물음에 집에서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 쐬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거라고 했다.

수려한 자연환경은 아니어도 풀도 만져지고, 주변의 농사 구경도 하고, 바람도 느껴지는 이 환경을 왜 함께 누릴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에어컨 바람보다는 백만 배 몸에 좋은 공기를 마시며 더 많은 이웃들을 산책길에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우리나라 어디를 다녀도 공사판이고, 매일같이 산과 강이 사라지고 있다해도 일상생활에서 아이와 함께 지키는 작은 실천들이 저마다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한 일 때문에 저 먼 바다의 고기들이 더러운 쓰레기와 살지 않아야 하고,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파괴되지 않고, 북극의 백곰들이 오랫동안 터를 잡아 살아가기를 바래야 한다.
 
그리고 제주도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가 왜 지켜져야 하는지, 밀양의 송전탑 건설로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공동체가 파괴되어 평생 농사 지으며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지금 이 땅에서 송전탑 때문에 어떤 싸움을 하고 계신지 잊지 말고 꼭 이야기해 줘야 할 것이다.
 

■ 글 : 길은실 (벗바리이자 다산인권센터 육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