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요즘 시대는 마을은커녕 아이가 엄마, 아빠 얼굴보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맹랑길님 역시 육아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물론, 아이를 통해 새삼스레 배우는 것도 많은 요즘입니다. 맹랑길님의 육아일기를 살짝 엿볼까요?
현대판 곶감 같은 스마트폰은 우는 아이는 물론이고, 때 쓰고 말 안 듣는 아이까지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괴물같지만 결코 손에서 버릴 수 없는 존재 스마트폰. 나 역시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친정엄마에게 꾸지람을 듣는 데도 그 몹쓸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 엄마들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사용은 흔한 일이 됐으며 그것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 되었다. 급한 볼 일을 보거나 집안일을 할 때, 아이의 방해 없이 온전하게 일을 진행하고 싶을 때 건네는 스마트폰에는 아이를 유혹할 수 있는 각종 동영상, 노래, 춤 등이 지나간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서 엄마가 밥을 제대로 먹고자 한다면 효과는 만점이다.
성인에게도 편리하고 매력적인 스마트폰이 어린 아이들에게도 신기하고 매력적인 물건은 틀림없다. 어린 상유도 스마트폰 영상에 반응을 하고 한참을 터치하다가 마음대로 안되면 바닥에 던지기 일쑤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은 상유의 장난감이 되곤 한다.
어떤 아이엄마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자 반응도 잘하고 한 시간 이상 집중을 하길래 자주 놀게 해줬다가 발달장애로 이어지는 사례를 TV에서 본적이 있다. 아주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디 스마트폰뿐이겠는가. 컴퓨터게임과 TV시청 등 자제와 절제가 필요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아직 뇌가 성장하기 이전의 아이들에게 한쪽으로만 자극을 주다보면 뇌의 불균형이 온다고 한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게임이나 영상물에만 빠져있는 아이들이 난폭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가 많은 것도 원인을 살펴보면 이런데서 비롯될 것이다.
TV없이 살고 있는 우리집은 처음에는 적막함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들이 습관에 젖어 살듯이 그것도 익숙해지자 적막함과 고요함을 나는 참 좋아하게 되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상유가 태어나서 필요 이상의 소음과 영상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집에만 TV가 없지, 집을 나서는 순간 어딜 가나 쉽게 만나는 것도 TV이다. 라디오를 켜서 시사뉴스프로그램도, 유행가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도 같이 듣고, 상유가 좋아하는 동요를 듣는 시간도 꽤 즐기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 TV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문제의 시작은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다. 책을 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충족되지 않은 상유의 욕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외출을 하고 놀이터를 가긴하지만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외출만이 해결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자꾸 유혹하곤 한다.
문제의 시작은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다. 책을 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충족되지 않은 상유의 욕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외출을 하고 놀이터를 가긴하지만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외출만이 해결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자꾸 유혹하곤 한다.
가끔은 아이들 모두가 좋아한다는 '뽀로로'나 실컷 보여주며 좀 쉬어보자는 엄마의 이기적 생각과 아이의 건강한 생활 사이에서 매번 갈등이다. 건강한 아이의 조건이 TV가 있고 없음이 아니지만 없던 물건이 집에 생기면 그 물건에 빠져 사는 시간이 많고 다시는 없애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더 고민스럽다. 아이 뿐 아니라 부모 역시 그 유혹은 피해갈 수가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와 나누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이나 TV 같은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아이와 공감하고,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고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힘든 일에 맞닥뜨렸을 때 분명 바탕이 되고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이 될 거라 나는 믿는다.
아이 앞에서 핸드폰으로는 통화만 해보자는 엄마의 다짐이 이번 글로 하여금 좀 더 오래갔으면 한다. 그 시간에 상유와 몸을 부딪히며 까르르 웃어도 보고 없는 실력이지만 목청껏 노래도 실컷 불러줘야겠다.
■ 글 : 길은실 (벗바리이자 다산인권센터 육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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