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요즘 시대는 마을은커녕 아이가 엄마, 아빠 얼굴보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맹랑길님 역시 육아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물론, 아이를 통해 새삼스레 배우는 것도 많은 요즘입니다. 맹랑길님의 육아일기를 살짝 엿볼까요?
아침을 먹고 잠을 자던 상유가 깨서 울고 있었다. 얼른 달려가 아이를 꼭 안아줬지만 아이에게는 이미 어떤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들의 단잠을 깨운 건 저 하늘을 나는 전투기 비행 소리였다.
공군비행장이 있는 수원 끝자락에서 살던 나는 그 전투기 소리에 익숙하다. 지난 겨울, 나는 비행장과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는데 전투기 소리가 그동안 듣던 소리와 차이가 있었다. 예전에는 먼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였다면 이제는 전투기 한번 지나갈 때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만큼 아찔하고 요란한 굉음이었다. 전쟁이 난다면 이런 소리를 하루에도 수십 번 들으며 생을 마감할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하게 만들었다.
먼 훗날의 이야기겠지만 아이가 알아듣고 질문할 때 쯤 책과 학교가 아닌 엄마에게 전쟁이 뭐냐고 물어오면 나는 어떤 식으로 답해줘야 할까.
국가 간 전쟁을 하는 이유 따위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누구도 누군가의 생명을 함부로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나 역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배운 말과 정의는 이렇듯 생명을 존중하나, 지구 곳곳에서 전쟁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장난감의 세계는 놀라웠다. 여자아이에게는 인형놀이나 소꿉놀이, 남자아이에게는 구슬치기나 딱지치기가 전부였던 나의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난감은 진화하고 있었다. 주방놀이, 병원놀이, 학교놀이 등 없는 놀이가 없을 정도로 아이들 장난감은 어른세상의 축소판이었다. 전쟁놀이 장난감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조금 위안을 삼았다.
딱히 가지고 놀지 않아도 크는데 지장 없을 것 같은데 엄마들은 개월수 성장에 따라 다양한 장난감과 놀이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나 역시 아이가 심심해 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욕심으로 구입한 장난감이 집안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 늘 구입하고 후회하는 편이다.
요즘 나오는 장난감이란 게 대게 플라스틱 제품이 많은데 과연 저것들이 아이의 감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다. 환경오염은 물론이고, 모든 사물을 입으로 가져가는 구강기 시기에는 건강도 걱정된다. 아이의 정서를 생각하면 나무로 된 장난감을 찾으면 좋겠지만 부모의 주머니 사정은 언제나 좋지 않아서 장난감을 살 때마다 고민될 뿐이다.
상유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그 집의 아이 엄마가 장난감 칼을 상유에게 꺼내주었다. 버튼을 누르면 음악도 나오고, 무슨 명령조의 말도 나와 아이의 시선을 끌만한 장난감 칼이었지만 나는 이내 불편해졌다. 친구 엄마가 눈치 채지 않게 조용히 칼을 내려놓았다.(이 엄마에게 장난감 칼과 총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만간 이야기할 계획이다)
딸이었다면 덜 했을 장난감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남자아이들에게 장난감 칼과 총은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칼과 총이라는 게 아무리 장난감이어도 무기의 형태이고, 그것을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이들은 그 행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따라한다. 영화나 TV, 인터넷게임을 통해 폭력이 모방되고, 모사된다.
좀 더 평화적인 놀이감이 없을까? 늘 질문하면 돌아오는 대답, “자연”이라는 위대한 놀이가 있지 않은가. 도시의 아이들에게 자연과 만나는 일은 어렵거니와 대부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은 자연보다는 키즈카페나 테마파크, 실내수영장 같은 곳을 찾는 일에 익숙해졌다.
어느날 갑자기 지하철에서, 길을 걷다가, 묻지마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이 세상이 엄마인 나는 벌써부터 걱정거리가 참 많다. 어디 그뿐일까. 도로의 즐비한 차는 뛰어노는 아이들을 위협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당하는 왕따는 어른들의 전쟁만큼이나 큰 상처가 된다. 우리가 버려야할 폭력이란 게 생활 속에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언젠가 아이가 장난감 칼과 총에도 관심을 보일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을 사달라고 조르고 애원할지도 모른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왜 무기장난감을 사 줄 수 없는지 겨우 두 살인 아들의 눈높이에 맞는 답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부터 준비해둬야겠다.
■ 글 : 길은실 (벗바리이자 다산인권센터 육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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