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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칼럼

[일본에서 부치는 편지 ②] ‘그나마 다행’이라고.


우린 그녀를 '초미녀 작가'라고 부릅니다. 사실, 그녀의 첫 인사가 그랬다고 우린 주장하지만 그녀는 결단코 자신이 먼저 초미녀 작가라고 소개한적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지금 일본에 갔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매체편집팀장의 임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훌쩍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녀를 놓아 줄 수 없었기에 이렇게 좌충우돌 초미녀 작가의 일본생활을 <다산인권>을 통해 만나려 합니다. 그녀는 박선희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무조건 다이나믹하게 들려드리기 위해 아무 버스에나 올라타 멀리 다녀와 보기도 하고 하루 종일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했는데 큰 소득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평범한 존재의 고요한 일상이지요. 이거 정말 낭패인걸,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그래도 유유히 즐긴 기억, 그것은 조용히 간직하기로 하고 대신 일본 생활 3개월 만에 얻게 된 고민다운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고민은 어쩔 수 없이 아이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걱정과 달리 적응을 잘하는 듯해 안도했습니다. 유치원 첫 등원 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데리러 갔는데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오는 아이의 얼굴이 밝아 어찌나 다행이던지, 환한 얼굴로 내일 또 유치원 오고 싶다고 말해 저는 그만 감동까지 받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다닐만한 유치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을 직접 돌아다니며 입학이 가능한지 알아볼 만한 언어실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저 대신 남편이 퇴근 후 집에 와서야 근처 유치원 몇 곳에 전화로 문의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거절을 당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가 석연찮았습니다. 예를 들면 처음엔 자리가 남았으니 입학이 가능하다고 말하더니 나중엔 스쿨버스에 남는 좌석이 없어서 어렵겠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거절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 통화를 하는 동안 남편의 억양에서 외국인임을 느끼고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한국인이라고 하자 그러면 적응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에둘러 거절을 했고 어떤 곳에서는 단호하게 자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거절을 당한 유치원을 하나씩 지워나가다보니 집 가까운 곳은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안되겠다 싶었던 남편은 전화 연결이 되자마자 다짜고짜 자기는 어느어느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인데 아이를 그 유치원에 보내고 싶다, 내가 다니는 학교와 가까우니 마음 놓고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정중하게 자리가 있으니 내일이라도 오시면 등원이 가능하다고 답해왔습니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우리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고나 할까요? 지금 아이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이 바로 그곳입니다. 등록을 위해 직접 유치원을 찾아가는 날, 남편은 제게 깔끔하고 단정한 옷으로 골라 입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도 마찬가지로 입히라고 했습니다. 혹시나 외국인이라고 얕잡아 보일까 염려해서 한 말이었지요.

사실은 살면서 차별을 몸소 경험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고 나니 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문득 우리 나라에 와 있을 이주노동자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의 아이들은 어느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까, 유독 편견이 심한 우리 나라에서 다닐만한 곳을 찾을 수는 있었을까. 그러다가 또 생각이 났습니다. 엄청난 보육비와 불안한 그들의 처지. 아마 유치원은 꿈도 꾸지 못할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느낄 외로움 혹은 박탈감이 말입니다. 그곳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이 이곳에 오니 보이기도 합니다.

3주 정도 지나자 아이는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다 오라고 하면 “나는 일본말을 못해서 안돼.”라고 풀죽어 말하고, 자주 울면서 “나를 왜 유치원에 보냈어. 애초에 나를 보내지 말지.”라고 해 제 눈과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혹시 누가 괴롭히나 싶어 초조하기도 하고 선생님이 귀찮아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급식 시간만 되면 운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그런가 싶어 도시락을 싸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아침에는 스쿨 버스에 올라탄 아이가 창밖으로 저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려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주면 좋겠다며 우는 아이를 외면할 수 없어서 요즘에는 아침에도 데려다줍니다. 조금 울더라도 버스도 그냥 태워 보내고 급식도 못 먹으면 못 먹는 대로 먹으면 먹는 대로 대수롭지 않게 대해주는 게 더 좋은 방법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에게 너의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 딴에는 꽤 힘들 테니 모른 척하기보다 알아주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대신 아이가 울 때는 괜찮다고 웃으며 위로해줍니다. 일본말을 못하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고, 친구들도 한국말 못하지 않느냐고,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는 것이고 너는 지금 아주 잘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유치원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제게 말했습니다. 기쁘게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래도 내일 또 유치원 보낼 일이 걱정입니다. 분명 일요일인 오늘 저녁부터 유치원가기 싫다고 울며 슬퍼할 텐데 달래고 설득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게 과정임을 알고 있지만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기는 합니다. 도시락을 만들어 싸고 아이를 챙기기만도 바쁜 아침 시간에 저는 또 깔끔하게 차려입기까지 해야 합니다. 집에서 유치원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중간에 지하철도 한 번 갈아타야 합니다. 매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이 만만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다닐 수 있는 유치원이 있고 직접 데려다주고 데리고 올 수 있는 여유가 제게 있다는 것,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닐까요?   

  
■ 글 : 박선희 (벗바리이자 다산인권센터 일본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