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웹 소식지 몸살

[몸살 31호_가을] 라이언의 마중일기

<소개글>다산인권센터 라이언이 2025년 7월 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 마중’에 함께 하며, 화성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하여 구금 된 이주민을 면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문 하는 날마다 느낀 고민과 여러 감정들을 다산 페이스북에 짧게 기록해 왔습니다. 페이스북이 소식을 전하는 창구였다면, 이곳 ‘몸살’에서는 담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들을 벗바리 여러분과 나누어보려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우리가 함께 마주해야 할 우리 곁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화가 오지 않는 날들

마중에서 ‘이음’으로 만나며 꾸준히 면회하던 분이 최근 보호해제로 보호소를 나왔습니다.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간 뒤,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찾아왔습니다. 보호소에 있을 때는 자주 오던 전화가 더는 오지 않았고, 저는 그 조용해진 일상이 편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가도, 전화가 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조금 꺼내기 어려운 그 마음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그분이 처음 개인 전화번호를 물었을 때는 알려드리지 않았습니다. 강제출국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 속에서 연락할 방법을 갖고 싶어 했지만, 마중에서도 개인 번호를 주는 일은 되도록 지양하고 있었고 저 역시 꺼리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면회를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일상에서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어디까지 연락을 받고,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분과 보호소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강제출국을 당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 그분은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무섭다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자기 차례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서, 처음의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개인 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번호를 드린다고 그 두려움을 없애줄 수는 없겠지만, 연락할 곳이라도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 뒤로 전화가 여러 번 왔습니다. 그분은 전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고, 기회가 생기면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시간이 제가 편하게 통화할 수 있는 때와 늘 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제게는 하던 일을 이어가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정을 알고 있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전화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솔직히 짜증이 나는 때도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자주 전화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전화를 끊을 때마다 “고마워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전화를 불편해하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그분에게 얼마나 필요했을지 생각하면 미안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음 전화부터 기꺼운 마음으로 받게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담스럽다가 미안해지고, 다시 전화가 오면 또 망설이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분의 사정을 이해하는 마음과 제 일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자꾸 부딪혔습니다.

그렇게 이어지던 전화는 그분이 보호소를 나온 뒤 자연스럽게 끊겼습니다. 이제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했고,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와 시간이 보호소를 나오면서 끝난 것 같아 허전했습니다. 그분이 밖에서도 제게 계속 연락해야 할 이유는 없는데, 전화가 올 때는 부담스러워하던 제가 연락이 없으니 또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저도 쉽게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요즘 진행하고 있는 ‘구금을 경험한 이주민 인권실태조사’가 떠올랐습니다. 보호소를 나온 뒤의 삶을 살피는 조사를 함께하면서, 정작 제가 오래 만났던 분의 지금 생활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디에서 지내는지, 끼니는 잘 챙기고 있는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은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은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연락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마중에서 제가 해온 이음은 보호소 면회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만나던 분이 보호소를 나가면 정기적으로 찾아가 안부를 묻던 활동도 끝납니다. 그동안은 보호소를 나가는 일이 가장 반갑고 중요한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다음이 자꾸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만남을 마쳐도 괜찮을까. 보호소 밖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어려움은 생길 텐데, 그때는 누구와 연결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제가 그분의 생활을 계속 살피고 모든 어려움에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할 자신도 없습니다. 보호소 안에서 걸려 오던 전화조차 버거워했던 사람이기에,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하겠습니다. 한 분과 오랜 시간 이음을 하면서 제 안에 지침이 쌓이고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만나러 가서 이야기를 잘 듣고 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만나고 돌아오는 마음도 무거워졌습니다.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온 만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제게 어려운 일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요즘은 보호소에 가는 일이 조금 어렵고 두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글로 적어도 될까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마중일기에 이 마음을 빼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금세 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다음 면회에도 다시 가려고 합니다. 보호소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그곳에서 나눈 이야기를 밖으로 전하는 일은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는 제가 느끼는 어려움도 함께 이야기하며 이 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저보다 훨씬 오랜 시간 이음을 이어온 마중 활동가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한 사람을 꾸준히 만나고, 그 사람의 사정이 달라지는 동안 함께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활동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보호소를 오갔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다음에는 이주민의 안부와 함께, 곁에서 이음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의 안부도 묻고 싶습니다. 오래도록 만남을 이어온 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