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조직개편안, 단순한 통합으로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 100일을 막 넘긴 10월 21일,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민주노총 경기본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도청지부가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기자회견의 골자는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도정 운영이었습니다.
현재 추미애 도지사 취임이후 경기도에 다양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8월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한 이후 예산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대적으로 삭감되었 민생 예산을 두고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직개편은 가장 무겁게 짚어야 할 문제입니다. 경기도는 지난 20일 ‘30개 실국 5담당관 151과’를 ‘25개 실국 5담당관 141과’로 줄이는 안을 공개하고, 21일부터 26일까지 입법예고를 진행했습니다. 5개 실국과 10개 과가 사라지는 큰 개편입니다. 조직개편이라고 하면 우리 일상과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국과 과를 합치고 줄이는 일은 공무원들의 인사 문제이거나 행정 효율을 따지는 일로만 여겨지죠. 하지만 조직도는 효율의 설계도가 아닙니다. 조직도는 도정이 어떤 사람과 어떤 의제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어떤 국이 생기고 어떤 과가 사라지는지는, 누군가의 문제가 행정의 이름을 얻고 누군가의 문제가 이름을 잃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번 개편안에서 사라지는 이름들이 눈에 밟힐 수 밖에 없습니다. 폐지 대상에 오른 이민사회국은 아리셀 참사 이후 발족한 이주행정 컨트롤타워입니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이주민이 가장 많이 살아가는 광역지자체입니다. 그런 경기도에 독립된 이민사회국을 두었다는 것은 “이주 배경 도민을 경기도민으로 인정하고 권리와 존엄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현재는 이민사회국의 업무를 성평등가족국으로 편입하는 안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민정책을 가족의 영역으로 가져가는 것은 이민 사회를 지나치게 좁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민선 9기 조직개편안은 이민사회국의 폐지가 아니라 강화와 확대여야 합니다.
인권담당관의 이름이 바뀌는 것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이번 개편안은 인권담당관을 인권권익담당관으로 바꾸고 도민권익 업무 일부를 통합한다고 합니다. 글자 두 개가 더해졌을 뿐이니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편안에서는 인권담당관의 역할을 왜 바꿔야 하는지, 추가되는 업무와 기존 인권업무를 어떻게 함께 수행할 것인지, 이번 개편이 도민의 인권보장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혁신이라는 명목 아래 인권에 대한 고려가 없는 개편은 도정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인권보장을 뒷전으로 미루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인권과 권익이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존엄할 권리이고, 누가 베풀어서 얻는 것도 정책으로 정해서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인권이 행정의 중심에 있으면 도가 하는 일이 사람의 존엄을 해치지는 않는지, 가장 취약한 사람이 배제되지는 않는지 정책 하나하나에 비춰 묻게 됩니다. 인권 전담 부서는 행정을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행정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익은 권리와 이익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어서 그 안에서 인권은 '이익' 가운데 하나로 읽히기 쉽습니다. 이익은 서로 부딪히면 양보하고 절충할 수 있지만, 인권은 행정이 넘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선입니다. 그 자리에 '권익'이 들어오면 선은 흐려지고, 인권을 점검하는 부서는 어느새 민원과 서비스를 다루는 부서로 읽힐 수 있습니다.
이름을 바꿔도 일은 똑같이 하겠다는 답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말이 진심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인권은 이름에서부터 지켜집니다. 담당관의 이름에 '인권'이 앞서 걸려 있다는 것은, 도정이 인권을 가장 앞에 놓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차별과 혐오가 일상을 위협하는 지금, 인권기구의 조직과 예산을 더 늘려도 부족할 때에 인권기구를 개편하고 권익 업무와의 통합하는 결정은 철회할 필요가 있습니다.
덧붙여 조직개편의 절차 또한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견을 받은 기간은 엿새 남짓이었습니다. 전국공무원노조 경기도청지부가 직원들에게 물은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90.5%가 개편안에 반대했고, 95.5%가 직원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고 답했습니다. 도청 안에서도 충분히 듣지 않았다고 느끼는 개편이라면, 도청 바깥 도민들의 이야기는 더 들어올 자리가 없었을 겁니다. 도민의 삶과 직결되는 개편일수록, 도민이 말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추미애 지사는 지난 27일, 입법예고 기간에 제기된 의견을 충실히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필요하면 재입법예고까지 하라는 말도 함께였습니다. 경기도는 11월 중 조직개편안을 도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추 지사의 지시가 말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권담당관이라는 이름이 지켜지고, 이민사회국의 역할이 이어지고, 이 개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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