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다산인권센터 라이언이 2025년 7월 부터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 마중’에 함께 하며, 화성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하여 구금 된 이주민을 면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문 하는 날마다 느낀 고민과 여러 감정들을 다산 페이스북에 짧게 기록해 왔습니다. 페이스북이 소식을 전하는 창구였다면, 이곳 ‘몸살’에서는 담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들을 벗바리 여러분과 나누어보려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우리가 함께 마주해야 할 우리 곁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주인권운동을 고민하다
화성외국인보호소를 생각하면, 다산에서 면접을 보던 때가 떠오릅니다. 다산에서 활동을 하고 싶었기에 다산이 해왔던 활동들을 알아보고, 현재는 어떤 이슈가 있는지 검색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때 다산에서 진행하던 ‘이주운동’이 눈에 들어왔고, 관련한 기사를 찾다가 보게 된 것이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한 ‘새우꺾기’ 고문 기사였습니다. 기사에 구금되어 있는 이주민의 손과 발이 등 뒤로 묶여 있었고, 얼굴에는 무엇인가가 씌워져 있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국적만 다를뿐인 사람에게 저런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충격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범죄자’는 저렇게 해도 된다는 댓글이었습니다. 이런 잔인한 시선들을 보며 이주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2025년 4월 23일
구금 이주민의 고문행위에 분노하면서 이주운동을 시작했지만 이주 구금에 대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고용허가제 폐지를 외쳤습니다. 그러다 2025년 4월 23일,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 마중(이하 마중)에서 외국인 보호소에 있는 이주민에 대한 강제출국을 규탄하는 집회에 함께 했습니다. 당시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이 곧 시행이 되면서, 20개월이 넘은 이주민들을 강제로 출국 시키고 있었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목숨이 위험한 난민, 한국에 양육을 해야 할 아동이 있는 이주민 등 여러 사정이 있는 이주민들이었지만,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이주민들을 ‘범죄자’ 취급을 하며 본인들의 행동을 정당화 했습니다.
방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최근까지 10명이 안 되는 이주민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다른 이유로 보호소에 있지만, 보호소 생황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잊히지 않는 분은 본국에서 인권운동을 했던 A씨입니다. A씨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연대하고, 함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지만, 정부의 인권 활동가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도망쳐왔습니다. 미디어에서 본 한국은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나라였기에, A씨는 난민신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을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A씨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고, 체류자격이 온전하지 않던 A씨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 되었습니다. 구금 된 기간 동안 난민 신청을 위해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주는 직원은 없었습니다. 또한 방을 옮겨줄 것을 요청하자 본국으로 간다고 하면 옮겨준다는 말을 하며 A씨의 요청을 대부분 묵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A씨는 난민신청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에, 면회 하는 동안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난민신청과 보호일시해제가 기각 되면서, A씨의 미소는 점점 사라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제 송환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점점 말라갔고, 몸이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A씨와 마지막 면회에서, 항상 웃던 A씨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화를 냈습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미안해요”라는 말과 함께 면회실을 나갔습니다.
면회 활동을 처음 하는 저에게, 항상 밝은 모습으로 힘을 주던 A씨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 A씨가 보호일시해제 되어 보호소를 나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들어보니 보호일시해제로 나가는 그날까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서, 강제출국 당하는 줄 알고 보호소에 있게 해달라고 외쳤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밖이기에 덤덤하게 얘기하는 A씨였지만, 이 말을 듣고 보호소의 시스템이 이주민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구나를 느꼈습니다. 지금도 A씨를 생각하면 미안함이 가장 크게 남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내가 말벗으로서 역할은 잘 해줬을까? 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래도 또다른 A씨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면회를 나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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