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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몸살 29호_봄] 행궁동에서 보내는 편지

<팔달문 현수막 사이에서 '진짜 정치'를 찾습니다>

랄라 상임활동가

팔달문에 걸린 현수막 이미지를 AI로 제작하였습니다.

다산 사무실이 위치한 팔달문은 수원의 ‘정치 일번지’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교통의 중심지이기에, 요즘 같은 선거철이면 온갖 정당 후보들의 현수막이 건물 외벽을 가득 장식합니다. 하지만 그 현수막들을 마주할 때마다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건물마다 크게 얼굴을 내민 후보자들이 정작 어떤 가치관과 비전을 품고 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수막에는 학력과 경력, 자격증 목록, 유명 정치인과의 인맥 자랑,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선량한지를 증명하려는 문구들만 가득합니다. 왜 정치를 하려 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건너기 위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극심해지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은 무엇인지,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정치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 혼란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정치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비전 아닐까요? 거창한 담론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일은 시민의 일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계절마다 반복되는 폭염과 한파, 폭우처럼 우리 삶을 위태롭게 하는 기후위기에 맞서 지역 사회를 변화시킬 이야기가 절실합니다. 고착화된 불평등을 넘어 지역사회를 어떻게 더 평등하게 만들어갈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도 모색해야 합니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은 평화에 대한 위협과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을 통해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는 석유에 의존하는 삶을 넘어 우리 일상에서부터 에너지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역 정치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여전히 ‘얼마나 많은 예산을 끌어올 것인지’, ‘지역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만 매몰되어 있습니다. 시민의 삶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에 요동치는 정치적 영역에 놓여 있는데, 기성 정치는 오히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거가 코앞인 ‘정치 과잉’의 요즘이지만, 역설적으로 정치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인자하게 웃고 있는 후보자들의 현수막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최근 다산은 지역 단체들과 함께 평등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한 ‘평등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평등과 차별금지법 제정의 목소리가 1년이 넘도록 제도권에서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삶과 정치가 마주치지 못하는 또 다른 슬픈 단면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기에, 지역에서부터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시대를 변화시킬 작은 희망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더 평등한 지역 사회를 여는 진정한 정치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정치가 길을 잃은 시대, 시민의 목소리가 비로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새로운 길을 내고 있습니다. 언제쯤 정치가 시민들의 행보를 따라올 수 있을까요? 팔달문을 가득 메운 현수막 사이에서 길을 잃은 진짜 정치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