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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웹 소식지 몸살 26호_여름] 그대도 인권_더 이상 '사회적 합의' 뒤에 숨지 마라.

출처 :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7605.html

 

[그래도 인권]  더이상 '사회적 합의' 뒤에 숨지마라.
- 혐오와 차별을 끝낼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시작하자.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평등과 차별 금지의 가치를 추구해왔다
. 하지만 2025년 현재,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정당의 혐오 현수막, 선출직 의원들의 막말, 그리고 극우 단체의 노골적인 증오 선동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혐오와 차별은 단순히 개인적인 표현의 자유를 넘어, 모두의 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위협하는 심각한 현실이다  

최근 대림동에서 열린 극우 단체 집회는 그 심각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중국 출신 이주민 추방," "조선족 몰아내자"와 같은 명백한 인종차별 구호가 일상적인 거리에 울려 퍼졌다. 이러한 행위는 소수자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이며, 공동체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더 나아가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기반으로 한 혐오 선동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더 취약한 사회적 약자를 다음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사회적 합의' 뒤에 숨은 정치적 회피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 뒤에 숨어 법안 제정을 회피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회적 대화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법안에 없는 형사처벌 규정을 언급하며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는 소수자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폄하하고 논의를 지연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취임 기자회견에서 "민생과 경제가 더 시급하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우선 과제에서 배제했다. 탄핵과 대선 광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던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태는 시민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준다. 더 이상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 아래 법안 제정을 미룰 시간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공공 영역을 잠식하는 혐오의 언어

문제는 혐오와 차별이 단순히 특정 단체의 외침에 그치지 않고, 공공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했다는 점이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정당의 현수막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혐오 표현이 여과 없이 거리에 내걸리고 있다. 이는 '정당 활동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제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원치 않아도 이러한 혐오 메시지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고통받고 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시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선출직 지방의원들의 행태이다. 이단비 인천시의원의 학벌 비하 발언, 김미나 창원시의원의 이태원 참사 유가족 힐난, 양태석 거제시의원의 계엄 옹호 및 '종북' 비하 발언 등은 SNS라는 소통 공간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등 이들은 다양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비록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며 명확한 규정이나 징계 기준은 여전히 미비하다. 전문가들은 지방의회의 자율에 맡기기보다 정부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징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공인으로서의 책임 의식이 권한과 위상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냉소를 심화시킨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은 지난 18년 동안 11차례나 발의되었지만,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 아래 끝없는 논의만 반복될 뿐 실제적인 진전은 없었다. 이는 명백한 정치적 무책임이다. 유엔 자유권위원회와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26년까지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 이행 보고서를 요구하고 있지만, 22대 국회 개원 1년이 넘도록 단 하나의 법안조차 발의되지 않은 현실은 이러한 국제적 권고를 무시하는 태도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경제나 민생과 우선순위를 다툴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차별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인권 문제이자,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정부와 국회는 특정 반대 세력의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주장을 넘어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열고,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제정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혐오와 차별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룰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더 이상의 지연 없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