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만난 사람_이혜민 벗바리
“우리 모두에게는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책임이 있어요”
-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경기장차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다산 벗바리 이혜민님을 만났습니다.
최근 연대 활동을 통해 자주 만나게 되는 반가운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설명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그와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Q 다산 벗바리에게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혜민이에요! 제 이야기를 좀 길게 풀어도 괜찮다면, 저는 19살, 고3 때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그게 제 인생의 정말 큰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로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세상은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인권이라는 의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죠. 2013년쯤부터 당사자 운동으로서 인권을 알아가기 시작했고요.
대학에 들어간 2015년, 2016년은 한창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였잖아요? 대학에서도 열심히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친구들과 함께 활동 했어요. 성소수자나 페미니즘 운동 외에도, 그 시기에 다양한 인권 의제들을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제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이야기는 처음이라서 쑥스럽지만 재미있네요.
Q 지금의 장애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2018년쯤이었나? 제가 팔로우하던 장혜영 전 의원님이 그때 유튜버 활동을 하고 계셨는데, 그를 통해서 장애등급제 폐지와 탈시설 의제를 처음으로 접했어요. '아, 이런 운동이 있구나.‘ 그때 장애인 시설이 갖는 억압적 구조와 장애인의 삶을 처음 알게 됐죠. 장애등급제가 왜 문제인지, 부양의무제는 또 왜 문제가 되는지 알게 됐어요.
2021년에 전장연의 지하철 투쟁이 시작되면서 정말 많은 이슈가 됐잖아요. 그때 다시 한 번 '아,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더 깊이 인식하게 됐어요. 저는 제 전공인 토목공학을 정말 좋아했어요. 근데 취업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아졌어요. 토목 분야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남초 사회다 보니 여성 혐오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동성 파트너를 드러내기 어렵다는 걱정도 있었죠. '여기서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활동을 병행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인권 운동을 내 본업으로 삼아보자!' 하고 결심했어요. 그럼 어떤 운동을 할까, 어느 단체에 지원할까 고민했을 때 제 리스트에 장애 운동이 있었죠. 그때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왔고, 당시 제가 하던 일이 장애 운동과는 직접적이지 않았지만 교육 쪽이었기 때문에 '야학을 통해 장애 당사자를 만나고, 장애 운동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지원했어요. 면접에 가보니 이미 노들야학에서 비상근 교사를 했던 훌륭한 분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아, 나는 안 되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불합격했어요. 대신, 면접을 보셨던 야학 교장님이 경기장차연에 이력서를 넣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해 주셨어요. 그렇게 인연이되서 저의 장애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답니다.
Q 장애운동 입문이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되었군요. 공대생이었다는 사실 새롭네요. 다른 사람이 활동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과정을 오랜만에 들어봐요.
다른 활동가와도 이야기하다 보면 제 스토리를 되게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안학교를 나왔다거나, 주변이 다 활동가였다는 분들은 제가 마치 '자연 발생한 초파리' 같대요. (웃음) 활동가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도 있냐면서요. 저는 사실 주변에 운동권이 있었던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온라인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제 주위에 활동가가 없어도 온라인으로 다양한 의제들을 찾아보고, 활동하는 분들과 소통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같아요.
Q 경기장차연에서는 주로 어떤 할동을 하고 특별히 관심 가지고 있는 현안은 무엇인가요?
경기장차연은 경기 지역의 장애인 권리 운동을 위한 투쟁 연대체예요. 하지만 단순히 장애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진보적인 장애 운동을 통해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단체라고 생각해요.
매년 4월20일 장애차별철폐의 날을 시작으로 정책제안과 예산투쟁 활동을 해요. 그 외에는 이동권처럼 갑자기 생기는 의제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탈시설 의제로 경기도가 2년째 진행하는 '장애인 복지시설 인권 상황 모니터링 사업'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죠. 올해부터는 면담원에 시설 종사자도 포함되게 바뀌었어요. 시설 내 인권 침해가 종사자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시설 종사자가 면담원으로 참여하면 시설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향성이 높아 고민이 많습니다. 또, 경기도의회를 통해 동두천의 아동 양육시설을 신규 장애인 거주시설로 전환하려는 소식을 듣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어요. 경기도는 이재명 도지사 시절 ‘탈시설 선언문’을 협약했고, 국제적으로도 탈시설은 유엔 장애인 권리 협약에 명시된 기본 권리예요. 하지만 경기도는 정책 문서에 '탈시설'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있어요. 이는 시설의 큰 권력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경기도가 정말 탈시설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에요. 어째든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투쟁으로 바꿔내야죠.
Q 전업 활동가 3년차로써 그동안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경기장차연 유일한 상근자로 일하고 있어요. 회계부터 기획, 조직화, 그리고 정책 요구안 마련까지 다양한 실무를 담당하고 있죠. 물론 저 혼자 모든 걸 하는 건 아니고, 의제설정과 논의과정에는 소속은 다르지만 든든하게 함께 활동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 전에 활동했던 곳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고 신생 단체였어요. 그래서 투쟁의 역사나 효과적인 투쟁 방법, 제도화된 투쟁 방식 같은 것들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죠. 항상 그런 갈증이 있었는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경기장차연은 역사도 깊고, 투쟁해 온 선배들도 많고, 조직 규모도 꽤 크잖아요. 그래서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전장연은 규모가 크지만 정말 유동적이고 역동적이에요. 개인적으로 이런 역동성을 좋아하는 편인데, 물리적으로는 좀 힘들 때도 있어요. 이 역동성이 분명한 장점을 가지는 만큼, 이걸 유지하려면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감과 동력을 줘야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사명감'이라는 말보다 ‘책임감’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앞으로의 활동을 ‘책임감’있게 잘 만들어 가고 싶어요.
Q 2024년 8월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 활동이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특사단에 참여했는데, 왜 이 활동을 계획하게 됐는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번에 해외 장애 투쟁단을 꾸린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패럴림픽에 가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내부적으로 수많은 회의를 거쳐 결정했죠. 40명이나 되는 인원이, 그것도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야 하니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비용도 문제였고, 국내 투쟁도 힘든데 해외까지 나가야 하냐는 우려, 심지어 물가 비싼 곳에서 위험한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의 투쟁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랐죠. 시민분들도 아마 파리 올림픽·패럴림픽 기간에 참여하는 우리의 활동이 신선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고 정말 많은 시민들의 응원과 후원 덕분에 갈 수 있었어요.
특사단의 활동은 가는 길부터 돌아오는 길까지,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어요.특히 비행기 이동이 가장 힘들었죠. 휠체어 탑승자가 비행기에 타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전동 휠체어도 있었으니 더 복잡했어요. 항공사마다 규정이 다르고, 전동 휠체어 배터리 문제도 있었고, 휠체어를 포장해야 한다는 요구에 박스와 비닐봉지를 급하게 구해서 싸매기도 했고, 휠체어 이용자를 옮기는 장비도 운반해야 했죠. 거기에 언어 소통의 어려움까지 겹쳐서, 도착해서 움직이는 모든 과정이 난관이었어요. 노르웨이에서 독일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아찔한 경험도 했어요. 장애 활동가와 활동지원사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리려 하자, 공항 직원이 "우리가 전문가이니 활동보조인은 내리라"며 강압적으로 나왔습니다. 경찰까지 불렀고, 심지어 여권을 빼앗길 뻔했죠. 지금 생각해도 무사히 돌아온 게 신기할 정도예요.
패럴림픽에 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패럴림픽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였어요.패럴림픽이 장애를 '극복해야 할 시련'이나 '재활을 통해 뛰어넘어야 할 것'으로 보는 근본적인 서사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의 장애는 극복하거나 없애야 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개인의 노력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장애 특성에 맞춰 지원하고 사회적인 뒷받침이 함께 이루어져야 장애인도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요. 특사단은 유럽의 주요 장애 관련 기관들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유럽에 있는 장애 단체나 공공기관 담당자들을 만나서 배우고 네트워킹하는 일정을 함께 소화했죠. 노르웨이 같은 경우는 탈시설이나 장애인 교육이 굉장히 잘 되어 있는 나라라서 이동권보장 현황과 함께 많은 것을 보고 느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그 나라 시민들의 반응이었어요. 우리는 시위하면 욕을 많이 먹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서는 시민들이 우리한테 욕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동양인들이 와서 뭘 하는 거지?'라고 생각해서 그냥 둔 건지, 아니면 전단지를 받아가거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 보면 집회나 투쟁에 대한 시민 의식이 우리보다 높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이번 특사단 활동 중에 저는 배탈이 나서 전체 일정 중 3분의 1을 함께하지 못했어요. 특히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결국 못 갔죠. 투쟁단은 박물관에서 드러눕고 스티커 붙이면서 다이인 퍼포먼스를 했는데, 함께 참여하지 못해 정말 아쉬웠어요. 근데 거기 박물관 관계자들은 강제퇴거를 시키거나 경찰에 의해 잡혀가지는 않았어요. 큰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무 일 없이 잘 있다 왔데요.(웃음)
Q 최근 경기 사회대개혁 토론회에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경기도'를 주제로 한 토론이 많은 사람이 감명 깊게 들었다는 후문이 있어요. 토론을 준비하며 들었던 고민이나 생각을 이야기해 주세요.
토론문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고민했어요. 지역 활동가들에게 장애 운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달하고 싶었죠. 올해 우리의 슬로건인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설명하고, 장애인의 탈시설 운동과 왜 장애인 운동에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어요. 적어도 제 토론문을 읽은 분들이 '장애인이 탈시설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죠.
그리고 늘 고민되는 지점이 바로 제가 장애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이 운동을 하면서 항상 이 부분을 의식하고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 해요. 활동가로서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많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발언의 기회를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사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야 한다고 믿고요. 그래서 이번 토론회 때도 장애당사자가 토론자로 나왔으면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어요. 비당사자 활동가로서 이 운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대표님과 논의하고 준비했어요.
Q 마지막으로 인권 활동에 관심있는 시민이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있어요! 바로 “여러분도 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책임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라고 외치고 싶어요. 사실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책임감이에요. 활동뿐만 아니라 제 개인적인 삶에서도 굉장히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에요. 이 책임감을 다했을 때 큰 기쁨을 느끼고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지하철 투쟁을 할 때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여기 지하철에 앉아 계시는 시민분들, 지금 불편하시겠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한 건 무책임한 행동이고, 이제 같이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죠. 욕을 많이 먹으니까요. 대신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함께 해주십시오"라고 말해요. 그래도 속으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답니다. "여러분은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구성원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게 하고,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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