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인권] ‘괴물’이 침묵시킨 이들의 목소리
- 산불로 드러난 재난 대응 시스템의 사각지대
지난 3월, 영남지역에 동시다발적인 산불은 참혹한 상흔을 남겼다. 30명이 사망하고, 45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200여 명의 이재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에, 언론은 '괴물 산불'이라 부르며 피해를 계속 보도했다. ‘괴물’이라는 말은 산불의 규모와 위력을 묘사하는 듯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가려버리는 그림자가 되었다. 흔히 괴물이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그래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인식을 갖게 한다. 산불의 발원은 우연히 혹은 누군가의 실수에서 시작 됐을 수 있다. 그러나 산불을 키운 것은 기후위기로 인한 극심한 건조, 강풍, 그리고 허술한 초기 대응 시스템이었다. 괴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이 아닌, 부족했던 산불 대응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이다.
재난에 취약한 이들
산불 피해가 집중된 농촌 지역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해 주민 대다수가 고령자로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부족한 노동력으로 인해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구조 특성 때문에, 이번 산불은 재난에 취약한 고령자와 이주노동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겼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사망자와 중상자의 90% 이상이 60세 이상의 고령자였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경우 비닐하우스나 농장 부속 건물, 컨테이너 등 비공식 숙소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행정적 파악이 어려웠다. 주민등록상 주소와 실제 거주지가 달라, 재난 발생시 대피 안내나 구조 대상에서 쉽게 누락된다. 이러한 이유로 산불 피해 공식 통계에서 이주노동자의 피해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은 물리적 취약성뿐만 아니라, 정보 접근성에서도 구조적인 불리함을 안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재난 대응 수단 중 하나인 재난 안전 문자는, CBS(Cell Broadcasting Service) 시스템을 통해 발송되기 때문에 2G나 3G 휴대폰을 사용하는 고령층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설사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해도 기기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긴급재난문자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또한 재난 대응과 예방에 사용되는 언어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 되어 있기에, 언어장벽이 있는 이주노동자는 문자를 받아도 내용 이해가 어려워 대피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고려하지 않는 재난문자 중심의 경보시스템은 이들이 재난에 얼마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두’를 위한 안전은 어디에 있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피소에 대한 정보 부족, 교통수단 미비, 취약계층이 머물기 어려운 대피소 구조 등 재난 대응에 모든 과정이 ‘정보습득이 용이하고, 건강하고, 이동이 가능한 사람’만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예로 문자가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해도 안내만 있고, 이후 행동을 개인에게 맡긴 다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는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대피소라는 공간이 신분 노출에 대한 불안감으로 안전한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재난의 불평등은 산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주민과 고령층은 방역 시스템에서도 반복적으로 소외되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주노동자만을 대상으로 코로나19검사를 의무화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부지원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고령층의 경우 돌봄 서비스가 중단 및 축소되면서 돌봄 공백이 발생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많이 사망자가 발생한 연령층이었다. 단순히 나이가 많고, 면역력이 약하기에 사망자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시스템 자체가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안전한 시스템을 위해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회적 위치, 정보 접근 수준, 이주 여부, 이동성과 언어에 따라 재난의 충격(피해)은 다르게 작용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재난을 “모두가 똑같이 겪는 고통”으로 얘기한다. 재난의 고통은 똑같이 오는 것이 아닌 더 취약한 사람에게, 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산불에 책임과 원인을 규명 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재난 속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졌고, 누가 구조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사회가 어떤 삶을 보호하고 어떤 존재를 방치해왔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재난은 언제나 가장 약한 자리를 먼저 덮칠 것이다. 재난 대응 체계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단순히 장비를 늘리고 인력을 확충하는 것을 넘어, 구조적으로 재난에 취약한 계층(고령자·장애인·여성·어린이 등)을 중심에 두는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그들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기준에 맞춰 설계된 시스템이야말로 결국 모두를 안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전”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괴물 산불’이라는 말에 숨지 말고, 재난이 구조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 파면 이후,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설계해야 할 새로운 사회는 분명하다.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체계, 누구도 배제 되지 않는 사회구조, 어떤 존재도 외면되지 않는 대응.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새로운 사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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