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웹 소식지 몸살

[웹 소식지 몸살 25호_봄] 다산활동가들의 TMI

다산활동가들의 TMI
: 다산활동가들은 요즘 어떤 책을 읽을까요? ‘안물안궁’일 수 있지만 이야기 합니다.
: 왜?! 관심받고 싶어서요. ㅎㅎ

라이언의 TMI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_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저는 책 읽는 것을 즐기지 않아, 매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도전'하듯 책을 펼칩니다. 그런 제가 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입니다. 1년 전이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책인데,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현실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년 전에는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 붕괴 사례를 보며 그저 "저렇게 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우리나라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겠구나"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 ⋯ 표면적으로 충직한 정치인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책을 읽기 전까지 민주주의를 외치며 서부지법 폭동을 옹호하거나, 가담자들을 지지하는 특정 국회의원들을 이해 하지 못했습니다.(물론 지금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책에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를 한다고 합니다. 이 표현을 보니 서부지법 당시 특정 국회의원들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계엄 이후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모습을 보며 '누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질문'들이 떠오르신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랄라의 TMI

<시선으로부터>_정세랑

4월, 저는 봄의 길목에 접어들면 다른 기분이 듭니다. 봄의 싱그러움과 경이로움보다는 아득해지는 느낌이랄까요. 11년 전, 4월 16일. 그날의 기억이 제 마음속 어딘가, 제 봄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겠지요. 뭔가 잡히지 않는 뒤숭숭한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의 10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향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시대를 앞서 살았던 어른 시선이 남겨놓은 삶의 기억과 흔적들, 그리고 가족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시선에 대한 기억, 그 다양한 순간과 기억이 얽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어떻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어떤 기억을 남겨야 할지, 그리고 떠난 이들에 대한 애도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제는 <시선으로부터>를 읽다 한 문장에  마음과 눈길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수십 명이 묻힌 땅을 그대로 밀어 버린다면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 것인가? 기억하지 않고 나아가는 공동체는 본 적이 없다. ”

 4월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테고 또 재난 관련 활동을 하면서 기억을 통한 나아감이 저에게 큰 화두로 자리 잡고 있어서 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동시대를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을 잃고도 뭔가 달라진 것이 없는 우리, 오히려 미워하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지는 사회. 기억을 피로감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옷깃을 잡아끄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마음으로 인권의 현장에서, 재난 피해자들의 곁에서 오늘도 활동합니다.  <시선으로부터>는 모두의 시선을 확 끌어잡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도 꼭 한번 읽어보시길.. 이 봄 무엇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그대에게 추천합니다.

쌤통의 TMI

<율의 시선>_김민서 

요즘 동네 마을문고에서 책을 빌려 봅니다. 도서관 대신 마을문고를 찾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제가 한 달에 한두 번 문고지기 자원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문고지기를 하다 보면 종종 책 추천을 부탁받곤 하는데, 솔직히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제대로 못 읽어서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주로 예전에 읽었던 책만 추천하게 되더라고요. 그나마 최근에 읽은 신작이 김민서 작가님의 「율의 시선」이에요.

문고 신간 코너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율의 시선」 표지가 눈에 띄었어요.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소년의 미소가 어찌나 예쁘던지, 보는 제 마음까지 보드라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책도 얇아서 별다른 배경 지식 없이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청소년 소설이라고 되어 있지만 읽다 보니 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깊이가 있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 마음을 붙잡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나약하다. 너무 쉽게 부서지고 무너진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숨기며 끊임없이 상처를 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부서지고 무너지면서 강인해진다. 모순적이었다. 모순적이기에 인간은, 삶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동시에 그 속의 강인함이라는 모순성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상처받기 쉽지만, 역설적으로 그 경험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죠.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자신을 숨기는 모습 속에서 제 자신의 씁쓸한 단면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 면은 더 견고해 지는 듯 합니다. 하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면서 강인해진다"는 반전과 "모순적이기에 인간은, 삶은 매력적인 것이었다"라는 말은 위로가 됐습니다.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삶의 다채로움과 특별함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문장은 제 안의 불안과 연민을 녹이며,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확인시켜 주는 용기의 메시지처럼 느껴져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위로와 용기가 되는 글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