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과 엄마의 밥
상임활동가 쌤통
엄마가 아프다.
내 부모도 나이가 들면 아프겠지 생각했지만 진짜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바보 같은 말이지만 엄마가 아플 줄 알았지만 아플 줄 몰랐다. 엄마가 아프니까 가족 모두가 말 그대로 멘붕이다. 아빠는 어찌 할 바를 모른다. 병원에 가고 치료를 하면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결혼한 오빠는 객관적 판단을 하는 듯 보이지만 말을 아낀다. 답답한 내가 엄마의 주 보호자가 됐다.
어느 날 엄마가 자주 드나드는 내과에서 연세가 있으니 정기적으로 엑스레이를 찍어보자 했다. 엑스레이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가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 했다고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별 생각 없이 혹이 있나 생각하고 중소병원에서 검진을 했다. 결과는 폐암이었다. 병기도 높다. 수술을 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추가 검진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계속 “나 통증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라고 의사에게도 묻고 나에게도 묻는다. “폐암은 대부분이 통증이 없데... 그래서 다들 늦게 알게 된데...”라고 말했다. 엄마가 듣고 싶은 답이 아니다. 자신의 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는 안부를 묻는 사람에게 꼭 그 이야기를 했다. 누구로부터 정답을 듣고 싶은 질문은 아니다. 엄마가 병을 받아드리는 과정이다.
우리 집에는 큰 병에 걸려 본 사람이 없다. 그러다보니 이런 경우에 어떻게 처신할지 아무도 모른다. 최근에 아는 후배 엄마도 다른 암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염치를 챙길 때가 아니라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후배는 일단 서울 빅5 병원에 예약을 하라고 조언했다. 보통 암 진단을 받으면 다들 빅5 병원 중에 3곳에서는 진료를 받고 신뢰가 생기는 병원과 의사에게 치료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 외에 여러 경험과 정보를 내게 알려줬다. 하지만 다른 것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의사들이 파업하고 정부가 자기 주장이 옳다며 의료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빅5 병원예약은 턱도 없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미지 출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32808
그래도 뭔 수가 있겠지 하고 빅5 병원에 전화를 돌려 예약이 가능한지 물었다. 예약 상담사는 다들 나의 간절함은 알지 못하는 말투로 3개월 뒤에나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의사가 없단다. 좀 더 예약일정을 당기려면 어떻게 안되겠냐고 말해도 별 수가 없다했다. 3개월 후면 우리엄마 상태가 어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는 의사를 통해서 지인찬스를 써보려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 의사, 변호사 없는 거 서러워서 살겠냐”라는 말을 드라마로 들었는데 정말 서러움이 밀려왔다. 처음 진단을 받은 중소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할지 아니면 서울 큰 병원을 계속 알아봐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한 곳의 병원에서만 진단을 받을 수 없다고 아빠가 강하게 주장했다. 오빠는 무조건 서울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당사자인 엄마는 서울 병원으로 안가도 괜찮다며, 본인 상황 때문에 우리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싫다고 했다. 그냥 눈물과 한숨만 나오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뭘 어찌하란 말인가. 언론을 통해서만 보던 ‘의료대란’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의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의료대란 속에서 큰 병원을 잡기 어려운데 한 곳의 진단 만으로는 불안한 상황이고 다들 한 번씩 간다는 그 ‘빅5’ 병원에 가려면 어찌해야 하냐 물었다. 엄마 주치의 같은 동네 내과의사에게 가고 싶은 병원을 골라서 그 곳 진료협력센터에 의사가 직접 전화를 해서 의뢰를 알아보는 방법이 가장 빠를 것 같다고 했다. 의사에게 무엇을 부탁할 용기도 없고, 아쉬운 소리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 왔지만 '정신 차리자!'를 스스로에게 주문 외듯 말했다. 다행히 동네 내과의사는 “의사로써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입니다” 라고 했다. 내가 알아봤을 때는 3개월 후였던 예약이 3주 후로 잡혔다. 잠시 하늘 문이 열리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왜 의료대란 상황에서도 큰 병원을 고집했을까? 엄마가 최고의 치료를 받았으면 했고, 가족들의 의견이기도 했지만 암에 걸리면 다 간다는 빅5 병원에 못 가고 이후에 엄마에게 큰일이 생기면 자식인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후회하고 자책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 진료를 위해 큰 병원에 같을 때 병원 로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나와 같이 막혀있는 벽을 뚫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의 의료대란이 더 원망스웠다. 누군가는 지금의 의료대란 상황 속에서 더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병원예약 잡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이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환자와 환자가족은 내 몸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몸과 생명의 문제이기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몰라 끝없는 불안감에 빠지게 된다.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6gRDkuJOndY
최근 언론에 의료대란과 관련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다시 가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의료계와 정부의 팽팽한 기싸움에 아픈 사람들과 그 가족은 눈물과 시름에 나자빠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협의체 가동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료개혁은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이 되어야 할 ‘국민의 생명 존중’을 망각한 의료개혁이 과연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잘 한 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을까. 누가 한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세상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이라 했다. 아픈 사람들이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치료받기를 원한다. 중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항상 문제는 각자가 본분에 맡는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정부는 국민들의 걱정을 듣고 불식시키는 것이 본분이다. 그런데 국민이 정부걱정을 더 하는 형국이다.
요즘 주말은 대부분 본가 주방에서 일주일 분의 부모님 식사를 준비하는데 모든 시간을 쓰고 있는 듯하다. 두 분의 먹을 것을 장만하고 무엇을 드셔야 하는지 챙기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종종거리는 내 모습을 보는 엄마는 미안해한다. 그 동안 가족돌봄을 담당했고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딸인 내가 서있으니 감정이 복잡하다 했다. 무생채를 무쳤는데 맛이 괜찮은지 엄마에게 간을 봐달라고 했다. 심심하니 액젓을 더 넣으라면서 “빨리 나아서 엄마 밥 먹게 해 줄게” 라고 말했다. 나도 너무 바란다. 엄마가 다시 일상을 회복하기를... 모든 아픈 사람이 안정적 치료를 받고 일상에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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