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다산이 만난 사람'의 주인공은 올해 경기도가 신설한 이민사회국의 초대 국장으로 임명되신 김원규 국장님입니다. 의정부에 위치한 경기도청 북부청사에서 김원규 국장님을 아샤 활동가가 만났습니다.
Q. 요즘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9월부터 경기도 이민사회국장직을 맡은 김원규라고 합니다. 2021년까지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을 했습니다.
Q. 먼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시절부터 여쭤보도록 할게요. 언제, 어떤 계기로 인권위에서 일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06년 3월 20일부터 인권위에서 근무를 했고요, 사법연수원 마치고 바로 인권위로 지원해서 들어오게 됐습니다. 연수원을 마칠 때 어디 갈까, 뭐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반 변호사 사무실 개업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쪽은 돈벌이에 치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거든요.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노동단체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었어요. 그때가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막 생길 당시였는데, 당시 대중의 열기가 식고 나니 노동단체 안에서 전망을 찾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상대적으로 조금 더 안정적이면서도 공적 가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일자리를 찾고 싶어서 인권위를 선택하게 된 거죠.
Q. 인권위에서 15년 좀 넘게 일하셨는데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조사관을 한 7년 넘게 했고, 5년 가까이 정책관련 근무를 했었죠. 정책과장도 하고 인권상담조정센터장도 했습니다.
Q. 인권위에서 일한 경험은 국장님에게 어떤 경험이었나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제 인생이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 세상을 바꿔보고 싶어서 덤벼들었다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끝이났죠. 인권위 가서도 뭔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자그마한 역할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역시 실패했다고 봐야죠. 인권위가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는 제가 인권이라는 가치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뭔가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 또 한편으로는 뭐라고 할까, 그곳에서의 경험 덕분에 우리 사회와 개인의 인생에 대한 관점과 생각이 조금 정리된 측면도 있었습니다.
우선 개인적 차원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가 노동운동을 할 때 사상적 기반은 막시즘이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막시즘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평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평등을 억압하는 시스템에 대해 유물론적 해석을 한 것이구요. 그런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러다가 인권이라는 가치를 새롭게 접했죠. 인권이라는 가치는 자유주의적 철학에 기초하고 있거든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제가 느낀 건 ‘우리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인간 해방을 달성하려면 평등이라는 가치만 가지고서는 안 되는구나. 자유의 가치와 평등의 가치가 균형을 이뤄야 되는구나’라는 점입니다. 사회주의 운동 세력의 실패한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좀 더 거시적인 차원은 공무원 조직 또는 국가기구를 통해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과연 가능한가라고 하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이런 교훈을 얻었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화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일을 하려면 조직 속에서 일을 해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이나 국가 기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관료 조직으로서의 국가 기구가 갖는 한계는 굉장히 크거든요. 본성적으로 기득권 질서를 편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법적 안정성이라는 것도 중요한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현실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고쳐나가는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죠. 근데 과연 국가의 관료조직이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제가 보기에 저의 실패의 주된 요인은 개인의 잘못도 있고, 관료 조직 자체가 가지는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 경기도에서 일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이런 오래된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Q. 그 실험이 어떻게 진행될지 개인적으로 매우 관심이 가네요. 인권위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인권위에 근무하는 동안 인권위가 부침이 있었잖아요. 부침을 같이 겪으면서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이 생긴 게 무척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를 사회에서 만난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잖아요. 제가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 시기에 그런 동료들이 생겼고 지금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메신저로라도 소식을 주고받는데 굉장히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진출처: 시사저널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149#google_vignette
사건으로 치자면 좀 전에 말씀드렸던 그 동료들과 함께 현병철 위원장 시절에 함께 행동한 것일 텐데요, 대표적인 사건이 계약직 조사관 계약연장 거부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하고, 그것 때문에 징계 받은 후에 취소 소송하고 뭐 이런 거겠죠. 그런데 그 사건 자체보다는 함께 행동했던 동료들과 신뢰 관계를 맺은 게 제일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흔히 국가인권기구는 독립성 확보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권에 의해서 인권위가 흔들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즘 상황을 보면 단순히 위원장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인권위원이 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너무나도 안 좋아질 수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데요, 인권위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건 어떤 의미이고 독립성 강화를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그 부분이 제가 인권위 관련해서 제일 고민을 집중하고 있는 쟁점입니다. 어떻게 해야지 국가인권기구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거기서 핵심은 독립성 확보입니다. 일단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기구 모델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양한 모델 중 한 번의 실험적 시도에 불과해요. 지금까지 20년 넘게 인권위가 활동해온 모습을 보면 2001년도에 설계된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아요.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냐? 추상적인 차원에서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덜 휘둘릴 수 있는 제도로 다시 설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시민들이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국가 기구로서 권력의 입김을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델이 있는지와 관련해서 제가 생각해 본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첫 번째는 현재의 위원회 제도는 유지하되 인권위원 추천위원회를 법정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같이 대통령이 위원장을 임명하는 형식이 아니라 호선으로 바꾸는 게 저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위원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거죠.
그에 더해 인권위와 별개로 종합차별시정기구는 독립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인권위는 자유권 사건과 평등권 사건을 모두 다루는데 원래 자유권과 평등권은 그 권리 성격 자체가 서로 상충하는 성격이 있거든요. 권리 성격도 다르고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요. 그러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 파트는 분리해서 종합차별시정기구를 따로 만드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지방자치제의 인권보호관 제도나 인권기구를 국가인권위 안에 포괄하여 네트워크화하면 좋겠다는 건데요, 그런 방식으로 주민 밀착성이 강한 사건은 지자체 차원에서 조사해서 조치를 취하되 서로의 업무가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지금은 완전 별개로 작동하고 있잖아요. 네트워크화 되면 업무의 질적 충실도도 높아질 뿐만 아니고 권력에 의한 영향력을 완충시킬 수 있죠. 왜냐하면 대통령 한마디로 오락가락 할 수 없는 기구가 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빠뜨릴 수 없는 게 시민에 의한 통제입니다. 지금은 시민에 의한 통제 시스템이 전무합니다. 평가 시스템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데 시민에 의한 통제, 예를 들면 1년에 한 번씩 업무보고를 하게하고 그리고 시민들이 뽑은 평가단에 의해서 1년 업무에 대한 평가를 하게하고 그에 따라서 또 책임을 묻고 그럼 시스템이 갖춰져야 그나마 최소한의 독립성이라도 확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2021년에 인권위를 퇴직하시고 부천 지역에서 이주민 법률지원 활동을 하셨잖아요. 그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한 3년 이주민 관련 활동을 했어요. 제가 보니까 우리 사회에서 제일 무(無)권리자가 이주민들이더라고요. 이 사람들은 있는 법과 제도로도 제대로 보호 못 받고 한국말도 못하고 그러니까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어렵잖아요. 인권위 나가면 뭘할까 고민하다가 변호사 자격증 있으니까 이주민 대상으로 해서 법률 지원 활동이라도 하면 좋겠다 싶더라구요. 부천에 이주민들이 많으니까 이주민들이 몰려 사는 동네에 작은 개인 사무실을 차린 거죠.
이것도 역시 개인적 차원이기는 하지만 실험적 시도였는데 막상 해보니까 정말 필요하긴 하더라고요. 정말로 이분들이 사실상 법률 서비스를 받기가 어려워요. 그러다보니 터무니없이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죠. 그런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힐 때쯤 제가 경기도 일을 맡게 된거죠. 활로를 모색하는 단계를 지나 조금씩 이제 활로가 조금씩 눈에 보이려고 할 때 일을 옮기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죠. 그런데 꼭 필요한 일인만큼 이후에 다시 하려고 합니다.
Q. 경기도 이민사회국의 초대 국장직을 맡으셨습니다. 각오가 궁금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민사회국의 초기 세팅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상당히 높은 정도의 능력과 또 여러 가지 조건이 또 갖춰져야 되는데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우선은 최선을 다해 해보려고 합니다.
Q. 이민사회국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걸 지금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이주민들이 많이 들어오긴 시작한 2005년부터 형식적으로는 이주민 정책이 있었죠. 그런데 우리 한국 현실에서 이렇게 이주민들이 계속적으로 들어온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정책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피상적이죠. 그러니까 ‘이주민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 만들기’ 이런 식이에요.
제가 보기에 그간 정부 차원에서 낸 정책 중에 실질적 의미가 있는 정책은 두 가지인데, 결혼 이주민 정책과 비숙련 고용허가제에요. 실질적이기는 하지만 기능적 측면이 강하잖아요. 많은 수의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들어왔을 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 예를 들면 선주민과의 갈등 문제 그리고 그런 문제가 우리 정치에 미치는 영향, 향후 이주민들이 더 많이 들어와서 소위 말하는 단일 민족이 다민족 국가로 바뀌었을 때 우리 사회가 마주하게 될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숙고의 과정이 매우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런 고민과 내용들이 담긴 이주민 정책이 이민사회국에서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방향으로 추진해 보려고 합니다.
Q. 참 많은 고민과 큰 역량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입니다. 열심히 할 각오야 돼 있지만 역량이 문제죠. 그런데 이론적 정리까지 포함해서 선례가 있으면 선례를 공부하면 되고, 선례가 없다면 몸으로 부딪혀서 고민하면 그래도 반 발짝은 나가더라는 게 제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배운 삶의 교훈이라서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시도 해보려고 해요.
Q. 국장님의 시도가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요즘 개인적으로 기쁨을 주는 일은 뭔가요?
요즘 강화도에 집을 짓고 있어요. 노후에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거처를 짓고 있는데 꼭 기쁨만 주는 건 아니에요. 돈이 무지하게 많이 드니까. 그래도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크고 작은 기쁨을 주는 면이 있죠.
제가 집을 두 채를 지어요. 하나는 주택동,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살 주택이구요 그리고 또 하나가, 사실은 이게 더 중요한데, 명칭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사무동이라고 하기도 하고 휴식동이라고 합니다. 이 집의 구조는 중간에 한 20평 되는 강당이 있고, 2층에는 게스트 룸을 지으려고 하거든요. 1층은 사무 공간이고 강당에서는 댄스 테라피랄지 이런 걸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해요. 게스트룸은 말 그대로 그냥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인데 주변 환경이 무척 좋습니다. 내년 초에 완공 예정인데, 이 사무동&휴식동을 짓는 이유는 피곤하고 힘든 지친 사람은 와서 쉬었다 가라는 용도로 쓰려는 거거든요. 제 주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좀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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