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논란이 일파만파다. 밥상 주연을 꿰차지 못한 채 반찬이나 국을 빛내주던 조연 대파가 그간의 설움을 딛고 정치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875원' 윤석열 대통령이 마트를 찾아서 합리적이라고 한 말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지금 '한 단이 얼마인데 경제 상황을 알고 있나'라는 야당의 공격에서 '한 단이 아닌 한뿌리 가격이다'라며 대파 격파를 선보인 여당의 수비. 지난 정권 때 가격이 더 높았다며 방어막을 치는 대통령실까지. 파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상황이 그야말로 파안대소할 노릇이다. 총선을 뒤흔드는 실세로 등장한 대파와 솟구치는 가격에 집으로 모시기 힘든 사과와 애호박 등 농작물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역시 대파다. 최근 몇 년간 높은 가격으로 인해 '파테크를 한다, 반려 대파를 키운다'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밥상에서 만나던 익숙한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물가의 체감온도도 달라진다. 먹고 살아가는 생존의 과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파 논란에서 시민들이 느끼고 있는 분노는, 정부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이 가장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있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대파뿐 아니라 다른 농작물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고 밥상을 차리려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해서 물가를 잡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파의 정치적 관계를 망각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기후, 토양, 사람의 노동력 등 모든 것이 집약되어 대파가 우리 곁으로 온다. 기후위기 시대, 기온의 변화에 따라 대파의 재배지역이 변화한다. 그 범위가 줄어들고 강수 등 기후에 따라 작황도 달라진다. 잘 자란 대파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고령층 인구가 대부분이라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대파를 수확하는 사람은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농산물을 수확하는 일이 힘들다보니 일손은 부족하고 일당 경쟁도 심해진다. 계절노동자 등 이유를 붙여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데려오고 또 떠나보낸다. 사람이 오는 일이니 쉬울 수 있겠는가. 일하는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역시 문제다. 대파는 그저 땅에서 나는 농작물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농촌 경제,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얽혀있는 정치적 산물이다.
그래서 대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짜 '정치'가 필요하다. 직면한 기후위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해법과 대응책들이 긴급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붕괴되는 농촌 현실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농촌 일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모든 문제는 대파뿐 아니라 우리 밥상, 먹거리, 사회와 연결된 근본적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정책과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대파 가격만이 논란이 되고 있을 뿐. 정권 심판, 범죄자 심판 등을 앞세우는 총선에서 정작 시민을 위한 정치가, 삶을 위한 정치가 없다.
밥상 위는 정치의 한복판이었다. 조연을 차지하는 대파만 해도 이렇게 정치적인데 쌀은 또 어떠하며, 애호박, 깻잎은 어떠하겠는가. 밥상 물가가 부담스러워 아예 밥상을 차리기 어려운 사람들, 컵라면과 다른 간편 식품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처해있는 현실은 어떠하겠는가. 밥상에 둘러앉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모두가 밥 한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밥상을 살피고 모두의 생존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치는 어디에 있을까.
기후위기 정책이 없는 선거에 불만인 시민, 치솟는 물가에 답답한 시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시민이 모여 '와글와글 정치광장'이라는 공론장을 열 예정이다. 편 가르기식 기성 정치에 답답함을 느끼는 시민들이 모여 진짜 우리 삶에 필요한 정치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 이야기를 모아 4월8일 각 정당에 전달할 계획이다. 심판만 앞세우는 정치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치로. 진짜 정치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치인들이 쉬이 흘려듣지 않기를 바란다.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4040101000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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