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로 ‘만’ 주문받지 않습니다.
상임활동가 쌤통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니 병원에 동행해야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언제 부터였는지 모르게 부모님이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기 보다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드리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한 날은 엄마의 신경과 진료에 동행했습니다. 엄마는 혹시나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까하는 두려움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본인이 의사의 소견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병원에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나이가 드시니 이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병원 시스템도 복잡해져서 많이 긴장되시나 봅니다.
엄마의 검진시간이 오래 걸려서 잠시 병원을 나와 맥도날드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려고 들어갔습니다. 매장에는 ‘주문은 키오스크로 만 받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붙어있었습니다. 나는 키오스크 카드 구멍을 찾지 못해 조금 버벅거렸지만 주문을 하고 음료를 기다렸습니다. 뒤이어 60대 후반 정도의 어르신 두 분이 키오스크 앞에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며 직원을 불렀습니다. 직원이 무표정하게 주문을 도와주고 나서 “바쁠 때는 이렇게 주문 못 도와드려요.”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한 어르신이 웅얼거리며 “우리 오지 말라고 하는 거야? 모르면 먹지도 못하겠네...”하며 쓴웃음을 보입니다. 나는 모질게 이야기하는 직원에게 한 소리 할까 망설이다가 한 숨만 푹 내쉬었습니다. 일이 많아 분주한 본인도 오죽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를 이용하는 장소(공공기관, 병원, 음식점, 까페)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사례가 종종 소개됩니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구인난을 해결하고, 스스로 주문과 결재가 가능하도록 한 키오스크 시스템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서비스 문화가 줄어들면서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경제에 맞는 효율성을 강조한 키오스크는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 등 디지털 시스템에 취약한 대상에게 또 다른 사회 장벽이 되었습니다. 작은 글씨, 영어식 표현, 고정된 화면높이, 시간제한, 음성안내 미제공 등은 비노인, 비장애인, 건강한 성인의 기준에 맞춰져 있습니다. 즉,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은 사람’ 만이 사용 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우리사회에 보편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보편적 접근이 불가하여 차별과 배제를 조장합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키오스크를 마주해야 하고, 디지털의 발전으로 인한 시류를 거스르기 어렵다면 그 시류가 한 쪽으로 만 흐르지 않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장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소외를 불러온다면 아무리 좋은 디지털이라고 하더라도 ‘모두’에게 편리하지 않는 방식은 진보가 아닌 퇴보입니다.
‘함께 사는 사회를 꿈꾼다’는 문장이 구호로써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를 당연시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변화에 적응이 어려운 사람은 누구인지 확인하고, 변화가 불편이 아닌 ‘모두’에게 두렵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더디더라도 서로를 살피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번 맥도날드를 방문하면 “키오스크는 선택입니다. 주문은 여기서도 받습니다.”라는 안내가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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