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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웹 소식지 몸살 17호_2023 봄] 다산이 만난 사람들

벗바리 여러분은 인권 침해를 당했을 때 어디에 연락하시나요? '다산인권센터'가 떠오르시는 벗바리분들도 계시겠죠? 그런데 경기도에는 인권 침해와 차별을 시정하고 도민의 인권증진을 위해 ‘경기도 인권센터’가 운영 중입니다. 몸살 봄 호에는 경기도 인권센터에서 인권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안채리 벗바리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Q. 몸살을 통해 만나게 된 벗바리분들께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인권센터에서 인권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안채리'니다. 2008년부터 이주 인권 업무를 시작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잠시 멈췄다 다시 인권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반부패 업무에도 관심이 있어서 2015년부터 3년 반 정도 반부패 교육을 3년 반 정도 했었는데요, 그때도 인권에 대한 끈은 놓지 않았었어요. 반부패 교육이 인권교육과는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연관성이 있기는 하니까요! 언제가 되었든 기회가 되면 다시 인권 업무를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한 편에 있다 보니, 대학 인권센터와 수원시 거쳐 경기도 인권센터 오게 되었죠.

 Q. 다산과는 어떻게 처음 만나셨나요?

'인권'하면 다산이 유명(?)하다 보니, 인권 업무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죠.

처음부터 벗바리를 하지는 않았고, 재정이 어려운 단체를 먼저 후원했었어요. 이주 인권 업무를 하다 보니 제가 관심 있어하는 이주 단체나 재정이 어려운 단체들을 먼저 후원해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다산 정도면 재정이 괜찮고 후원자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처음부터 후원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수원시에서 인권 업무를 시작하면서 "수원에 왔으니 가장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할 곳은 다산이 아닐까?" 싶어서 먼저 다산에 연락도 하고 방문도 했죠. 처음 다산을 방문한 날 "이렇게 인연을 맺었으니 벗바리가 되어야겠다" 마음을 먹는 순간 쌤통이 후원신청서를 건네주었고, 바로 벗바리가 되었죠

 

 Q.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을까요?

2008년에 공부를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일상에서 인권을 논하지는 않았죠. 당시에 인권교육이나 다문화 교육을 듣고 이주 여성들을 만나면서 "이런 세계가 있네! 세상을 이렇게 접근하고 바라볼 수 있구나"라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 같았어요. 처음 경험한 인권이라는 그 세계(?)는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죠.

사실 본국을 떠나 이주하시는 분들은 자국에서 중산층 이상인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학력도 높고 역량도 뛰어나요. 헌데 한국에 오는 순간 상황이나 사회적 위치가 많이 달라지죠. 몇몇 선주민들은 이주민들을 보며 그의 연령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반말을 하거나 어린애 취급을 하거든요. 한국에 온 이주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 얘기를 듣다 보면 제가 경험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차별적인 상황을 많이 경험하게 되니,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권 문제와 소수자성과의 연관성을 공부하면서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어떻게 하면 "사회변화에 기여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 활동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해 제가 대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직접 목소리를 내게 하고, 그 기회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활동을 하면서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의미 있고 즐거웠어요.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이라기보단 그냥 친구로, 즐겁게 지냈던 것 같아요. 한국 생활에서의 여러 에피소드를 듣는 것도 신나고, 공부도 재미있었고, 당시 추억들은 지금까지 인권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과 원동력이 되어준 셈이에요.

Q. 인권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실까요?

 

인권 업무를 했다 하더라도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한 건 아니기 때문에 늘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하는 일들이 탁상행정이 되거나 관료화 될 수 있으니까요.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행정 업무에 반영할 수는 있지만, 언제든 제멋대로 해석거나 방향을 잘못 잡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여러 인권 단체를 찾아다녔고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물어보고, 들으려고요.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문제의식에서 출발점이었어요.

 그러던 중 만난 곳이 샐러드 극단이에요. 샐러드 극단의 단원들은 대부분 이주민이고, 그들이 한국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고 공연하는 곳이에요. 2008년에 베트남 이주여성 쩐탄란씨 사망 사건이 있었는데, 샐러드극단에서 그의 일기를 모티프로 ‘란의 일기’라는 공연을 기획했어요. 당시 제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인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이주/다문화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이 이런 상황을 인지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공무원 교육과정에 샐러드극단을 초대해서 함께 공연 ‘란의 일기’를 관람했죠. 당시 이주여성이 처한 가정폭력 상황이 워낙 심각했고 무대 구성이나 소품이 꽤 자극적이었어요. 결혼 이주여성을 단지 성적 도구로 생각하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기도 해서 관람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기도 했거든요. 그럼에도 이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겪어야 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불편함에 머물지 않고 이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아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인권조사관'로써 주로 하시는 일은 어떤 걸까요?

 인권침해 상담과 사건 조사, 인권 실태조사를 하고 있어요. 도민들이 구제 신청한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조사결과 인권침해나 차별이 있을 경우 조사대상기관에 시정 권고하며 인권친화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경기도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인권보호관 협의회’ 의장 도시였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인권 행정 현황이나 이슈를 모으고 공유하는 역할도 잠깐 했었어요.

 Q. 인권 조사관을 하면서 드는 고민은 무엇일까요?

  경기도 인권센터가 개소한지(2017. 8. 25.) 꽤 되긴 했는데 아직까지 인권센터를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도민들이 인권센터를 알 수 있도록 더 다가가야 하는 게 인권센터의 과제인 것 같아요. 사실 인권침해를 경험한다고 해도 구제신청을 하는 게 쉬운 건 아녜요. 본인이 노출되거나 알려질까 봐 머뭇거리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사건이 발생한 후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센터에서 그동안 다룬 사건의 주 내용은 직장 내 괴롭힘’에 집중되어 있어요.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는 노동자는 매 순간이 괴롭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헌데, 경기도 인권센터는 노동청처럼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과태료나 벌금 등 행정처분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요. 조사 후에 시정권고를 할 뿐이고, 조사대상기관이 그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아도 강제적으로 집행할 수 없기때문에 매우 제한적이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 상황에 처한 노동자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근로감독과의 조사와 노동청의 행정 처분이 실효적일 때가 많아요. 아울러 인권센터의 설립 취지에 맞게 도정에서의 인권침해적인 요소나 차별 문제를 적극 발굴하고 개선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Q. 괴롭힘 문제가 대다수인 것은 왜일까요?

 일상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많은 것도 있고요. 괴롭힘을 경험하는 노동자는 차별이나 자유권(사생활, 통신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보다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의 괴롭힘이 더 크게 와 닿을 거예요. 누가 나에게 폭언이나 비속어를 한다든지, 공개적으로 망신이나 모욕감을 주는 것은 누가 들어도 인권침해이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예를 들어 소속기관에서의 서약서 작성이 양심의 자유 침해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거든요. 인권 실태조사를 해봐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당사자에게는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요.

 Q. 인권상담이나 조사 등은 업무의 성격상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주로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상담이나 조사 업무하는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큰 힘이 돼요. 개인적인 신앙생활도 큰 원동력이고요.

 가족들과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여행하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제 몸과 마음을 보살피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다산의 멋진 활동과 찐과 라이언을 보며, 다시 단단하고 든든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찾아와주신 다산에 정말 감사합니다. ^^

공부를 하면서, 이주인권을 다루면서 신세계를 접한 듯 너무나도 재미있고 신났었다고 이야기하는 채리님의 얼굴에 반짝반짝 빛이 났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인권의 현장은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힘을 지니고 있는듯하다. 채리님이 만나는 사람과 현장이 다시 그를 역동하게 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