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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활동 소식

[가을공부방후기 ]필리버스터에서 못 다한 이야기:쓸모 있는 자만 산다?

참가자 강봉춘님의 후기입니다.


!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 그때 (고문당하고 아기도 잃고) 물론 힘들었지만, 저는 그 시기를 제가 비상했던 때라고 생각해요. 저는 태양을 향해 날아올라봤고 불새가 되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올해 초, 오로지 국정원을 위한 법인 테러방지법이 직권 상정되지 않았다면 나는 은수미란 이름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 모른다. TV 토론 화면에서 얼핏 유쾌한 아줌마로 지나갔을, 이 분을 다시 보게 했던 것은 단상에서 10시간을 버틴 그 독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필리버스터가 끝난 뒤 바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은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 하늘을 누벼봤던 경험을 가진 선배로서 젊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마음껏 외쳐보고 끝을 봤던 내 안의 힘이 무엇인지. “

 

행궁동 문화상회를 찾아가던 저녁. 팔달산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타오를 것 같던 불새 은수미씨에게 형광등 백 개의 후광은 없었다. 안경이 살짝 삐뚤어져 있어서 그랬는지 더없이 평범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여리여리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늘 실패하듯 저분도 늘 실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저 사람 혼자 대체 뭘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 딱지가 붙은 사람을 함부로 믿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먼저 저 분이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지를 봐야했다. 은수미 의원이 했던 말을 한 쾌에 정리하자면 이렇다.

 

" 백화점에 가면 우린 정규직을 볼 수 없습니다. 그 곳의 모두가 파견 도급 하청 노동자들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정규직 1%가 고용계약 없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청사회입니다. 10개의 의자가 있어야 할 곳에 5개만 놓고 노동자들이 서로 앉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5개는 없는게 아니라 숨겨져 있습니다. 하청시대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사회입니다.

 

지금은 또한 유목민의 시대입니다. 아이들은 학원으로 돌고 어른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그래도 정착민의 시대를 살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정을 붙이기도 전에 어디론가 떠나야했습니다. 내가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언제나 손님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미래 세대들아, 열심히 착하게 살아왔는데 노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저 어른들의 말을 이제는 듣지마라. 원래 불평등한 세상이라 말하지 마라, 제발 불온해져라. 너는 그래도 괜찮아. 저 불손한 어른들에게 공손해지려고 하지마. 가만히 있다가 누가 먼저 죽어나가고 있는지 지금 보고 있잖니?

 

세계 전역에서 영웅이나 스타없는 정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팬클럽식 정치는 이미 한계에 왔습니다. 우리 곁에도 이미 시작된 이런 정치가 있습니다. 나는 그 작은 주체들이 모이는 거점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약자 편에 서는 10%의 의원이 차 있는 국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정치적 훈련이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그래서 90도로 열심히 인사하고 다닙니다. 지역구에 인사하러 다니는 걸 몰라서 안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미래 세대들이 뛰어놀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그걸 만들고 싶어 이렇게 다니고 있습니다. “



사람들의 알듯말듯한 표정과 박수로 강의는 끝났다.

 

나는 플랫폼이라는 게 무엇인지 한참을 그려봤다. 혹 내가 찾고자 했던 답은 아닐까? 나는 내가 사는 곳에서 늘 단절을 마주하며 그것을 풀 채널을 찾아왔다. 부모 자식 사이, 정치인과 국민 사이, 교사와 학생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에서 소통을 이뤄 줄 것은 무엇인가?

좋은 사람들이 뭉친 더불어 민주당이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당으로 욕먹는 이유가 나는 채널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질문했다. 채널이 있나요?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듣고 있는 채널이요. 혹시 말씀하신 플랫폼이 소통채널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니란다.

 

그 플랫폼은 정치인을 찾아오게 만드는 플랫폼이라고 했다. 은수미 의원은 정치인의 정착 욕심에 대해 말했다. 표를 얻는 오래된 공식이 나와 있다. 그러니 누구도 이런 자리에 나올 필요가 없다. 그 공식을 바꾸려면 그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미래 세대들이 지금 암울한 이유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만들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뒷자리 젊은 친구가 우린 지금 어디서 살든 중요치 않다고 외쳤다.

 

그 말이 귀에 맴돈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온 그 친구의 감정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강물에 몸을 던졌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수원 바닥을 오로지 떠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뒤돌아 싸우기로 했다. '사나이 발 닿는 곳이 고향이다'는 말을 몸에 심어 키웠다. 내가 밟는 땅을 천천히 거닐었고 이웃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안하던 인사를 하고, 먼저 찾아갔다. 내 삶의 정치가 이뤄지고 있음을 느꼈다. 예전처럼 어떤 위대한 정치인이 나타나 뭔가 해주기를 바라던 나는 사라졌다.


다담 문화 상회를 나오며, 전선으로 뛰어든 저 강인하고도 어여쁜 분과 함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행복한 고민을 더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