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공부방 참가자 최수정님의 후기입니다.
다산인권센터의 가을공부방에 대한 홍보물을 보고는 ‘한번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수미 전 의원은 올해 초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진행한 필리버스터로 유명한데, 강연 제목에도 ‘필리버스터에서 못 다한 이야기...’라고 되어 있어서 그때의 생생했던 현장과 뒷이야기를 좀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원래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뒷담화가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날 같이 갈 동무가 없어서 그냥 접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마침 집과 강연 장소 가는 길이 같은 방향이어서, 마침 강연에 가시는 분을 만나게 되어서, 그분과 동행하여 강연 장소로 향하게 되었다.
강연 장소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오픈 카페였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다렸다. 시작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빈 자리가 보였었는데,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찾아오다 보니 강연 중반에는 이미 카페가 비좁을 정도였다.
은수미 전 의원은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준비한 강연을 이어나갔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1944년의 필라델피아 선언을 시작으로 세계 인권선언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까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대해 천명한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본 원칙이 지금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자본의 이익 앞에서 얼마나 힘없이 무너져 버렸는지 그리고 무너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 전 사회적 공분을 샀던 구의역 사고는 연간 2,000여명이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나라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관행이 되어 버린 나라에서는 그리 놀라운 사건도 아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연간 2,000명이라니, 하루에 5명 이상이 산재로 매일같이 죽어나가는 데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사회라니, 오히려 그 숫자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30대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 불온해져야 한다고 하는데, 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기만 하는 이 사회에서, 청년층에게는 더욱 잔인해지기만 하는 이 사회에서, 이제 청년층이라기보다는 기성세대에 가까워지고 있는 나는 청년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고민들이 머릿속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 함께 한 청년들이 반가웠다. 그들의 질문이 반가웠다.
어느 한 고등학생은 친구들은 다 공부하느라 바쁜데 혼자 이런 곳에 나와도 되나 싶다가도 세월호 집회에 나갈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위 사람들한테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질문했다. ‘해야 한다’고 주어지는 것, 소위 평범한 것, 정상이라고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은 나의 욕구나 현실과는 다른 실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래서 언제나 괴리가 존재한다. 모두가 그 괴리를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그게 정상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노력하면 그 괴리를 줄일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불가능을 쫓으며 살고 있다. 어쩌면 ‘야자’를 째고, 세월호 집회에 나가고, 이런 강연을 들으러 다니는 것은 그 불가능성을 쫓기보다 그 정상이라는 삶의 모습이 허상임을, 그것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알아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은수미 전 의원의 답변과 상관없이 나는, 이제 그 학생은 그 불가능성을 폭로하는 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나서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길에 함께 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나도 그 중에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지금 내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나 방법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고민거리를 던져 준 강연이었다. 이는 강연자인 은수미 전 의원 본인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의원이 아닌 정치인으로서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그는 계속 고민 중이라고 했다. 모두가 각자 또 같이 고민하면서 행동해나가야 하는 정답이 없는 문제, 혹은 끝이 없는 숙제 같다. 기대했던 필리버스터 뒷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머리 아픈 숙제만 안고 돌아가는, 왠지 낚인 기분이었지만 낚아 줘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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