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발랄했다.
10년이 넘도록 발길 한번 안 했던 대학을 다시 찾은 첫 느낌은 그랬다. 환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학생들,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괜한 설렘도 불쑥 밀려온다. 그래도 많이 변했다. 매일 같이 대자보와 선전물품을 외상으로 사왔던 그 문방구는 자취를 감췄고, 개강파티 하던 허름한 술집들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가끔 유인물 돌리러 다녔던 주변의 공장들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학교도 웅장한 건물이 늘었다. 15년 만에 만난 이상훈 교수님도 세월의 흔적은 역력했다. 그래서인가 설렘은 낯선 느낌으로 금세 변해버렸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재단비리와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학교운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바로 수원대학교다.
▲ 4월 17일, 이원영·배재흠·이상훈 수원대교수협의회 공동대표가 수원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유혜준
수원대, 28년 만에 교수협의회 결성하다
지난 3월 19일 수원대 교수들이 ‘교수협의회’를 28년 만에 결성했다. 배재흠(화학공학과)·이상훈(환경에너지공학과)·이원영(도시부동산개발학과) 교수가 대표로 활동 중이다. 잃어버린 10년도 아니고 잃어버린 28년이다. 28년 전 교수협의회를 주도했던 교수님들은 모두 해직되거나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엄혹했던 80년대에는 그럴 수 있다 치자. 2013년이다. 교수노조도 아니고 임의단체인 ‘교수협의회’를 만들었다고 미행은 기본이요, 갖은 협박과 동료교수들 간의 이간질을 시키며 전 방위적인 압박을 당하고 있다. 얼마 전엔 긴급 학과장회의를 열어 ‘교수협의회에 반대한다’는 성명서에 서명을 받아 같은 날 정오까지 제출할 것을 자발적으로(?) 결정, 대학 내 교수 대부분이 서명을 받아내는 일사 분란함까지 보였다. 참다못해 세 명의 교수님들은 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고 조사 중에 있다.
“교수들은 대자보에서 “대학은 지혜를 생산하는 곳이다. 공동체 문제의 해결방식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최근의 학생회가 벽보 등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방식은 공멸의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면서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총학생회장 등의 학외방출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1998년 3월 18일 한겨레 기사 ‘학생 나가라는 교수 대자보’ 中>
1998년 나는 수원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하고 있었다. 개강과 동시에 재단비리 척결과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요구하면서 강도 높은 싸움을 시작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총학생회는 학교 측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교수님들은 ‘그만하라’고 매일같이 면담을 잡았다. 결국엔 총학생회장을 ‘학외방출’해야 한다는 일부 교수들의 대자보가 붙었고, 단식농성장은 교직원들에 의해 싹쓸이 당했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었다. 교수님들을 향해 함께 좋은 학교 만들어보자는 순진한 호소는 먹히지 않았다. 일부 보직교수들의 폭력적인 행위보다 무심한 눈길로 침묵하는 교수님들이 더 서운했다. 여하튼 아래의 성명서를 보자.
“우리 교수일동은 대학기관인증 및 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 대비하여...(중략)...학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근거 없는 비방을 외부로 유포시켜 학교의 명예와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이에 우리 교수 일동은...(중략)...분열과 갈등, 혼란을 조장하여 수원대학교의 발전을 저해하는 교수협의회의 활동에 대해 명백한 반대의사를 밝히는 바이다” <2013년 4월 15일 발표한 성명서 中>
1998년 일부 교수이름으로 발표했던 성명서와 2013년 교수들의 서명을 받아 발표한 성명서는 15년의 시간을 무색케 할 만큼 닮아 있다. 학교를 시끄럽게 하는 학생들은 내 쫒아야 하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교수협의회를 반대한다는 이들의 주장이 비록 총장을 비롯한 고운재단 측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 생각해도 저들의 표현대로 ‘지혜를 생산’하는 대학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는 모르겠지만, 교수들이 지금 학교와 재단의 요구에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 수원대학교 교원임용악정서(이하 약정서)에서 알 수 있었다.
우린 노예다
앞서 말한 약정서를 토대로 보면 전임교수라고 해도 1년 단위로 재계약해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문제는 1년 뒤 재임용 조건이 가관이다. 재임용을 ‘득’하려면 ‘업적평가 100점 중 85점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여기서 업적평가점수 100점 중 18점이 ‘학교봉사점수’ 명목이다. 말 그대로 학교에서 판단하는 점수라는 말이다. 18점을 제외하면 82점. 논문을 아무리 많이 쓰더라도 재계약을 할 수 있는 85점 이상을 받으려면 학교에서 매기는 점수를 많이 따야 한다. 여기서 누가 학교나 재단 측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약정서에는 ‘재임용탈락에 대한 이의 부제기’와 ‘관련한 일체의 손해배상 등을 청구 할 수 없다’고 못 박아 버린다. 교수협의회 온라인 카페에 어떤 교수는 ‘우린 노예’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런 불공정한 약정을 쓰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다. 목구멍이 포도청 아닌가. 학생들은 또 어떤가.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열악한 교육환경과 시설 문제로 학교 홈페이지가 마비될 지경이 됐다. 역시나 학교는 학교 홈페이지를 개편해 버렸다. 학생들이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의견개진이 어렵게 되자 온라인 카페를 열었다. 학교 도서관에 비치해왔던 한겨레, 경향신문도 사라졌다는 제보도 있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공간, 수원대학교다.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고달프다.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교육과학기술부는 과거나 지금이나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다.
‘쁘띠 부르주아’ 운운하며 계급적 분석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싶지 않다. 21세기 대한민국 교수들은 이미 ‘쁘띠 부르주아’의 위치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앞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한 치의 다름이 없다. 그 위치에서 대학을 운영하는 재단과 맞설 수 있는 용기에 다만 박수와 연대의 손길이 필요할 뿐이다. 1998년 교직원들에 의해 단식농성장이 싹쓸이 당할 때, 내가 소속되어 있던 환경공학과 교수님이 함께 계셨다. 교직원들이 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서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난, 미안해 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녔던 수원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상황들에 대해 나 스스로 실망할 필요도, 절망 할 필요도 없다. 지금 싸우고 있는 교수들을 향해 공감과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것, 그게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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