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지개를 띄울 수 있을까?
지방선거가 끝난 뒤 인스타그램을 보다 한 친구의 스토리를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평소 정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던 친구가 이번 지방선거의 참정권 침해 문제를 이야기하며 올림픽공원 현장의 사진을 올린 것이다. 사회적 이슈를 좀처럼 언급하지 않던 친구가 '참정권 침해'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드디어 함께 이슈를 이야기 할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전 부터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에는 침묵하던 친구 모습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더 크게 남기도 했다. 누군가의 참정권이 침해되었을 때는 분노하지만,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또 다른 누군가의 참정권 침해는 왜 쉽게 외면 되어 왔던 것일까.
2026년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충분한 투표용지를 준비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부족한 투표용지를 신속하게 보완하지 못한 선거관리위원회의 대응 역시 심각한 실패였다. 선거의 공정성과 참정권 보장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행정 착오나 해프닝 정도로 넘겨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제도가 얼마나 쉽게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정권 침해는 이번에 처음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투표소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 투표소에 와도 제대로 투표할 수 없는 사람들, 정치 참여 자체가 제약되는 사람들이 존재해 왔다. 청소년은 정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으면서도 선거에 참여할 수 없고,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투표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투표소 접근 자체가 장벽이 되기도 하며, 이주민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지방자치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발달장애인의 투표 참여율이 다른 장애인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것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일까. 여러 장의 투표용지에서 원하는 후보를 찾고, 투표지를 접어 투표함에 넣기까지의 과정은 비장애인에게는 익숙한 절차일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매우 높은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쉬운 정보 제공, 투표보조,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권리를 행사하기보다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참정권 침해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이후 올림픽공원에서 펼쳐진 풍경은 우리 민주주의의 또 다른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곳에서는 선거의 문제를 말하는 것 자체가 곧 진영의 언어로 해석되곤 했다. 부정선거를 이야기하면 극우라는 낙인이 찍히고, 부실선거를 이야기하면 좌파라는 낙인이 찍혔다. 투표하지 못했다는 분노로 모인 사람들, 민주주의가 침해 되었다는 충격으로 거리로 나온 사람들. 그들은 분명 본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오고 모였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는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혐오와 차별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모두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일부 사람들에게는 “지금은 조용히 있어라”라고 말하는 모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 함께 설 수 있는 자리였을까. 그리고 그 위에, 서로 다른 색이 어우러진 무지개가 뜰 수 있을까. 무지개는 하나의 색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색이 함께할 때 비로소 무지개가 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장애인과 이주민, 성소수자, 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 역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불편함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의 사회는 무지개처럼 빛날 수 있다.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단지 투표용지의 숫자가 아니다. 선거관리위원회만 바뀐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했을 때가 아니라, 가장 쉽게 배제되는 사람까지 동등한 정치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권리를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정치를 만들고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다.
올림픽공원을 넘어 우리의 일상에도 무지개를 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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