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된 희망에 내일은 없다!
이야기 하나
그를 처음 본 건 유난히 뜨거운 여름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원역 주변에 주차된 공유자전거 ‘타조’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다 그가 턱하니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년으로 보이는 그는 길가에 버려진 일회용 음료수 컵을 집어 들어 그 안에 남겨진 음료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옷차림을 살폈고, 그는 아직 거리에서 지내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 한두 번 지나쳤을 뿐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를 얼마 전 다시 만났습니다. 일주일 내내 한파가 극성이던 그때 수원역 지하통로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습니다. 출근시간,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틈바구니로 외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가방을 옆에 둔 채 앉아있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앉은자리 앞에는 동전이 몇 개 담긴 모자가 놓여있었습니다.
이야기 둘
서울 사는 친구 집에 들렀습니다. 낮 시간인데 대학에 다니는 딸이 방에 있어 방학인지 물었더니 이번 학기 휴학했다고 하더군요.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학교에 입학해 친구들 얼굴, 캠퍼스 한번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일 년을 보내고 나서, 신입생은 아니지만 신입생과 다를 바 없이 낯설게 학교를 다니다 휴학했다고... 그러면서 친구는 졸업유예제도를 아는지 물었습니다. 졸업요건을 충족했지만 졸업하지 않고 일정기간 미루는 것으로 취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졸업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기업이 졸업예정자 또는 재학생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올 한해(1월~10월 평균) 청년층 인구의 4.9%(41만4천명)가 경제활동이나 구직을 하지 않고 ‘그냥 쉰’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2020년 5%(44만8천명)가 가장 높았지만 이후로 매년 증가추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팔자 좋다’, ‘철없다’라고 물색없는 소리를 하겠지만 일자리가 줄어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남성과 여성 등 이른바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현실은 청년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희망과 일상을 유예하게 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새해맞이가 그리 기쁘고 설레는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신년 해돋이를 보기 위해 태백산을 오르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일과 소망을 빼곡히 적어 내려가던 기억이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실수라도 들려오는 뉴스소리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현실은 낙담이 희망을 가립니다. 내년은 아니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단 하루도, 한 시간도 희망과 행복을 ‘유예당하지 않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벗바리님 모두에게 그런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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