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집회의 권리 보장이다. 정부·여당은 집회에 대한 통제와 억압 즉시 중단하라
지난 5월 18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설노조가 17일 진행한 이태원참사 200일 추모문화제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거리 노숙을 했다는 이유로 혐오감을 유발했다며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호응하여 다음 날 국민의힘은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관계부처의 엄정한 대응을 촉구하고, 관련법 개정 등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물대포를 사용해 집회를 해산하는 것이 법치라며 폭력을 부추기는 발언을 뱉기까지 했었다. 나아가 24일 당정협의회는 △불법전력 단체의 공공질서 위협이 명백한 경우나 출퇴근시간대 도로 집회는 신고 단계에서 불허 △노숙도 집회의 연장으로 간주하고 문화제 등을 가장한 편법 집회에도 적극 대응 △심야시간대 옥외 집회 제한과 소음 기준 5~10데시벨 강화 집시법 개정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 매뉴얼 강화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모든 것이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기본권의 심각한 후퇴를 가져오는 위헌적 발상을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은 없이 오로지 집회를 통제하고 억압할 의도로 가득한 말로 요란하게 떠들어 댄 일주일이었다.
경찰과 정부·여당의 이러한 입장들은 기본권으로서의 집회의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는 것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위헌적 발상이다. 공권력감시대응팀은 그중 가장 주요한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1. 야간집회가 가능한 것은 ‘입법 공백’ 아니라 헌법과 시민의 뜻을 담은 ‘입법 결정’이다.
야간집회금지 조항 삭제는 2008년 대규모 촛불집회에서 불법의 꼬리표와 경찰의 폭력에도 멈추지 않고 거리의 불복종행동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외쳤던 시민들의 성취였다. 2009년 헌법재판소는 집시법 제10조 야간 옥외집회금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했다. 2010년 6월 30일 개정 시한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야간시간대 집회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개악을 시도했다. 개악 시도는 시민의 비난과 저항을 받았다. 시민들의 항의전화와 시민사회의 기자회견, 성명이 이어졌고, 민주당에게 개악안에 타협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6월 28일 집시법 10조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강행처리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야간집회금지는 효력을 상실했다.
그 뒤로도 여러 번 집시법 10조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13년 동안 개정되지 않은 것은 개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0년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나 경찰 등은 집시법 제10조가 삭제되면 소위 ‘불순한 세력’들에 의해 사회가 혼란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야간집회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이 가능했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박근혜 탄핵을 외치며 밤거리를 촛불로 밝혔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 전국의 밤거리를 채웠던 시민들이 없었다면 탄핵을 성공한 역사도 없다.
건설노조의 야간 문화제가 탄핵집회와 달리 폭력적이어서 개정하자는 것인가? 그날은 10.29 이태원 참사 200일이 되어 시민들과 함께 유가족을 위로하며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촛불과 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 곁을 지킨 것이었다. 건설노조 집회를 핑계로 야간집회금지를 하겠다는 것은 애도와 추모를 하는 시민의 연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야간집회가 불법이 아니게 된 2010년 7월 1일 인권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집시법 10조를 삭제하거나 별도의 입법을 하지 않고 소멸시키는 것도 입법자로서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입법 권한을 발휘하는 것’이라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입법 공백이라는 말로 호도하지 말라. 지난 13년간 자신들의 개악 시도가 실패한 것은 입법 공백이 아니라, 시민들의 요구에 국회가 호응하여 보여준 입법 의지였고 집회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원칙의 확립이었다.
2. 경찰 면책은 공권력으로 집회를 제압하는 폭력을 국가가 주문하는 것이다.
여당은 경찰이 집회를 강력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상당히 못마땅한지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에 대해서는 확고히 보장하겠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면책조항을 넣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면 굳이 면책을 논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면책조항 신설을 이야기하는 것은 물리력 등 강도 높은 경찰력 행사로 집회를 제압하라는 주문이고,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부상 등이 발생해도 면책하겠다는 의도다.
지난 4월 13일 고(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야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단을 받았다. 대법원은 구 전 청장을 집회·시위와 관련해 경찰 인력·장비의 운용, 안전관리의 총괄 책임자로 보고, 그가 “지휘권을 행사해 적절한 조처를 했더라면, 과잉 살수로 인해 피해자 사망이라는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집회·시위 현장에서 불법·폭력 행위를 한 참가자들이 그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찰 쪽이 집회·시위에 대응해 적정 수준을 초과한 수단을 썼다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간 우리는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도 이를 지휘한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어 인권침해가 반복되는 문제를 지적해 왔다. 집회 현장에서의 물리적 충돌은 경찰의 강경한 집회 진압이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경찰에게 면책이라는 제도를 만들 테니 강력하게 집회를 통제/진압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경찰의 책무는 집회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하게 집회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백남기 농민을 잃고 나서야 살수차의 위험성이 확인되었고 결국 살수차를 집회·시위에는 사용하지 않는 원칙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잉진압으로 누군가 다치고 생명을 잃는다면 그것은 경찰에도 비극적인 일이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부추기지 말라.
3. 합법/불법이 아니라 평화 집회를 보장하는 것이 헌법과 인권의 원칙이다.
정부 여당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를 보장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제는 틀렸다. 2016년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대한민국 공식 방문 이후 보고서를 통해 집회가 국제인권법 기준에 따른 적법한 것으로 추정되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 보장을 위해 국내법의 ‘합법성'을 잣대로 따지는 것은 평화로운 집회에 대한 권리가 국제인권법의 기준이 아닌 국내법에 의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은 본질적으로 합법적인 권리이며 한국 정부는 이를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즉 평화적인 집회는 집시법과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합법이라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평화적인 집회는 그 자체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인권법의 요구이다. 또한 경찰이 집회를 금지하거나 불법으로 간주하는 이유 - 예를 들어 교통 방해, 시민들의 일상 방해, 소음, 후 순위로 신고된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집회 등은 시민적ㆍ정치적 권리규약 제21조에서 집회 제한의 정당한 사유로 제시하고 있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도 특별보고관은 지적했다.
경찰의 허가제로 변질된 집회신고제,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공공기관 인근 집회를 제한하는 11조, 교통소통이라는 자의적 제한을 가능하게 하는 12조 등 집시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이 아니라 집회를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해 제정된 위헌적 법률이다. 이를 근거로 ‘합법적인 집회’만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인식은 실로 한심할 따름이다. 건설노조에 대한 자의적인 불법 혐의를 내세워,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
“집회나 시위는 다수인이 공동 목적으로 회합하고 공공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서,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통행의 불편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득이한 것이므로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은 2009년 건설노조의 삼보일배 행진을 정당행위로 판단하며 위와 같이 판시했다. 집회시위란 불편을 초래하는 것, 그리고 그 불편을 시민들이 함께 포용하는 것. 이를 통해 사회를 향해 외치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민주사회를 위한 헌법적 결단으로서의 집회의 자유가 갖는 의미이다.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집회에 대한 통제와 억압만을 내세우는 정부와 여당은 기본권을 보장할 자신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더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집회의 권리 보장이다. 야간집회금지, 경찰면책을 비롯하여 평화적 집회를 가로막는 모든 시도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2023.5.25
공권력감시대응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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