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을 잡아줘야 하는 이유
쌤통 (상임활동가)
우리 사무실 활동가들은 점심을 돌아가며 준비합니다. 보통 하루 두 끼 정도의 식사를 하는데 그 중 점심 한 끼는 거의 매번 사무실에서 먹습니다. 점심당번은 오전 출근과 동시에 그 날 점심을 먹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메뉴를 공지합니다. 비건식을 하는 활동가가 있기 때문에 그 것 역시 고려하여 식사를 준비합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나 특별히 불만을 갖는 사람은 없습니다. (짜다, 싱겁다는 이야기는 간혹 있지만...)
점심식탁에 모여 앉아 종종 신변잡기 스몰토크를 하는데, 오늘은 최근 핫하다는 ‘깻잎논쟁’이 수다반찬으로 올라왔습니다. 내용인 즉, 나와 식사도중 내 애인이 내 친구의 깻잎장아찌를 잡아준다면 어떨 것 같으냐에 대한 논쟁입니다. ‘논쟁’을 붙여서 까지 이야기를 할 주제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활동가들은 이 ‘논쟁’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A : 깻잎 좀 떼어줬다고 갑자기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긴다면 깻잎 때문이 아니고 그 전부터 그 사이는 문제가 있었던 거지... 그 정도 서로간의 신뢰가 없으면 어떻게 만나고 사귀나? 나만 계속 보라고 하면 어느 순간에는 숨 막히지.
B : 근데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할 행동은 안하는 것이 맞지 않아? 자기 애인을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니고 괜한 오해를 살 행동은 나 같으면 안할 거 같은데...
C : 깻잎 말고 새우, 패딩자크 별의별 논쟁이 다 있어요. 코로나로 인한 사회병리 중에 하나 일지도 몰라...
D : 애정이고 나발이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데 같이 먹는 밥상에서 모른 척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냥 선한 오지랖 같은 건데 논쟁의 주제가 되는 것이 아이러니하네.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두의 수다를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말은 ‘선한 오지랖’입니다. 깻잎논쟁을 단순하게는 이성간의 애정과 질투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조금 더 드려다 보면 우리 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분투하고 있을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상황을 살펴서 도움을 주는 작은 친절 즉, 선한 오지랖으로 깻잎 잡아주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서로를 살피고 도움을 주는 엽엽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는 연대성에 기초한 실천이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뭐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인데 그 작은 행위를 너무 과대 해석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의 실천은 내 주위의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혹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하거나 곤란한 상황에 있지 않은지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돌아봄과 살핌 그리고 작은 실천이 쌓여서 인권관점과 감수성이 높아 질 것입니다. 혐오와 차별이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별게 다 인권이다’라는 정신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인권을 말하고, 고민하고 서로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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