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보고서 발간 재고해야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도 업무 계획안에서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책임성과 역량 제고 – 위원회 전문성 제고와 독립성 강화”의 한 방안으로 국가인권보고서 발간을 제시하였다. 국가인권보고서 발간은 2020년 12월에 있었던 당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의 대통령 특별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례적으로 국가인권보고서 발간 등을 제안한 것이 그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즉,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제안을 국가인권기구인 인권위가 받아들여 대한민국의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보고서를 발간하겠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이를 위한 예산 3억 원을 확보하고 내년 6월 발간을 목표로 보고서 발간 준비에 착수하였다.
미국과 EU가 예외적으로 다른 나라의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기는 하지만 국가가 스스로 자국의 인권을 평가하고 이를 보고서로 내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국가라는 인권침해의 주체에 맞서 싸우며 발전해온 것이 인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가 스스로 인권에 대해 평가하고 보고서를 발간 하는 것은 국가에 불리한 인권상황을 감추거나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서술되거나,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국가기관 스스로 한정할 위험이 있다. 한마디로 자화자찬하는 인권 보고서가 만들어질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왜 정부가 발간의 주체가 되는 국가인권보고서가 존재하지 않는지 그 이유는 이렇게 분명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보고서의 주체가 된다고 해도 그 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매년 자체적으로 연례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인권위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인권위의 입장은 국가인권기구의 입장으로서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면 이것이 한국 인권위원회의 보고서인지, 아니면 한국정부의 보고서인지 그 성격이 불분명해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이지만 동시에 독립기구이다. 인권위가 국가인권보고서를 낸다는 사실 자체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인권위가 낸 보고서에 “국가인권보고서”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인권위가 발간하는 연간보고서가 있고, 정부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의 이행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국가인권보고서를 따로 발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국가인권보고서보다 현재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제대로 수립되고 이행되고 있는지부터 정부와 인권위가 점검하는 것이 훨씬 중요 하다. 인권위 스스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3억이나 예산을 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보고서 발간을 강행하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더구나 코로나19로 한국의 인권상황이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시점에서 각 분야와 여러 사회적 소수자집단의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지 실태조사와 적극적인 인권정책 생산과 권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막대한 예산과 시간, 인력을 동원해서 보고서를 발간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독립성이 생명인 국가인권기구라면 인권의 증진과 보호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예산의 반납까지도 각오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의 국가인권보고서 발간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진행되고 발간된다면, 자칫 이 보고서는 두고두고 국제사회의 망신거리마저 될 수 있다. 결국 국가인권보고서를 안 만드는 것만 못하게 될 것이다.
인권위 스스로 주장하듯이 제한된 예산과 인력에도 불구하고 대응할 인권현안은 너무나 많다. 송두환 위원장 체제에서 이런 현안들에 인권위가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인권위의 역량을 모을 시기라는 점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우리 인권정책대응모임은 인권위가 국가인권보고서의 발간의 필요성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보고 보고서 발간 계획을 전면 재고할 것을 요구한다.
2021. 12. 22.
인권정책대응모임
(국제민주연대, 다산인권센터,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연분홍치마,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천주교인권위원회, 희망을만드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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