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죽인 것은 건물이었다그들을 죽인 것은 건물이었다

Posted at 2015. 4. 28. 10:47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네팔 지진ⓒAP, 뉴시스



지진으로 1천8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네팔 카트만두. 일주일 전, ‘1934년의 강진이 재발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전세계 약 50여명 지진전문가들과 사회학자들이 모여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캠프리지 대학 제임스 잭슨 교수는 “지진은 자연재해지만 카트만두의 피해는 인재”라고 말했다.

또다른 지진학자 데이비드 월드는 “같은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100만명당 사망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0∼30명, 네팔에서 1천명, 파키스탄, 인도, 이란, 중국 등지에서 1만명으로 차별화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건축규제가 없고 내진 설계를 고려하지 않은 느슨한 행정 때문에 부실한 옛 건물이 즐비하고 자녀에게 똑같이 땅을 나눠주는 상속법령 탓에 좁은 부지 위로 건물이 치솟아 지진 피해가 커지는 데 한몫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오해저드 인터내셔널의 하리지 연구원은 “사실 네팔도 카트만두의 지진 위험을 알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댈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예견은 일주일 뒤 잔혹한 현실이 되었고, 현재 진행형이다. 잭슨 교수는 “주민들을 죽인 것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었다”라고 평가했는데, 현지 주민들 말에 따르면 지진이 나자 건물 상당수가 무너졌고, 도로는 두 동강이 났으며 국립경기장 문도 무너져 내렸다 한다. 집 안에서 피해 입고 사망자가 속출한 상황이라 한다.

노벨 경제학상 받은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이다. ‘센 지수’라고 불리는 지수를 통해 빈곤 측정한 연구로 주목받는 학자이다. 그는 굶주림과 빈곤은 생산의 부족보다 잘못된 분배 탓이라고 주장하는 독특한 경제학자다.

자신이 어릴 때 지켜본 벵골의 처참한 기근도 식량 공급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공급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해 야기됐다 분석한다. 센은 “경제가 성장해도 빈곤이 줄어들지 않으며 분배를 수정하기 위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센은 “빈곤과 기아를 해소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은 민주주의”라고 믿는다. 그는 방글라데시나 1950년대의 중국, 아프리카의 대규모 기아사태는 민주주의 부재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이해하고 정치적 자유보다 권위주의 정부가 신속한 경제발전을 가져온다고 ‘개발독재’ 불가피성을 주장했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네팔 지진의 대규모 피해 원인, 사후 대책 과정에서 벌어질 여러 가지 문제를 고민해 본다. 재난과 참사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지 않나. 전 세계 지진학자들의 예견처럼, 경제학자 센의 주장처럼 사람들은 지진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잘못 설계된 건물 때문에 죽는다.

위험한 배 세월호를 규제 없이 바다 위에 띄웠던 한국은 여전히 규제완화를 외친다. 최고 책임자 대통령은 참사 1주기에 대책 없이 외국 여행길에 올랐다. 대통령 가신들은 비리 주역들이고 그걸 책임지는 자 역시 없다. 돈 받은 이들은 줄행랑이고 돈 줬다는 이들만 희생된다.

부패는 뻔뻔스럽고, 민주주의는 설자리가 없다. 삶과 생명을 보존할 규제는 단두대에 올리겠다고 한다. 책임지는 자가 모두 사라진 대한민국도 지진이다. 만약 이런 나라에서 네팔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면, 누가 먼저 희생될까.

허술한 건물에 둥지를 튼, 대다수 국민이 아니겠나. 네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위태한 우리 운명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2015. 4. 28. 경기일보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경기일보] 그들을 죽인 것은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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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고맙습니다고맙고 고맙습니다

Posted at 2015. 4. 28. 10:42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찬호 아빠 전명선씨. 그는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이 고개 디밀던 어느 날이었다. 경기도 미술관에 위치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공기는 그때까지 서늘했다. 유가족들은 낯선 이를 경계했다. 가족대책위 진상규명분과장 찬호 아빠를 만났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존엄과 안전이오?”라고 되물었다. 존엄과 안전이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언어로 부유한 채 1년이 흘렀다. 정부 시행령안으로 인해, 세월호 특별법은 쓰레기가 될 판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 시간이다. 수사권, 기소권 있는 특별법이 안 된다던 정치와 알량한 조사권마저 갈가리 찢어대는 정부에 의해 “내 자식 죽은 이유를 밝혀달라”는 당연한 호소는 비명이 되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무엇이든 안 된다” 말하기 위해 법전이 동원되었다. 바다에서 돌아온 이들에게는 살아왔다는 죄책감,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는 살리지 못한 죄책감이 남았다. 전남 진도 앞바다를 목격한 이름 없는 시민들은 자신들이 일궈온 체제의 실패를 직관하며 “미안하다”는 고백을 쏟아냈다. 정작 미안하다 위로해야 할 국가만 사라졌다. 구조의 실패에서 끝나지 않았고 애도와 치유, 추모의 실패로 이어졌다. 찬호 아빠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괜찮지 않아요, 아파요, 많이 아파요”

그는, 그들은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했고 어색한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수십 일 단식을 했으며 물집 잡힌 발로 팽목항까지 걸었다. 국회, 청와대 앞, 광화문 앞에서 노숙으로 밤을 새웠다. 지금도 삼보일배 하며 서울로 오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실인 것을 정말 모르냐”며 돈으로 모욕하는 정부에 머리카락을 밀며 대답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이 이런 것이냐, 가족을 위해 일하며 성실하게 세금 내고 살았는데 도대체 이 상황은 무언지 묻는다. 아빠에게는 찬호 없는 식탁의 부재가 304개의 비어버린 저녁 식사로 보인다. 그는 국가의 본질과 체제의 잔인함을 경험하며 앓고 있다. 입술이 퉁퉁 붓고 입안이 온통 헐어버린 그가 걱정돼서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 괜찮지 않아요. 아파요. 많이 아파요.”

문득 어떤 아빠가 떠올랐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의 아빠, 황상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수년 전이었다. “건강하던 딸이 일하다 죽었는데 회사는 개인 질병이라고 합니다. 억울해서 여기저기 찾아갔지만 듣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의 손이 떨렸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어떤 전문가도 장담하지 못했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이끌었다. 유미 아빠 황상기씨의 승리였다. 회사는 수십억원을 들고 찾아왔지만 문전박대당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7년을 오가며 승리를 일궈냈다. 유미의 죽음은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또 다른 유미의 불행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산재 인정 판결이 확정된 날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나는 유미에게 말했다. “당신은 훌륭한 아빠를 두었습니다.”

비통한 자들이 토닥여준 위로

모질고 잔혹했던 지난 1년은 찬호 아빠가 만들어낸 유미 아빠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했던 만큼, 앞으로 사랑할 시간만큼 용감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낸 1년, 유미에게 했듯이 말한다. “당신들은 정말 훌륭한 부모님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훼손된 존엄을 세우는 중이다. 찬호 아빠가 “존엄과 안전이오?”라고 다시 묻는다면, 대답하려 한다. 그것은 당신들의 지난 1년이었습니다. 위로받지 못한 시간 비통한 자들이 토닥여준 위로에 깊은 울음으로 답한다. “고맙습니다.”


2015. 4. 15. 한겨레21 <1057호>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한겨레21]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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