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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구)웹진_<다산인권>

누굴 지키려는 안보인지, 다시 물어봐야할 때

박진


제주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만에 제주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은 건, 부채의식때문이었다.

갈 때마다 해가 졌기에 어두운 밤바다 그늘에 가린 구럼비 바위는 연민과 애착의 대상이 되기 전이었다. 한주 전, 마을에 갔을 때도 강동균 마을회장을 빼앗긴 어수선한 날인지라 마을 사람들과 제대로 대면하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나에겐 강정을 지켜야하는 구체적 사연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행정대집행의 소식이 흘러나오면서부터 그곳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평화비행기보다 먼저 가야할 이유가 있었다. 구럼비 바위와 연선호 군락지가 무너지는 날이 만약 온다면, 그곳에 있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유는 대추리였다.

‘미군기지 확장이전’ ‘평화적 생존권’ ‘국가안보’ ‘반전 평화’... 건조한 워딩으로 되짚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대추리. 한국 국방부와 미군, 그리고 경찰이 대추리에서 벌였던 가공할 국가폭력의 경험은 강정 마을에서 벌어질 일을 예상하게 했다. 대추 초등학교에 있었던 허리 굵은 나무, 낡은 미끄럼틀. 저녁마다 붉게 타올랐던 노을, 미군기지 철조망을 기어올라 열매 맺은 호박넝쿨, 불타올라 사라진 무인상...그런 것들이 구럼비일테니까.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평화비행기가 도착하기 전, 마음이 급했던 해군과 정부는 구럼비 바위로 가는 모든 길에 높은, 팬스라 불리는 장애물을 설치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했다. 새벽 5시 어스름한 해도 없는 마을에 사이렌이 울렸다. 새벽 5시, 새벽 6시면 사이렌이 울리던 대추리와 다르지 않았다. 육지에서 왔다는 경찰들은 신속하고 기민하게 명령대로 움직였다. 접근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연행하고 검거했으며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평화의 진지를 하나씩 부숴나갔다. 어두움이 걷히면서 드러난 사람들의 얼굴은 땀과 피로, 흙덩이들로 얼룩져 있었고 무엇보다 이 모질고 야만적인 국가에 대한 분노로 어지러웠다. 이들을 절망에 빠뜨리면서까지,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해군기지. 그 해군기지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곳에서 내가 만난 질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안보논리

해군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이유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북의 도발을 억제하고 해양영토 보호를 위한 기동전단 수용 기지 건설이 필요하며, 국가경제, 전략적 측면에서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를 위해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며, 기존기지들이 기동부대 전력 수용에 부적합하므로 추가적 기지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으로 거대 크루즈들의 정박이 가능한 국제적 미항을 건설해 지역경제에도 이익을 주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군의 설명에 아랑곳없이 지난 4년을 싸워온 강정의 사람들은 건설되는 해군기지의 목적이 ‘미군의 기동전단이 사용하는 기항지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전략적 중심축이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고 있는 추세에 비춰볼 때 필연적으로 중국과의 군사적 갈등에 휘말리게 될 안보 위협을 동반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의심은 강정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국제 안보를 염려하는 평화활동가들의 걸음을 강정으로 재촉하고 있었다.

조작된 절차

한편으로 절차적 민주성을 확보했다는 주장조차 거짓이었다. 화순항과 위미에서 주민들의 반대에 밀린 해군은 급작스런 여론조사를 발표하고 강정인구 1,900명 중 불과 80명이 모인 마을 임시총회에서 만장일치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결의가 이뤄졌다며 2007. 5. 14. 해군기지 강정동 유치결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강정마을 임시총회까지 충분한 정보공개는 물론, 토론회나 설명회조차 개최되지 않은 비밀스런 결정이었다. 결국 2007년 8월 10일 마을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결의를 주도한 마을이장을 해임시켰는데, 당시 투표에는 마을주민 436명이 참가해 유효 투표수의 95.4%인 416명이 마을이장 해임에 찬성하였고, 열흘 후인 2007년 8월 20일에는 공개적으로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 마을주민 725명이 참가해 유효 투표수의 94%인 680명이 유치에 반대했다.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안보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우리 사회에는 ‘국익’ ‘안보’ ‘평화’라는 국가의 결정이 정해지면 어떠한 조작과 편법, 반인권이 판을 치더라도 입 닥치고 국가의 말에 따르는 것이 애국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에 이은 평택미군기지이전, 무건리 훈련장 확장 등 수많은 평화의 문제는 국익과 안보 앞에 힘을 잃었다. 문제는 절차가 무시되고 원인이 왜곡되는 ‘안보’가 정말 지키고자하는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구럼비를 지키고 싶다는, 자기가 살던 땅에서 그대로 살게 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박한 이유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이해시키지도 못하며 우격다짐으로 만들어낸 그 ‘안보’가 절대 절명의 순간에 누구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문제다. ‘안보 앞에 평화없다.’고 외치는 목에 핏발선 우익 노인네들은 지킬 수 있겠는가.

국민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고 만들어낸 편법과 협잡이, 결론에 있어서는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 국민을 지킬 수 있을까? 4년을 싸워 온 강정은 묻지마 ‘안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나야할 ‘안보’의 정의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결국 그래서 나는 대추리에서 5년 전에 만났던 국가폭력의 얼굴을 강정에서 또 한번 대면했다. 날것의 폭력 앞에서도 두려움은 없었다. 왜냐면 “해녀 엄마가 바다로 굴 따러 간 사이 하루를 놀아주었던 따뜻한 구럼비와 용천수를 지키고 싶다.”는 강정주민의 그 순박한 대답이 “수천톤의 미사일을 싣고 정박한 거대한 이지스함으로 네 평화를 지키고 싶다.”는 힘 있는 대답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훨씬 강해보였기때문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믿음이라면 평화와 안보가 나의 것이겠구나. 나와 그들을 때리고 잡아가면서까지 굴복을 강요하는 국가 따위는 거짓에 불과할 테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안보’에 대한 거짓말이 아니라 안보에 대한 믿음을 다시 줄 수 있는 안보민주주의 아닌가. 강정에서 만난 질문과 대답은 그것이었다.
  
* 박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