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희
유난히 더웠던 어느 여름 날, 신문 모퉁이에 실린 한 기사가 아직도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 있다.
어느 도시락 가게에 갓 스물이 된 한 젊은이가 찾아 와 흰 봉투를 내밀었다. 그 봉투 안에는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글과 함께 현금 12만원이 들어 있었다.
급식은 커녕 학교에 급식소조차 없어 많은 학생들이 2000원짜리 도시락을 배달받아 먹던 시절, 그 학생은 형편이 너무 어려워 도시락 값을 계속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자마자 그 동안 진 빚을 갚기 위해 도시락 가게를 찾아온 것이다. 가게 주인 내외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한사코 봉투를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학생의 마음도 마음이지만 그 가게 주인의 말이 가슴에 더 와 닿았다.
그 학교엔 워낙 가난한 아이가 많아 못 받은 도시락 값이 1년에 500만원을 넘었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오히려 학생이 3년 동안 도시락 값을 내지 못한 것을 내내 가슴에 두고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고....
얼마 전 서울시 다섯 살 훈이의 말도 안 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강행을 보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엔 도시락 가게 주인 부부처럼, 숨어서 남들 몰래 선행을 베푸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다는 걸 되새기고나자 그 동안의 격한 감정이 아이스크림 녹듯 내려앉았다.
학생이 받았을 상처를 오히려 염려하는 그 소중한 마음이 바로 인권이다. 그 소박한 마음이 인권에 시사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가위가 지났지만 여전히 무더운 날이 계속되는 요즈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아직은 너무나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껴진다. 따뜻한 마음 안겨주는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로 인해 말이다.
* 안기희 님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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