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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활동 소식

[희망버스]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 밀양에서의 1박 2 일

“야이 야이 야~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


무대 위 스무 명의 할머니들은 일흔, 여든 할 것 없이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싱글벙글 노래를 불러 제꼈다. 신났다. 힘들다고 이제는 지쳤다고 하소연해도 모자랄 판에 신명나는 노래를 불러주니 도리어 우리가 서럽다. 우리가 미안하다. 내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어설픈 불안에 휩싸였던 게 엊그제. 이 할머니들 앞에서 누가 감히 ‘노인네’ 운운하며 무시할 수 있을까. 이 할머니들 앞에서 누가 감히 ‘외부세력’에 휩쓸린 불쌍한 노인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일찍 찾아온 겨울만큼 찬바람 시큼하게 불어도 오랜만에 불콰하게 취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연신 ‘우리가 이길끼다’ 소리치신다. 우리는 웃다가 운다.

 



밀양을 향한 희망버스


애초 765kV 송전탑을 막는다는 상징적 목표였던 76.5대에는 못 미쳤지만 전국에서 2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밀양을 향하는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원에서 출발한 버스는 4시간을 달려 밀양에 도착했다. 애초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은 밀양 곳곳으로 흩어져 들어오는 희망버스를 통제하지 못했다. 물론 통제의 법적 근거도 없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향한 곳은 상동면 도곡마을. 이 마을 산꼭대기에 110번 철탑이 꽂히는 곳이다. 지난 10월 26일 공사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산에 오르지 못했던 주민들. 당신들이 지키고 당신들이 일궈온 이곳엔 수백 명의 경찰과 한전직원만 오를 수 있었던 곳이다. 그 곳을 함께 오르기로 했다. 물론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경찰은 이유불문 막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당한 공무집행도 아니고 산을 오르는 시민들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항의하지만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넓고 넓은 산을 봉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이었다. 주민들이 매일같이 올랐던 그 산을 법적 근거도 합리적 이유도 없이 통제하는 경찰은 애초부터 우리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우리는 경찰들이 막고 선 자리를 돌아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서 또 경찰이 막는다. 날은 어두워지고 마음은 조급해진다. 경찰의 대응도 수위가 높아졌다.

 



비폭력 비타협


가파른 산비탈에서 시민들을 고착시키기 시작했다. 경찰병력 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었기에 모두를 막지는 못하고 일부 여성들과 뒤쳐진 시민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우린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렇게 통행제한을 하는 법적근거가 무엇이냐고. 이 사람 대답이 걸작이다. “당신들에게 법 말할 필요 없다”
그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법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법이 있어도 보호받기는커녕 온갖 법을 들이대며 처벌받기도 바쁜 사람들이다. ‘준법질서’를 하늘 같이 모시는 경찰들, 오늘은 웬일인지 법도 들이대지 못한다. 이 와중에 여성 한명이 경찰에 둘러쌓여 20분째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고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수원에서 참가한 시민이다. 부리나케 갔더니 그야말로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그 분은 겁에 질려 항의도 제대로 못한 채 그렇게 20분을 서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언성이 높아지자 옆에 있던 사복경찰 대답이 또 걸작이다. “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마을에 765kV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도 ‘아이고 나랏일 하시는데 수고 많으십니데이’ 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하는 말마다 거짓말 투성이었던 한전과 정부의 태도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또 어디있나. 이미 ‘공사강행’의 마지막 명분이었던 신고리 3,4호기의 가동이 불량부품과 비리 문제로 수년이나 연기되었음에도 곧 쓰러질 듯한 할머니들마저 내동댕이치며 공사를 강행하는 저들의 태도가 과연 ‘여기서 이래도 되는’ 태도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전과 경찰, 정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기어코 오른 110번 철탑공사 현장

결국, 우리는 110호 송전탑이 세워지는 현장에 올랐다. 그 처참한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다는 주민들과 함께 올랐다. 한쪽에서는 ‘우리집에 왜왔니’ 하면서 공사현장을 둘러싼 경찰과 한전직원들을 향해 한판 놀이(?)를 하고, 한쪽에서는 하염없이 파헤쳐진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친다. 함께 올랐던 주민은 ‘소원을 풀었다’며 연신 고맙다며 우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송전탑이냔 말이냐.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내려와야 했다. 기어코 명분없는 송전탑 건설을 막겠다는 다짐을 나누며 문화제가 예정되어 있는 밀양역 광장으로 향했다. 들썩들썩 신명나는 문화제의 압권은 주민들의 대합창. 유명한 트로트 가요를 개사한 노래와 노래실력으로 따지면 전국노래자랑을 나가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가창력이 문화제에 참석한 2천여명의 시민들을 휘어잡았다. 그래, 이게 희망버스다. 일부 언론과 경찰이 ‘폭력버스’ ‘절망버스’라 부르지만 우리가 왜 밀양에 와서 ‘희망’을 노래해야 하는지 밀양의 어르신들이 알려주셨다. 수년동안 정부와 한전에 당해왔던 모멸감, 폭력과 낙인 때문에 세월에 깊게 패인 주름보다 더 깊게 패어버린 마음의 주름이 오늘 하루라도 펴진 듯 모두가 즐겁다.

 

 

 

환대


문화제를 마치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숙소로 들어왔다. 함께 숙소로 들어온 마을주민분들이 부리나케 주방으로 가시더니 어제부터 희망버스 온다고 삶아놓은 고기라며 소머리국과 고기를 차리시는 게 아닌가. 웬걸, 만류를 해도 소용없다. 변변치 않다며 내놓은 국과 고기는 우리가 먹고도 남는 충분한 양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농성장을 나가고 산을 오르는 경찰과 한전직원들을 막아서보지만 그때마다 끌려나오고 쓰러지고 모욕당하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 분들. 희망버스 온다고 전 날부터 고기를 삶고 마을회관을 청소했던 그 마음을, 우리는 어느새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다음날 6시. 숙소 현관문을 열고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손에는 김치 한 사발을 들고 계신다. 김치가 없을 것 같다며 국에 밥말아 먹을 땐 김치가 빠지면 안 된다고 손수 김치를 써신다. 한 분 두 분 농성장 갈 시간에 맞춰 마을 주민들이 모였다. 몇 시간 주무시지도 못하고 나오는 길이다. 그 시간, 요란한 군화발 소리가 산을 울린다. 근무교대시간이란다. 조용한 새벽 수백 명의 군화발 소리는 주민들 새벽잠을 깨우는 소리란다.




 

약속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결한 보라마을에서 이번 희망버스의 마지막 행사가 진행됐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어르신들이지만 생소한 노랫가락에도 어깨를 들썩이고, 긴 구호도 번쩍번쩍 팔뚝질 하며 잘도 외치신다. 신명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일까. 힘겨운 싸움이 이 분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비록 1박 2일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희망을 드리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희망을 싣고 가는 느낌이다.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는 여든살 할머니의 목소리는 나를 돌아보라는 성찰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헤어질 시간, 꾹 참았던 눈물을 쏟는다. 깊게 패인 주름사이로 눈물이 타고 흐른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했던가. 아쉬움에 고마움에 앞으로 닥칠 고통의 시간들에 마냥 웃을 수 없는 밀양의 어르신들. 살가움과 유머로 또 신명으로 버텨내실 어르신들. 그 분들 만나러 두 번째 희망버스는 이미 우리 마음속에 준비되고 있다.

 

※ 이 글은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