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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칼럼

[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 다문화 가정 학생 민수와 바다


"너 같은 사람 때문에 살인..." 너무합니다

[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 다문화 가정 학생 민수와 바다

오는 10월 5일이면 경기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최초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지 2년이 된다. 이후 서울, 광주 등 다른 지역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 존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학교 문화를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의 안과 밖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위태롭다. 이런 상황을 점검해보기 위해 경기학생인권조례 공포 2년을 맞아 다문화,성소수자, 장애, 탈학교 등의 학생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 현실을 짚어보는 기사를 4차례에 걸쳐 준비했다.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학생,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인권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학교 안에 소수자 이야기를 기획하면서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다문화' 부분은 정부도 그렇고 경기도교육청도 그렇고 수많은 지원을 하고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를 기획하고 여기저기 다문화 가정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냥, 싫다" 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날 때 쯤 그들이 왜 그런지 이유를 알게 되었고 이 글을 끝까지 읽게 된다면 독자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저기 도움을 구한 덕에 부천지역에서 다문화 관련해서 활동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두 친구를 소개받았다. 한 친구는 부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민수(가명), 다른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인 바다(가명)라는 여학생이었다. 이들을 지난 8일 부천에서 만났다. 

"꼭 치과에 온 느낌... 거기 가면 왠지 긴장되잖아요" 

"꼭 치과에 온 느낌이다". 

민수 학생이 건넨 첫 말이었다. "왜요?"  투박하게 다시 되물었다. 

"아니 꼭 치과에 가면 왠지 긴장되잖아요? 지금 이 순간이 꼭 그런 느낌 같아요." 

▲ 고등학생 민수는 엄마는 필리핀인이고 아빠는 한국인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현재 혼자 살고 있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도 긴장되지만 그들도 이런 자리가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색한 순간에서 말랑말랑 긴장이 풀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터뷰 질문에 묶이지 않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었다. 

민수: "중학교 때까지는 인천에서 살다가 고등학교를 부천으로 오게 되었어요. 엄마는 필리핀분이고 지금 미국에서 외할머니와 사시면서 일하고 계셔요."

첫 소개부터 그의 인생은 궁금증투성이였다. 그런 나의 눈빛에 눈치를 챘는지 바로 민수학생은 계속이어서 말을 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엄청 궁금해 하고 가정사를 말 안 할 수 없더라고요. 엄마 아빠는 일본에서 공부하시면서 만나셨고 그 후 한국에서 결혼하셔서 사시다가 제가 어렸을 때 이혼을 하셨어요. 아빠는 한국에 계시고 엄마는 미국에서 일하시면서 학비를 보내주시고 지금은 혼자서 자취를 하고 있어요."

혼자 산다고?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 아빠는 옆에 없고 엄마는 멀리 타국에 있고 가족이라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18살 삶이 상상이 안 됐다. 그런데 첫인상도 그렇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를 정도로 밝고 차분했다. 

바다 학생도 어머니가 필리핀분이시고 한국 아빠와 결혼해 살고 있다. 엄마는 동네에서 필리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다문화란 말도 싫어요" 

바다 학생은 민수 학생과는 달리 퉁명스럽고 눈도 잘 못 마주치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돌아온 말이 "이제는 다문화란 말도 싫어요"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더 공부하는 것도 싫고 모든 게 다 짜증나요. 그나마 운동을 좋아해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데 유일하게 제가 배우고 싶은 거 하면서 지내는 거예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래도 많은 친구들하고 놀았는데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저와 비슷한 상황인 다문화 가정 친구들하고만 지내는 게 편해요. 어느 순간 '다문화'하면 나를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불편하고 싫어요. 이제는 다문화라는 말도 너무 싫고 그냥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어요."

바다 학생의 다문화란 말이 싫다는 것의 의미를 나중에 목사님을 통해서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바다 학생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얼마 전에 부천지역에서 다문화 특성화 학교로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다문화반'을 별도로 만들었다. 물론 바다는 그 반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학부모들과 목사님이 몇 번이나 이런 건 그들을 위하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문화반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학생들까지 반강제적으로 학급으로 묶어놓고 학력향상을 시켜준다며 별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바다는 "다문화라는 말이 너무 싫다"고 불편함을 표현했다.



다문화란 말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고 다문화 교육이 목적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참 나쁜 사례다. 다문화교육은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사회적인 고민이 되어야 한다. 인권의식, 평등의식, 공감의식이 없는 다문화 교육은 공허하다.

"다문화라는 말속에 어떤 점이 가장 불편해요?"냐고 묻자 민수 학생은 "죄수들을 비추는 어둠 속 스포트라이트"라고 비유했다.

민수: "요즘 들어 다문화 교육으로 지원받는 부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매우 고맙게 생각해요. 그런데 방법적인 부분에서 좀 아쉬운 점이 있어요. 물리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동원된다는 느낌도 받아요. 지금의 다문화는 튀는 사람, 불쌍한 사람, 도움만 필요한 사람으로만 비춰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지원해주는 쪽이 더 주가 되어서 우리가 꼭 꼭두각시 같다고 해야 하나? 감옥에서 죄수들이 탈출할 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성도 중요해요. 그리고 다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차이가 있어요. 지금의 다문화라는 말에는 다양한 문화가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맞춰져있어요. 미국이나 잘 사는 나라에서 살다온 아이에게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도 잘 하지 않잖아요."

'너네는 독도가 누구네 땅이라고 생각하냐?'

'너가 왜 국민의례를 해?' '너네 엄마 이름은 왜 이렇게 길어?' '국제결혼 광고 스티커 가져가면 너네 엄마 만날 수 있는 거야?' '너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수원 살인 사건 같은 게 발생하는 거야.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 너네는 독도가 누구네 땅이라고 생각하냐?' '엄마가 외국 사람이니까 그렇지'

다문화 가정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들었던 말 중 가장 마음 아팠던 말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두 학생에게서 나온 내용이다. 다문화 시대라 부를 만큼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 땅에 많이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저런 말을 듣고 아주 오랫동안 그말이 잊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의 다문화 교육과 정책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닐까? 
 

▲ 민수와 바다는 "주변 사람들이 그냥 편하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다문화 가정 학생들의 학업 중도 탈락이 높다는 기사를 봤다. 이주결혼가정도 그렇고 중고등학교 때 중도에 한국에 들어와 한국학교에 들어가는 이주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왜 다시 학교를 떠나는지 우리의 고민이 부족하다. 다문화를 말하지만 오히려 다문화를 말하지 못하게 하고 다문화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민수와 바다 두 학생은 '학교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각각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민수: "자기소개 할 때 당당하게 엄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학교? 색안경을 안 쓰고 봤으면 좋겠어요. 그냥 이웃 보듯 편안하게 나를 봐 주었으면 해요."

바다: "학교폭력 없고 서로 놀리지 않는 조용한 학교, 자유로운 학교가 되었으면 해요."

글을 잘 쓰는 파일럿이 되어 어디든 가고 싶을 때 비행기를 타고 떠나고 싶다는 민수 학생, 그리고 친구들이 추천하는 방송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다는 바다 학생. 이들의 삶과 꿈이 특별한 것일까? 이들이 위험하고 불쌍한 대상인가? 

그들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바로 여기, 우리들의 몫이다.

※ 글 : 김경미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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