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들은 세계인권선언이 선언된 12월 10을 맞아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12월 10일 2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에 만연했던 인권침해에 대한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고 모든 인간의 기본권을 존중해야한다는 유엔 헌장의 취지를 구체화하기 위해 선언되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9분 비상계엄선포가 있은 후부터 155분간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시민들은 기본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윤석열은 그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한국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파탄에 몰아넣었습니다.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지는 못할망정 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조차 저버린 윤석열은 즉각 퇴진해야 할 것입니다.
[기자회견문]
제76회 세계인권선언의 날 기념 인권운동 공동 기자회견
자유·평등·연대를 향한 시민들의 투쟁이 이 시대의 ‘질서’다
-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한국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파탄에 몰아넣은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안 가결과 대통령 탄색소추안 표결 무산 사태를 지나 12월 10일을 맞이했다. 모든 인간의 존엄을 선언한 세계인권선언의 날, 우리는 모든 인간의 존엄이 부정될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한 채 이 자리에 섰다.
비상계엄은 모든 시민들을 ‘헌법의 예외적 존재’로 내몬 반인권·반민주적 행위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반헌법적이라는 사실은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최상위 법규범인 헌법에 호소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집단적인 공포와 불안과 분노를 느끼며 국가권력의 부정의와 폭력을 시리게 체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계엄은 언제나 민간인 학살을 용인하는 국가 권력의 무도한 실행을 의미했다. ‘불순분자’ 혹은 ‘반국가 세력’을 빌미로 전 민중에게 절대복종을 강요하고, 자유와 권리의 자리를 침묵과 공포로 대체하고, 다수의 생명권 박탈을 정당화해 온 것이 우리 사회가 겪어온 계엄이다. 시민을 헌법의 예외적 존재, 권리를 박탈당한 존재로 만드는 계엄이 그저 권력자의 ‘정적 제거’와 ‘정권 유지’를 목적으로 단행되었다는 것 또한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44년만에 단행된 윤석열의 비상계엄 역시 한치도 이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시민들에게는 오로지 ‘국가의 적’이라는 모욕의 자리만을 남겼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시민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 오랜 시간 외치고 견뎌내고 싸워낸 누군가의 저항 위에 서 있음을 안다. 우리가 발딛고 선 일상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다시금 뜨겁게 깨달은 지금, 인권과 민주주의는 냉소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한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 이 압도적인 시간의 축적을 내란의 우두머리인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동조 세력이 되돌릴 방도는 없다.
민주주의 역설로 탄생한 정치 권력 하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는 그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선출된 권력이라는 사실 자체가 한 사회의 민주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는 자유, 정의, 평화를 위해 싸우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합법적 정치 권력 하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가치해질 수 있는지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경험했다. 현 사태는 윤석열이 극악의 성차별주의자, 노조파괴자, 혐오선동꾼이기만 해서는 아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역행하는 정치, 가장 취약한 이들의 존엄을 짓밟고 권리를 박탈하는 정치를 내세우고서도 얼마든지 합법적이고 정당한 선출 권력이 될 수 있는 한국사회의 조건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탄생했다.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를 끝내기는 커녕 페미니즘을 ‘성별 갈등’으로 치환하는 정치,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을 ‘불법 시위’로, 노동자의 정당한 집단행동을 ‘건폭’으로 내몰고 탄압하는 정치, 이주민에 대한 불법적 단속을 공적으로 치하하는 정치, 보수개신교 야합하여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정치, 소수자들의 권리 요구를 다수에 대한 자유 침해로 묵살하는 정치가 맞닥뜨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정치가 정권의 창출과 유지를 위해 허용되고 동원되어 온 정도의 크기 만큼,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를 얼마든지 제약·박탈할 수 있다는 선택지 또한 가능해졌다. 지금 시민들이 외치는 ‘윤석열 탄핵’은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채 혐오와 적대를 활용해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성장한 권력에 대한 분노가 있으며, 이러한 정치를 변혁하지 않는 한 인권과 민주주의의 세상은 요원하다.
자유, 평등, 연대를 향한 시민들의 투쟁이 이 시대의 ‘질서’다.
퇴진 요구를 외면한 채 권력을 일임하겠다는 윤석열의 이야기는 터무니없으며, 유일한 길은 즉각 퇴진이다. “탄핵보다 질서 있는 퇴진”을 계속 자임하는 한 국민의힘에게 남은 것 또한 윤석열과 마찬가지의 운명이다. 시민적 권리를 멸시할 수 있는 이들 세력이 바로 평등의 반역자이며, 자유의 압제자이며, 연대와 타협의 거부자다. 민주주의를 국가의 확고한 원칙이자 경주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위협’으로 느끼는 세력에게 내어줄 인내심이란 남아 있지 않다.
12.3 사태 이후 우리는 서로의 존재와 권리를 보증하겠다는 ‘약속’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행동만이 시대적 파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목도하고 있다. 정치 권력이 특권을 포기하는 일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저절로 일어난 바 없으며, 우리가 절실히 바라는 자유와 권리 그 무엇도 사회적 압력 없이 쟁취할 수 없음을 상기한다. 이미 시민들의 저항은 부당한 국가 권력에 대한 불복종과 인간다운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도전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체제는 언제나 시민불복종으로 새역사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지금 이 시대의 ‘질서’를 제시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정치 권력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사회를 향하는 우리의 투쟁이다. “우리의 오늘이 내일의 미래를 여는 약속”임을 알기에, 인권운동 역시 인간다운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한 투쟁에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2024년 12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