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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웹 소식지 몸살 22호_2024년 여름]콕!! 집어 인권

성범죄자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아샤(상임활동가)

미국 워싱턴주 한 도시에 '성범죄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인이 붙어있다. (출처: The Chronicle)

 

한 달 전쯤 퇴근 후 집에 있는데 옆집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서 걱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아가씨, 그거 알아? 내가 들었는데, 우리 골목 앞에 여인숙 있잖아, 얼마 전에 거기에 성범죄자가 이사를 왔대. 노인을 성추행해서 감옥에 갔다 왔다나? 다른 동네에서 살았는데 거기 사람들이 난리난리를 쳐서 이 동네로 이사 왔다고 하더라구.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고 하던데...” 폭탄 같은 뉴스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버벅대는 내게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이셨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들은 거야. 아가씨가 밤에 늦게 다니기도 하니깐 걱정돼서 그렇지. 앞으로 조심해, 알았지?”

 

뉴스에서 보던 일이, 인권활동가로서 한 발짝 떨어져 입장문이나 내던 일이 내게 실제로 일어나다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며칠 후 인터넷을 하다가 옆집 할머니가 전해 준 소식이 생각나 성범죄자를 공개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생각보다 검색은 쉬웠다. 내가 사는 동네로 검색해 봤더니 정말로 우리 집 대문에서 열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의 주소에 성범죄자가 산다는 결과가 떴다. 클릭을 몇 번 더 하니 그 사람의 얼굴과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까지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화면 속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무 무섭다거나 겁이 난다거나 그런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이 동네에서 사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이 왜 무섭지 않았을까?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본 후 나는 그 답을 내 일상에서 찾았다. 그런 일이 있다고 나를 걱정하며 직접 전화를 해 준 이웃이 있는, 옆집과 윗집에 누가 사는지 서로 알고 있는, 출근이나 퇴근하는 길에 보면 길목 앞에서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한참 수다를 떠는, 큰 교류까지는 아니어도 골목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이웃이 있는 동네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 옆집에 사는지 관심도 없고, 골목에 적막만 흐르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풍경과 소리가 일상을 감싸는 동네에서 가지게 되는 안정감이 어쩌면 일어날지도 어쩌면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범죄에 대한 불안보다 더 컸다.

 

너무 순진하고 안이한 생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계속 불안해하며 일상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온 처지에서(물론 그 죗값이 충분했는지, 처벌이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충분했는지는 다른 토론이 필요한 문제지만) 기본적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수건 돌리기도 아니고, 땅덩이도 작은 이 나라에서 이 사람을 어디까지 떨어뜨려 놓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역시 내가 사는 동네가 진짜 사람 사는 동네가 될 수 있도록, 그 사람이 이런 동네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가는 금방 잡히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동네 사람으로서 내 몫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부디 이 동네에서 사는 경험이 그 사람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