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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웹 소식지 몸살 22호_2024년 여름]다산이 만난 사람

이번 '다산이 만난 사람'의 주인공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출신이자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동환 벗바리입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짬을 내준 동환님을 아샤 활동가가 만났습니다.

Q.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다산의 벗바리이자 활동 회원인 나동환이라고 합니다. 현재 향진이라는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업을 한 지는 2년 조금 넘었구요.

 Q. 저는 동환님을 알고 지낸지 오래되었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다산과의 인연을 설명해주시겠어요? 다산에서 자원활동을 하셨죠?

. 다산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자원활동을 통해서였어요. 20141월 정도로 기억을 하는데요, 그 즈음에 인권운동에 관심이 생겨서 인터넷으로 기사 검색 같은 걸 하다가 다산인권센터를 알게 되었어요. 아마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를 다루는 반올림 활동 관련 기사였었던 것 같아요. 기사를 통해 다산의 활동에 관심이 생겨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자원활동가를 상시 모집한다고 하더라구요. 다산에 대해서 잘은 몰랐지만 사회운동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뜻깊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사무실에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다른 특별한 절차 없이 그냥 사무실로 오라고 하더라구요. 약속을 잡고 사무실에 갔는데 랄라 활동가와 안병주 활동가가 계셨어요. 자원활동에 대한 특별한 설명 없이 제 소개를 듣고서는 언제 올 수 있어요?’ 물으시더라구요. (웃음) 마침 방학이어서 일주일에 3일 정도 사무실에 나갔죠. 저에게 주어진 업무가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활동가들과 다양한 현장에 다녔어요. 가끔 사무실에서 간단한 업무를 하기도 했구요.

Q. 어떻게 인권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제가 사회과학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거든요. 수업 시간에 노동운동이나 빈부격차 같은 문제들에 관해 공부하고 조사 하면서 개인적인 관심이 생겼어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고민도 들었구요. 대학에서는 운동이나 활동의 사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는데 기사 검색 등을 통해 이런 문제의 해결을 고민하는 사회운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 운동을 열심히 하는 시민단체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그런 활동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끌리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한번 같이 활동해보고 싶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자원활동을 결심하게 된 거죠.

Q. 다산에서 2~3년 정도 자원활동 했잖아요. 짧은 시간은 아닌데, 자원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어떤 것이 있나요?

2014년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해잖아요. 다산이 관련 활동을 열심히 했었기 때문에 저도 주로 다산 활동가들과 세월호 관련 활동을 했어요. 수원역에 설치한 분향소 지킴이 활동도 했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운동도 함께 했어요. 특별법 제정이 왜 필요한지,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 피해자 회복이 왜 필요한지 이런 것들을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서명도 받았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사회적 재난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새겨보고 인간의 기본권인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의 역할을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후 10년이 지났는데, 얼마 전 화성에서 있었던 아리셀 참사를 보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매우 부족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껴요.

또 기억에 남는 건 밀양 송전탑 저지 투쟁 때문에 밀양에 내려갔던 거예요. 송전탑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현장에서 쇠사슬로 몸을 묶으시더라고요. 그분들의 몸부림을 보니 이게 단순히 본인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생존과 주거라는 기본권을 위한 투쟁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지방 주민들의 생존과 주거권을 침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 폭력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Q. 다산에서의 경험이 동환님 내면에 많은 고민과 질문들을 던지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네요. 이후에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가 되었는데, 왜 변호사가 되신 건가요?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했었어요. 이런 말 좀 그렇기는 하지만, 공부를 좀 하니까 그냥 변호사가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주변에서 그렇게 권하는 사람도 많았구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변호사가 되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변호사들이 멋있게 보였는데 크면서 보니 이윤만 추구하는 변호사도 많고, 그런 모습들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랑 안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죠.


그러다가 인권변호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공감이나 희망법에서 활동하시는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변호사도 이 사회를 위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거죠. 변호사가 되고 처음으로 일할 곳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으로 선택했던 것도 저의 이런 생각 때문이었어요. 지도 변호사님이 장추련을 추천해주셨고, 공익변호사 자립지원사업을 통해 2년간 거기서 일했습니다.

 

Q. 장추련에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딱 떠오르는 건 모두의 1이라는 활동이에요. 카페나 편의점은 공중이용시설이라 누구나 이용 가능해야 하는데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이 어려우신 분들은 문턱이 있으면 갈 수가 없는 문제가 있잖아요. 이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였기 때문에 여러 단체와 변호사님들이 이미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였고 제가 그 팀에 결합을 한 거죠. 재판을 통해서 300제곱미터 이상 규모의 편의점이나 카페에만 접근로를 설치하면 된다는 시행령은 평등권에 반하므로 위헌적이라는 판결을 받았어요.

판결 자체도 중요했지만 더 의미 있었던 건 재판과 더불어 다양한 운동이 함께 진행됐다는 점이에요. 입법 운동도 하고, 활동가들이 카페나 편의점에 가서 뿅망치를 들고 이 문턱 부숴라퍼포먼스도 하고 그랬거든요. 이런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잘 이뤄져서 뜻깊고 의미 있는 결과를 냈던 것 같아요.


Q. 2022년까지 장추련에서 활동을 하시다가 개업을 하셨잖아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개업하고 처음에 했던 일이 국선변호사로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이었어요. 현재 법률로 성범죄나 아동·장애인학대, 인신매매 등의 범죄피해자들은 국선변호사들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거든요. 경찰 조사 과정에서부터 검찰 단계, 재판 과정까지 전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 등 그 분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드리는 거죠.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 분들의 아픔에 공감하려 노력하고, 이 분들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나갈 것이냐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활동으로는 마을 변호사 활동이 있어요. 사무실 위치가 구로 5동인데, 한 달에 한 번 구로 1,3,5동 이렇게 세 군데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주민들에게 법률 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법률 상담을 하러 오시는 분도 있고, 비용을 들이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공익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소송이 필요한 분들은 저렴하게 지원해드리기도 하고, 혼자 고소를 하셨는데 추가적 서면 검토가 필요하면 도와드리기도 하죠. 다양한 분들을 만나 법률적 도움을 드리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Q. 변호사라는 직업이 법정에서 누군가를 대리하는 일을 하는데, 그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크게 바뀔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이 일을 부담스럽거나 두렵지 않나요?

저의 잘못으로 인해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 불안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래서 전 의뢰인과 라포를 형성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뢰인의 문제가 제 문제는 아니지만 최대한 의뢰인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죠. 물론 제가 법률 전문가니까 제가 리드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문제의 당사자는 의뢰인이기 때문에 그 분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제가 법리적인 부분을 보충해서 해결책을 함께 만들려고 최대한 노력해요. 그렇게 하면 결과에 대한 부담이 좀 덜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게 인권 활동을 하면서 배운 부분인 것 같기도 해요. 결국 인권 활동의 시작도 한 사람이 겪은 인권 침해 문제를 경청하고, 그 사람에게 공감하는 것에서 시작하잖아요. 그냥 남의 문제로 보고 넘기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밀착해서 들여다보고 문제 해결에 그 사람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권운동의 기조였고 그런 활동들을 해왔기 때문에 제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Q. 요즘 동환님을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거의 매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어서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요. ... 아무래도 함께 했던 의뢰인분들이 좋은 결과를 얻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좋죠. 사건을 계속 처리하다 보면 고민 많고 스트레스 많은 분들을 상대하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면 저도 같이 다운되는 경우가 있는데 결과가 잘 나오면 저 자신도 리프레시가 되더라구요.

Q.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일 말고 다른 즐거운 일은 없어요?

글쎄요. 따로 하는 게 별로 없어서... 취미라면 해외 축구 경기 보는 것밖에 없어요. 맨체스터 시티를 제일 좋아하고 응원합니다. 지난 시즌 역사상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4연속 우승을 달성했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다산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벗바리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좀 더 많이 기획해주면 좋겠어요그런 활동을 통해 다른 벗바리들과도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  습니다.


인권단체에서 했던 활동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원칙을 만들고 지키면서 변호사로서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는 동환님과의 만남은 진지하면서도 열정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좋은(그리고 돈도 잘 버는) 변호사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