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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웹 소식지 몸살 19호_2023 가을] 다산이 만난 사람들

벗바리 여러분은 영화 좋아하시나요? 코믹, 멜로, 액션 등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다큐멘터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분들은 손꼽는 것 같아요. 그만큼 우리에게 다큐멘터리는 가까운 듯 멀리 있는 장르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을 넘어 촬영을 하는 벗바리가 있습니다. 몸살 가을 호에는 다큐멘터리 감독 정일건님을 만났습니다.

 Q. 다산과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나요?

 다산 활동을 항상 찾아보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예전에 다큐멘터리 작업 할 때 현장에서 다산활동가들을 자주 만나기도 했고, 활동가 몇 분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공동육아'라든가 아이들 키우는 공동체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만난 분 중에 한명이 다산 활동가 '랄라'였고, 랄라의 권유로 가입하게 되었어요.

 

 Q. 다산을 만났었던 '현장'은 어디였을까요?

 제가 20대에는 평택에 대추리에서 다큐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박진 활동가나 다른 분을 많이 만났죠. 그리고 제가 안산에 살면서 세월호 관련해서 다큐 작업할 때도 현장에 가면 자주 만났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수원에 살고 있지 않고 서울에 살다보니 물리적으로 가깝지는 않았는데, 아이 키우고 하면서 수원에 오다보니 교류도 생기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네요.

 

 Q. 다큐멘터리 감독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대 후반에 군대 갔다 와서 무슨 일을 할지가 고민이었어요. 원래 전공이 영화나 다큐 관련된 쪽도 아니고 전공 관련해서 공부도 전혀 안 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자"라고 생각해보니,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옛날에 비디오 가게 가면 2~3시간씩 가게에서 구경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26~7살 즈음에 한겨레 영화연출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죠.

근데 사실 다큐멘터리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다가,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하고 영화제를 보러 갔었나?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과정에서 '푸른영상'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푸른영상’에서 활동하는 감독님들이 만든 다큐를 좀 보게 됐죠. 어떻게 보면 처음 영화 공부를 할 때에는 이렇게 다큐멘터리 같은 현실에 참여하는 활동들보다는 멋있는 영화감독이 돼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영화 공부를 하면서 봤던 다큐멘터리들이 너무 좋았어요. 철거민 관련한 다큐멘터리였는데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제가 한겨레 문화센터 건너편에 있는 서강대 앞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상계동'이나 ‘푸른영상’에서 가장 오래되신 김동원 감독님 영상 보면서 자취방에서 혼자 울고 막 그랬어요. 그래서 어쩌다보니 인연이 돼서 ‘푸른영상’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수습작품도 만들고 이러면서 활동을 하게 됐죠.

 

Q.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영화공부를 하던 당시에 처음 만났던 김동원 감독님 다큐멘터리들은 주민이 내레이션을 하고 카메라도 막 흔들리고, 제가 방송에서 보던 그런 다큐멘터리가 아니었어요. 영화 안에서 김동원 감독님은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냥 '거기 살면서 찍었다'라는 정도로만 느껴지는 거죠.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 영상이 철거민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죠. 근데 이렇게 감독이 드러나지 않아도 같이 살면서 찍어야 된다는 그런 정신이 제게 너무 좋았어요. 당시에는 이제 같이 살면서 그냥 찍는다는 게 저한테는 좀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관계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 기록하는 일 보다 저한테 좀 맞는 방식이 무엇일까를 찾아보고 있거든요. 계속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 다큐멘터리가 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이 제 20대에 비하면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그때는 방송국 카메라가 갈 수 없는 곳에 우리가 가야한다는 사명감도 있었고, 카메라도 부족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카메라가 있는 시대잖아요. 이제는 '카메라가 없는 곳에 간다' 라기 보다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나 문제에 관해서, 혹은 사람이나 장소에 관해서 어떻게 접근을 하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Q.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겪는 고충은 어떤 게 있을까요?

 많죠. 생각해보면 지금 생각나는 것들이 다 고충인데, 그걸 '내가 하는 일'이고, '나의 자유'로 받아들이면 다 즐거운 일이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촬영을 하는 장소, 촬영 방식, 질문 등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다 고충이고 문제이고 넘어야 될 산 투성인데,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든 사람의 역할로서 어느 순간 몰입하고 무아지경이 되는 때가 있어요. 일을 하다보면 자기를 망각할 정도로 이렇게 집중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런 순간들이 있어서 앞서 있는 고충들을 풀어낼 수 있는 거죠.

 

Q. 작품들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실까요?

 제가 지금 아이를 키우고 돈을 버느라 작업을 한지 꽤 됐어요. 벌써 5~6년 된 것 같네요. 기억에 남는 작품을 고르자면...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다른 이유는 없고 그나마 작업을 최근에 해서 그런지 기억에 남네요.

 

 Q.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면 다루고 싶은 사회 이슈가 있을까요?

 그러면 안 되는데 요즘 뉴스를 보면 스트레스가 심해가지고 자꾸 뉴스를 보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지금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부분들도 기록을 해야 하는데, 그런 쪽보다는 제 주변의 문제나 상황에 더 관심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희 동네가 서수원 끝이라서 논이 되게 많거든요. 거기에 시골 마을이 조금 남아 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농촌 마을이 거의 없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 마을 분들도 조금 만나서 찍어보고 싶고, 논도 예쁘게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요즘 한국에 어디를 다녀도 동네가 다 비슷하고 개발로 인해서 장소성의 고유성이 없잖아요. 장소의 고유성을 한 번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Q. 벗바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많죠. 너무 많아서 문제네요.
현실 문제를 고발하고 바꾸려고 목적으로 하는 액티비즘(Activism)에 가까운 다큐멘터리들도 있죠. 그런데 활동가분들은 목적이 선명한 다큐를 조금 더 선호하는 편도 있으신 것 같아요. 꼭 그렇지 않아도 자기만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좋은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있어요. ‘푸른영상’에서 만든 '개의 역사'처럼 강아지를 통해 지역의 얘기를 하고 강아지가 죽으면 또 다른 지역에 비슷한 강아지를 만나게 되는 이런 구성을 가진 다큐멘터리가 있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사회 문제를 이슈 파이팅하는 그런 다큐멘터리는 아니고 에세이나 수필 같은 다큐멘터리인데 굉장히 울림이 큰 다큐에요. 그리고 최근에 본 외국 다큐멘터리 중에 '리바이어던(Leviathan)' 이라는 다큐멘터리도 있어요. 유튜브에 검색하면 낚시 채널 같은 곳에 들어가 있는 희귀한 다큐멘터리더라고요. 내용도 고프로를 달고 물고기를 잡는 모습, 물고기 해체하고 남겨진 사체는 바다에 버려지는 모습, 파도와 갈매기를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보여줘요. 이런 독특한 다큐멘터리들도 있고 이야기 하는 방식도 다양하니 목적이 선명한 다큐들도 좋지만 다른 다큐멘터리들도 봐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Q. 다산의 활동 중에 영상으로 기록되거나 제작 됐으면 하는 게 있을까요?

 인권단체들마다 특징들이 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산은 인권운동을 대중화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론 활동이라든가 사람들에게 알려나가는 활동 보다는 활동가분들이 누군가를 상담하거나 만남을 이어나갈 때 기록해 놓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또 기록한 영상을 통해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정하는데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봐요.

 

Q. 마지막으로 다산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실까요?

 지금처럼 꾸준하게 우리 사회에 이렇게 올바른 일을 해주고 하려고 노력하신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 심리적으로 주는 무언가가 있어요. 특별히 뭘 어떻게 해야 된다 라기 보다 지금처럼 열심히, 믿음직스럽게 활동을 이어나가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 보다 다큐멘터리를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정일건님을 보며,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던 인터뷰였다. 후에 다산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자리가 있다면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이 믿음직스러운 단체라 말해주신 정일건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더 좋은 활동으로 보답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