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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웹 소식지 몸살 16호_2022 겨울] 다산이 만난 사람들

‘여전히 두렵지만 세상속으로 걸어나가요’

몸살 겨울호에 다산이 만난 사람은  ‘다산 30주년 후원의 밤’에서 회원가입을 한 최경자님입니다. 최경자벗바리는 수원에서 4.16연대, 수원여성회 등 세월호 관련 모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평범한 아침 그러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작이 된 그날

그 날도 여느 날과 같은 아침이었어요. 다림질을 하며 아침뉴스를 습관처럼 켜 놓고 있었죠. 뉴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어요. 처음에는 뉴스에서 전원구조라는 얘기가 나와서 안도를 했지만, 곧이어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조가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보았어요. 소식을 보는 순간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당시 우리 아이들도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우리 아들, 딸이 뉴스에서와 같은 상황이 될 수 있었다는 거잖아요. 자식을 둔 엄마로써... ‘부모의 마음’으로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혼자' 버스에 몸을 싣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노란리본을 사서 성당이나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했었죠. 그러다 세월호와 관련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됐어요. 어느 날은 하루종일 관련된 영상이나 내용을 찾아보곤 했었죠. 그러다 수원 4.16연대와 정종훈목사님을 통해 수원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때 세월호 4주기 노란버스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혼자 노란버스 행사를 신청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어요. 평소의 저였다면 아는 사람 하나없이 혼자서 행사에 참여하는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죠. 10시간 넘게 자원활동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수원여성회를 알게 되고 인연이 시작되었죠. 

노란리본공작소의 모임장이 되다

수원여성회에서 노란리본공작소(이하 노리공)라고 노란리본을 만드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저도 그 모임에 가기 시작했어요. 살면서 시민단체나 그런 모임을 나간 적이 없었는데, 노란 리본을 만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곳을 찾아가고, 사람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든다는 게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어요. 뭐라도 하고 싶었거든요. 어느 날은 자녀들과 함께 온 회원들과 여러 사람이 만들때도 있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혼자 만들 때도 있었지만 아무 상관없었어요. 전 '노리공'활동을 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거리두기가 잘 안되고 사람에게 집착을 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러한 성격 때문에 제가 딸과 남편하고 사이가 좋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노리공을 하는 동안의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리본을 만드는 시간은 저를 위로해 주었어요. 그리고 여성회에서 페미니즘과 다양한 사회이슈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더 이상 사람에게 연연하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과 거리두기가 되었어요. 활동 덕 인지 몰라도 딸과 남편하고의 사이가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종교는 제 삶의 가장 큰 기준이자 힘

환경문제나 세월호 등 세상문제에 관심 갖고 실천하고자 하는 가장 큰 원천은 종교인 것 같아요. 제가 성당에서 교리 교사를 10년 넘게 했어요. 카톨릭은 사회교리(그리스도인으로써 삶과 실천을 고민하게 하는 교육과정)라는 게 있는데 저는 사회교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실천하려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요즘은 성당에 다닌다고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어요. 계속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기준과 원칙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 꾸준히 공부하고 있어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다산’

내년에 남편이 퇴직을 하다 보니 후원하는 곳을 끊지는 않아도 늘리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노리공 활동을 하면서 만났었던 다산인권센터에서 후원 요청을 할 때마다 미안하지만 후원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산의 30주년 행사에 갔는데, 거기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인 황상기씨 이야기를 듣고 나서 후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이슈가 되지 않은 사람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한 게 다산이었다는 이야기였어요. 가까이 있었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던 다산이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었구나 알게 된 순간 후원을 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앞으로도 다산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과 이슈를 계속 발굴해 주면 좋겠어요.

여전히 벌렁벌렁한 가슴을 안고

세월호나 여성회 같은 활동을 지역에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는 굉장히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지금도 집회나 피켓팅에 나갈 때면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누군가 와서 뭐라 할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든요. 12월에는 날이 추워서 세월호 피켓팅을 지하도에서 했는데 어떤 아저씨가 옆에 서더니 "이거 원래 이런데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그냥 방해되지 않게 하세요" 이러고 가는 거예요. 저 사람이 누구지? 지하도 관리하는 사람인가? 싶다가도 누군가 내 뒤통수를 내리치는 건 아닐까? 해코지는 당하지 않을까? 뭐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도 해요. 그렇지만 저는 계속 할 거예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면 계속 해나갈 생각입니다.

새롭게 다산의 벗바리가 된, 그렇지만 다산과는 오래된 벗인 최경자님의 발걸음에 다산 역시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