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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웹 소식지 몸살

[웹 소식지 몸살 15호_2022년 가을] 콕 집어 인권 "막내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막내여서 이런 걸 해야해?"

막내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막내여서 이런 걸 해야해? 

라이언 (상임활동가)

 

주말 오후,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면서 런닝맨을 보는데 그 날의 주제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막내들도 나름(?) 서열이 있다?! 전소민 VS 양세찬! 두 막내의 치열한 서열전쟁! <막내들의 서열전쟁> 레이스!'

 처음에는 아무생각 없이 봤었는데,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막내의 역할과 서열은 정해져 있다?"

막내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런닝맨'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주변 친구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한탄 중 하나가 "막내일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직종과 하는 일은 모두 다른데 '막내 역할'은 마치 같은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모두 똑같았습니다. '막내 역할'로 대표되는 것은 ‘식당에 가면 수저와 물 세팅하기’, ‘점심 메뉴를 미리 정하기’, ‘회의 시작 전, 회의 자료를 미리 준비하고 회의실 냉난방기를 켜놓고 다과 세팅하기’ 등 입니다. 친구들 한탄 소리에 "필요한 사람이 직접 하고 가까운 사람이 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되물었더니 친구들은 하나 같이 저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습니다.

"야! 동방예의지국에서 나이 어린 사람이 이런 건 해야하는 거야. 막내 들어오면 내가 안할 거잖아. 그때까진 싫어도 참아야지."

  저는 친구들이 이른바 막내 역할을 하는 게 싫고 '고정된 역할'은 없어져야 된다고 말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막내 역할을 대신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 뿐이었습니다. "막내로써 역할은 있어야 하지만 내가 '막내 역할'을 하기는 싫고 다른 사람이 하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짜증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 말하고, 생각하게 됐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생각해보면 옛날엔 친구들이 말하는 회사의 막내 역할을 담당해서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이 아닌 '김양', '이양'으로 불렸던 여성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이 담당하던 일은 '허드렛일'이었습니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그녀들처럼 말이죠.

 과거부터 이어진 역할의 고정은 시대가 변하면서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런닝맨’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에서 조차 ‘나이에 의한 서열’, 이나 ‘고정된 역할’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차별'을 얘기하면 불쾌해하는 시선을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차별로 인해 만들어진 역할의 고정은 더 이상 유지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막내로써의 역할을 하는 것은 싫지만 막내의 역할은 존재해야 한다고 순응하는 세상이 아닌 그 어떠한 역할도 고정되어 있지 않는 삶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