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같던 그에게
동서공업 해고자 황영수 이야기
박진
건조하다는 건, 이런 느낌이다. 안산 반월공단에 들어서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무언가 손아귀 안에서 바스락거리면서 부서져 버리는 느낌. 작고 큰 건물 사이에 언뜻 보이는 사람, 차... 공장에서 들고 나는 거대한 물류...모두 추위를 비켜,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동서공업 해고자 황영수 그를 만나 이야기하는 내내 손가락 끝과 혀끝이 계속 버석거렸다. 해고가 오래된 이의 지나온 삶. 그런 것들이라면 짐작되는 여러 가지 신파 섞인 사연이 몇 번의 흔들림이나 분노, 급기야 서러움으로 진열될 법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마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마르코 폴로씨가 몇 년간 겪은 일을 들려주듯이 표정도 말투도 또박또박 지나치게 객관적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 건조함의 정체.
“우리가 잘 아는 현대, 기아에 중요부품을 납품하는 유성그룹이라는, 아...얼마 전 주야 이교대제 요구하는 노동조합 파괴하려고, 용역동원해서 별짓 다한 그 곳? 그렇습니다. 유성기업의 회장 둘째 아들이 경영하는 곳이 동서공업입니다. 그럼 아버지, 아들 모두 노조탄압...그것도 유전인가 보네요?”
그 동서공업에 2003년 입사했다. 구리 용해하는 회사를 다니다가 여기로 왔다. 그리고 2009년 해고되기 전까지 노조 대의원 3번 해본 것 외에 노동조합 활동 열심히 못했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집안에 아픈 분이 너무 많았다. 어머니는 암투병하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쓰러지셨다. 그가 감당해야할 병원비가 너무 많았다. 다른데 눈 돌릴 틈이 없었다. 그때 생긴 마음 빚인지, 별로 열심히 노조 하지도 않았던 그만, 정작 홀로 남아 해고투쟁중이다.
“해고되고 나서 현장에서 조금만 더 동료들과 역할을 했었더라면...지금의 나보다, 지금의 현장보다 낫지 않았을까...생각하게 됩니다. 집안에 발목 잡힌 상황만 아니었으면, 민주적 집행부가 들어섰을 때, 그때...” 그가 말하는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일은 해고된 2008년보다 한참 전인 2005년부터 구술되었다. 노조를 바꿔보려고 시작된 당시의 노력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 그때, 만약 제대로 내가 힘만 보탤 수 있었어도 2008년의 직장폐쇄와 2009년의 정리해고를 막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그는 분명히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회사가 노동자들의 마음을 이리 찢고 저리 찢으며 장난질 칠 때, 그토록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그는 얼마나 오래 곱씹어 생각했을까.
회사는 다, 그래야 하는 것일까.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자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민주노조의 싹을 자르고 노사합의 없는 일방적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의 목숨을 끊는 그들의 방식은 공식대로 비열했다. 해고회피 노력을 다했다는 시늉을 하기 위해서 해고자들중 12명에게 인원충원의 기회를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때의 기억도 그는 아프다. “안될줄 뻔히 알면서도 저도 재고용 면접을 봤습니다. 그렇게 그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라도 모두 하고, 나오고 싶었어요.”
다행히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고 1000일을 넘는 지금, 고등법원에서도 2심까지 승소했다. 작년 7월. 그때 그는 정말 기뻤다. 2심까지 이겼으면 해고무효소송은 대법원에 가도 바뀔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혼자 남아 있지만, 대법원까지 끝나고 나면 함께 공장으로 돌아갈 그 동지들이 돌아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회사는 이런 와중에도 치사하게 나왔다.
“경제적으로 어렵죠. 그래서 2심 승소하고 밀린 임금을 지급받으면 숨통이 트이니까...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그 돈을 법원에 공탁해 버리더군요. 마지막까지 못살게 굴겠다는 겁니다.” 당기 순이익 70억을 넘는 회사는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어야할 임금을, 이자까지 쳐서 주지는 못할망정 해고노동자 괴롭히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못됐다, 그놈들. 돈도 그토록 많은 놈들이.”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이럴 때 묻는 못된 질문이 있다. “그런데, 왜 싸우고 있는 거지요?” 미안하지만... 그냥 더럽다 생각하고 다른데 가면 되지 않아요? 아버지도 여전히 아프시고, 새롭게 만난 부인과 알콩달콩 살려면 여기서 싸우는 것보다 더 나은 길이 왜 없겠어요? 라는 훈계가 밑바닥에 깔린 그런 질문. 그걸 했다. 그때 마르코 폴로씨는 처음으로 급격히 흔들렸다. 그리고 날것대로 훅 뱉은 그의 말. “갈 데가 없어요.”
황영수씨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떠나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그렇게 그의 대답은 끝났다. 그런데 짧은 대답은 너무 많은 말들을 담고 있어서 귀로 들리지 않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마음속으로 쏟아졌다. 간과 위랑 비장까지 후두둑 떨렸다. 갈 곳이 없다는데, 여기서 떠나서 어디로 가야겠냐고 묻는데. 그 외의 무슨 이유가 더 필요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잔인했던 질문을 보충하는 답변을, 듣고 있는 나에게? 아니 자기 자신에게 후렴처럼 되풀이 변주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꺼예요. 왜 싸우고 있는지, 왜 그래야하는지...그래요. 그걸 대답하기가, 그걸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아요. 이유가 없어 보이니까...그런데 나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당하게 짤렸습니다, 이렇게 얘기한다고 이해할 수 없을테니까. 함께 했던 해고자들도 모두 이해시키지 못하는데...” 그날 인터뷰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벽1시경 “갈데가 없어요.”라고 말하던 그의 눈동자가, 입술 근육이나 성대에서의 울림이 아니라 눈동자에서 쏟아진 말을 기억하고 후두둑 눈물 흘렸다. 마치 삼백년쯤 전에 만들어져, 십년에 한 번씩만 울리는 거대한 종탑의 둔중한 타종처럼 그렇게 가슴도 둥둥거렸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맞다. 노동자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 김진숙씨가 85호크레인 위에서 겨울과 봄, 가을과 여름 지나 또 다른 겨울을 맞을 때까지 삶과 죽음의 멀미를 왜 감당하는지. 노동자들이 단지에서 흐르는 피로 노동해방을 쓰고, 목을 매거나 약을 먹거나 자기 몸에 불을 붙이는지. 그깟 일자리가 뭐라고. 그만두고 털고,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찾으면 되는 것을. 그런데 마르코 폴로처럼 말하는 동서공업 해고자 황영수씨의 말대로, 이유는 설명되기보다 보여지는 것이다. 그 언어가 ‘해방’ 또는 ‘존재’ 또는 ‘계급’ 또는 ‘혁명’같은 어마어마한 단어들로 구성되지 않아도 말이다. 그냥 내가 노동자니까, 여기서 쫓겨났을 때, 함께 거리로 내 몰려 버린 나를 찾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
집회 장소에서 종종 노래를 부른다는 그는, 가수다. 해고 된 후, 직장인 밴드를 하는 지인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장르가 다양해요. 대중가요 중심으로 하는데, 이용석 가요제가서 우유배달 황씨라는 노래 창작해서 상도 받았어요. 연영석씨 노래 간절히...이런거, 잘할 수 있는 거 쉬운 거...이런 걸 주로 불러요. 저는 혼자 많이 다녀요. 직장인밴드라 다들 같이 다니기 어렵고, 해고자 신분이라 좀 자유롭고...노래하면서 동서공업 이야기도 하고 다니고...그래요.”라고 말할 때 그는 웃었다. 이것도 마르코 폴로씨는 아니다. 황영수씨. 노래하는 노동자. 노래할 때 행복한 남자, 황영수씨. 그가 이 글을 읽을 것이 뻔하기에 쓴다. “참 노래가 고마워요. 동지를 웃게 하잖아요? 절대 노래를 놓지 마세요. 노래로 당신과 같은 이들에게 절망하지 말아야할 이유들을 꼭 알려주세요.”
회사 사진과 그를 함께 담기 위해 찾아간 동서공업. 그 곳에서 옛 동료를 만난 그는 반갑게 포옹을 했다. 그런데 후에 알게 된 사실. 그날 그와 악수했다는 죄로 동료는 잔업, 특근을 못하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당분간 연장근로를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이 남겨졌다. “형님은 크게 신경쓰지 말라하신다. 이참에 좀 쉬지 하시면서 오히려 날 더 걱정해주신다... 난 '형님 저 괜찮으니 공장 앞에서 출근 투쟁할 때 마주치면 눈 인사만 합시다' 형 맘은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래도 갈 길은 가야하기에...”
버석거리는 것은 황영수씨가 아니었다. 황량한 공장 건물들 사이로 주야 맞교대, 야근, 철야, 연장을 뛰면서 유령처럼 흔들리는 노동자, 그들. 그리고 해고된 동료를 따뜻하게 안아준 선배에게 야박한 연장근로, 특근떼서 돈 몇 푼으로 존엄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 마침내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고 있기만 한, 노동과 이를 이용하고 쥐어짜는 자본의 건조함이 반월공단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시종일관 묵묵했던 황영수씨는 사실 가장 뜨거운 사람이었다. 내가 왜 사람인지, 이윤으로 설득되지 않는, 지나가는 사람 모두 붙잡고 물어봐도 고개 저을 ‘갈데가 없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만으로도 1000일의 고난을 단단히 버틴 것은 그의 뜨거움때문이었다. “제가 마지막에 있던 곳이 용해작업하는 곳이예요. 알루미늄 들어오면 700도에서 녹여요. 그 뻘건 물을 받아서 주물에 넣으면...위험해요. 그게 잘못 튀면 옷에 구멍이 나요.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용해를 하고 싶다, 그런 생각해요.”그리고 또 그는 웃었다. 그를 웃게 한, 노래와 노동.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마땅히 그가 거처해야할 그곳으로 그는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겨울나무는 마른 잎 하나 남기지 않고 앙상하게 서 있다. 풍성했던 여름, 붉은 비단같았던 가을, 다시 올 그 모든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하지만 기실 겨울나무는 그 안에 머금은 생명, 앙상한 가지 끝에 한 숨 한 숨 매달린 겨울, 그 시간을 함께 지내는 중이다. 최선을 다해 가파른 바람을 품고, 가지를 꺾는 눈의 가혹함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 그대로 나무인, 겨울나무. 투쟁하기 때문에 이미 생명인 그대, 겨울나무.
<이 글은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람꽃을 만나다, 기획중의 인터뷰입니다. 이글은 다른 인터뷰들과 함께 곧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 박진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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