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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구)웹진_<다산인권>

[종간사] 희망이 되고 싶었고


20세를 맞이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가요? 그이가 나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그이가 나보다 어릴 수도 있으며 그이가 나와 같은 동갑내기일 수도 있습니다. 눈높이를 떠나서 심장 두근거리는 나이, 20세. 그 앞에 우리는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어집니다.

내년이면 다산인권센터가 20세가 됩니다. 웹진다산인권은 1997년 격월간 다산인권으로 시작해, 팩스신문을 거쳐 함께 자라왔습니다. 우리 사회 인권이 숨 쉴 수 없다고 절규하는 현장을 찾았고 대안적인 삶이 보이는 곳도 갔습니다. 차별을 넘어 투사가 된 사람들을 통해 인생을 배워왔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투쟁하고 있는지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많은 순간 부당한 권력에 의해 잡혀가고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다친 이들을 치료하고 위로할 시간도 없이 또 다른 이들이 쓰러진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분노로 들뜬 심장을 가눌 길 없던 밤도 많았습니다. 무력하기만 한 우리 자신에 대해 허리 꺽이는 좌절을 겪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희망이 되고 싶었고...를 넘는 자기 고백을 하기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2011년 후쿠시마에서 전해져온 핵 재앙의 버섯구름은 편리와 이윤에 길들여진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파국의 이정표였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혈세를 빌려주면서까지 원전 수주를 국가비지니스의 자랑으로 삼는 정부는 절망의 상징입니다. 탈핵은 야만의 전쟁에서 얻은 교훈이며 세계인의 약속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핵발전소 건립 말고 찾을 것이 없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져 울부짖는 4대강의 비명이 도처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수 천만 년을 살아온 구럼비 바위의 숨통을 끊는 저들의 군화발아래, 위선적인 녹색성장 포스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종북좌익 세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검찰총장, 불법과 폭력을 앞세운 ‘떼쓰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법무부장관, 엄동설한에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난사하는 경찰청장, SNS단속으로 표현의 자유를 단속하겠다는 국회의원들. 그들의 야만적 카르텔은 그들만을 위한 공정한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가두고, 정봉주 전 국회의원을 가뒀습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칼날로 무고한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왕재산을 비롯한 국가보안법 사건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한 순간에 파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인권을 지켜줘야 할 국가인권위는 스스로 반인권의 선봉장이 되어 있습니다.

열아홉명의 죽음으로 이어진 쌍용자동차, 용역깡패들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힌 유성 노동자들, 엄동설한에도 줄어들지 않는 장기투쟁 농성장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경쟁력과 최대이윤을 이야기하는 자본의 편에 서 있습니다. 양극화의 비극을 이야기하면서도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주권까지 내 주는 한미FTA가 정부여당에 의해 날치기되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는 독재자의 유언이 복지논쟁의 제일 앞에 서 있습니다. 대다수의 삶을 소수의 욕심으로 분탕질하는 1%의 욕망이 대격돌하는 2012년 정치의 계절. 대리되지 않는 직접민주주의 꿈은 어디에서 오고 있습니까.

이집트에서 시작된 쟈스민 혁명의 물결은 세계자본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에서 꽃피고 있습니다. 타인에 의해 유린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민중의 성난 함성은 한미FTA,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85호 크레인을 향한 희망버스의 눈물, 청소하는 일손을 멈추고 노동자임을 선언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쫄지 않고 말하겠다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기운센 울림들. 희망김장과 희망텐트로 이어지는 연대의 손길. 기어코 주민발의로 통과시킨 서울시학생인권조례의 소중한 성과.

학생인권의 소중한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학교들이 경기도에 생겨나고 있습니다. 3년째를 맞이하는 지역운동포럼은 지역운동의 소중한 성과들을 차곡차곡 저금하고 있습니다. 참여예산을 통해 풀뿌리자치를 만드는 소중한 경험들도 있습니다. 99%를 위한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화요일마다 수원역에 모여 있습니다. 3년째 촛불을 꺼뜨리지 않은 수원촛불은 200회의 민주주의 실험중입니다. 천포기의 배추만큼 알뜰하게 모아진 손길들이 동산만큼 어마어마한 희망김장을 나누었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와락 안아줄 보금자리도 생겼습니다. 이 모든 것이 희망이라면 아직 더디다, 작다 타박하겠습니까.

우리는 시인의 말대로 희망을 만났으나 과장하지 않았고, 절망을 만났으나 작아지지 않았으며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면서 다시 이 길을 나섭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자들의 삶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르죽어 있는 듯한 열망이 때를 기다려 역사의 굴레를 힘차게 밀어 붙였던 그 힘으로, 인권의 깃발을 들고 나섭니다. 비록 희망이 되고 싶었다는 고백밖에 할 수 없는 미력한 이들이지만 우리 모두 희망이었다는 한 페이지의 기록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지구가 수억 년의 세월을 돌아 나누었던 한 숨보다 곱절 많은 분노와 눈물을 모두 이곳에 쏟아 부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 자신을 이르는 이름입니다.

2011년 12월 26일

 2011년 웹진 다산인권을 마치며 다산인권센터 친구들이 그대들에게 삶과 희망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