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인권 활동가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다가온 감염병 위기에 모든 공공기관이 멈췄습니다. 학교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당장 일을 중단 할 수 없기에 함께 사는 어린이는 온라인 개학과 동시에 주변 친구, 지인, 다산 사무실을 돌며 하루하루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5월부터는 전일 등교가 아닌, 1주일에 한번만 학교를 가는 시스템으로 등교개학이 시작되었습니다. 1반을 4개로 나눠, 해당 요일에만 1주일에 한 번씩 학교에 갑니다. 어린이는 한 반에 몇 명이 있는지, 전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긴 방학이 끝나고 어린이가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 학교 앞까지 따라갔습니다. 마스크를 쓴 선생님과 어린이들을 보며 온전한 얼굴의 표정이 아닌, 눈빛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의중을 알아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에 마음이 울컥 했습니다.
첫 등교, 어린이의 급식은 빵과 우유였습니다. 너무 화가 나 학교와 교육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한 끼가 하루의 영양분일 수도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지급되느냐 물었습니다. 긴 통화를 했지만 결국 돌아가는 답변은 짧은 한마디, ‘감염병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몇일 후, 뉴스 기사를 통해 한 소년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학교가 멈추고, 양육자의 부재와 돌봄 공백 속에서 13살짜리 소년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는 언론기사였습니다. 돌봄 공백을 메꿔주고, 영양가 있는 하루의 끼니를 챙겨줄 수 있는 학교의 부재는 각기 다른 무게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맞벌이 양육자에게는 돌봄의 대란으로, 어린이들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배움을 누릴 수 있는 관계의 단절로,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영양분의 박탈 등.. 익숙한 공간이 멈춰서자, 그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들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염병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런 시대에 당도해있습니다.
‘감염병이라는 이유’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고, 공공기관과 사회적으로 관계 맺기 가능했던 시설이 문을 닫았습니다. 감염병 차단을 이유로 일부 폐쇄병동과 요양시설 등은 코호트 격리를 당했습니다. 감염병 예방을 이유로 집회시위도 금지되었습니다. 감염병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일도 있었고, 자가격리 앱, 안심밴드, 구상권 청구 등 징벌적 조치들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위기의 상황이기에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기고, 인권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감염병이라는 이유’는 모든 원칙과 그 동안 쌓아온 인권의 기본가치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긴급한 시기 만들어진 강력한 조치들이, 일상적으로 자리잡거나 언제든 다시 우리 삶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염병이라는 이유’는 이중잣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업의 페스티벌과 백화점 등은 방역 조치 하에서 영업이 가능하고, 노동자들의 집회는 감염을 이유로 차단되었습니다. 공공시설이 문을 닫았지만,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다른 시설은 운영 중입니다. 이중적인 잣대는 대부분 힘없는 이들에게 돌아옵니다. 위기에 처한 노동자는 말할 공간이 없고, 공공시설을 이용하던 이들은 일상과 관계가 단절되어버렸습니다. 정말 ‘감염병의 위기’에서 모두를 위한다면 공공기관부터 방역을 철저히 하며, 이용이 가능하게 해야하지 않을까요? 공공기관의 자기 역할 회피가 결국 방역에 문제를 만들고, 오히려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만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요.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나의 공간이, 나의 관계가 또 다른 감염의 경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시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에, 또 다른 대안을 만들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가고 있습니다. ‘감염병이라는 이유’로한 멈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 불평등과 모순을 응급처치식으로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사회적 논의를 통해 변화의 시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권은 모두의 일상과 생존, 존엄을 위한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다산의 인권운동이 ‘감염병이라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감염병의 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에, 오늘도 우리는 인권운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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