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주민 탄원서 조작 의혹을 재확인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세월호 집회 무더기 금지통고 국가배상청구소송 1심 승소에 대한 논평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인근 집회 신고를 했다가 금지당한 집회 주최자들이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5월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70단독 송경호 판사는 경찰의 무더기 금지통고가 집회신고 장소 인근 주민들의 주거지 등에 대한 장소 보호요청이 결여되어 위법하고 이로 인해 원고들이 당초 계획대로 집회를 개최하지 못하게 되어 집회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각 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4년 6월 10일, 삼청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만인대회’가 열렸다. 경찰은 집회 신고한 61곳 모두에 대해 ‘생활 평온 침해’(집시법 제8조 제3항 제1호) 등을 이유로 금지통고했다. 집시법 제8조 제3항 제1호는 “다른 사람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로서 집회나 시위로 재산 또는 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서 “그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집회금지를 통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원천봉쇄된 청와대 인근에 모였고, 69명이 연행되어 현재도 많은 이들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금지통고를 받은 집회 주최자 중 김진모씨는 2014년 9월 서울종로경찰서장을 상대로 금지통고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은 주민들이 집회 신고 직후인 2014년 6월 8일 집회를 막아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면서 증거로 제출했으나 이것은 작성일자와 집회 장소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원고가 접수 일자와 경위에 대해 석명을 요청하자 경찰은 탄원서를 분실하는 바람에 소송 중 다시 제출받았다고 실토했다. 소송 중 경찰은 분실했던 탄원서를 발견했다면서 추가로 제출했지만, 이 또한 탄원인들의 인적사항과 서명만 기재되어 금지된 집회와의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주민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되었으나 이들도 제출 시기는 물론 탄원서에서 문제 삼은 집회가 해당 집회를 지칭한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진술하지 못했다. 실제 주민의 탄원서가 접수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이 과거에 받은 탄원서를 청와대 주변 집회 금지통고마다 재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2015년 10월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이승한)는 “과연 인근 주민 80명이 이 사건 집회의 금지를 요청하는 취지로 위 연명부를 작성하여 이 사건 처분이 있기 전인 2014. 6. 8. 피고에게 이를 제출하였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피고가 항소했으나 2016년 3월 서울고법 제7행정부(재판장 윤성원)는 같은 이유로 항소 기각했고, 피고가 상고하지 않아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에 행정소송에서 승소가 확정된 김진모씨를 포함하여 김씨와 동일하게 ‘생활 평온 침해’만을 사유로 금지통고를 받은 한국작가회의 등 집회 주최자 9명이 2017년 6월 국가를 상대로 각 400만원을 청구하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이번 판결에 이른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송경호 판사는 “(경찰이 증거로 제출한 탄원서는) 연명부라는 제목 아래에 인근 주민 80여명이 차례대로 자신의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그 옆에 서명을 한 것에 불과하여 이 사건 각 집회와의 관련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등 행정소송의 확정 판결 취지를 재확인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는 청와대 주변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세월호 집회에 대한 금지통고는 경찰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심지어 경찰의 행동은 단순히 소극적으로 청와대를 지키는 것을 넘어선 것이었다. 청와대 근처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경찰은 주민들의 탄원서가 제출되지 않았음에도 주민들이 ‘집회·시위로부터 보호요청서’를 제출했다고 하면서 집회를 금지했다. 심지어 경찰은 행정소송이 제기된 이후에 탄원서를 받아놓고서도 마치 이 사건 집회금지통고 전에 받은 것처럼 은근슬쩍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했다. 재판부마저 기망하려고 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거짓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이를 덮으려고 또 조직적으로 거짓을 하는 행태는 이 사건 집회금지처분과 이후의 소송에서 일관된 경찰의 태도였다.
경찰은 이번 소송의 집회와 비슷한 시기와 장소에서 이루어진 2014년 5월 8일과 18일 청와대 만민공동회 집회 신고에 대해서도 지역 주민들의 탄원서 등이 제출되었다며 금지통고를 한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3월 국가인권위는 탄원서 등의 제출시기가 집회신고 일시와 시간적으로 근접해야 하며 제출 주체의 거주지 등이 집회신고 장소와 지리적으로 인접해야 하는데 제출된 탄원서 등이 작성일자가 없고 먼 거리에 있는 주민이 제출한 것이므로 경찰의 금지통고는 정당성이 없어 보인다며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집회는 민주적 기본질서 자체이다. 거짓 근거를 만들어서 집회를 금지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훼손에 경찰이 앞장서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은 집회를 금지하면서 항상 법치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정권을 위해서라면, 정권에 거슬리는 집회를 막기 위해서라면 집시법의 요건조차 거짓으로 조작하는 경찰의 민낯을 확인했다. 우리는 경찰이 청와대 인근 집회를 금지하기 위해 주민 탄원서까지 조작했다는 의혹을 재확인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경찰이 집회를 손쉽게 금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집회금지통고 제도를 폐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8년 6월 7일
공권력감시대응팀(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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