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수원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서 일부 집회참가자가 시민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집회 관리를 위한 경찰들이 있었음에도 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가해자들은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았고, 피해자는 수술을 받아야하는 정도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피해자가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관등성명을 대라고 했지만 경찰은 피해자의 정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경찰의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이를 규탄하며 수원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규탄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이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처벌, 그리고 이와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계획 수립 등을 요구했습니다.
기자회견 이후 경기도경찰청 경비과장과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경찰은 17일 집회 현장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요구한 사과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주장과 경찰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바가 있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이후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산인권센터를 포함한 수원시민사회단체들은 향후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조력하며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기자회견문]
극우집회시민폭행 방관한 직무유기 경찰을 규탄한다
지난 17일 오후 5시 수원시 팔달문 인근 도로를 행진하던 태극기 집회 일부 참가자들이 그 지역을 지나가던 시민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피해자는 가족과 함께 차를 몰고 집회 현장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이 집회의 목적이 뭔가에 대해 차 안에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밖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집회 참가자가 아무런 맥락도 없이 피해자에게 “빨갱이 새끼”라고 외쳤고 옆에 있던 어린이도 같이 “빨갱이 새끼”라고 따라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피해자가 창문을 통해 뭐하는 짓이냐며 항의를 하자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차로 달려들어 태극기 봉을 차안으로 찔러댔다. 놀란 피해자가 차에서 내려 항의하려고 하자 수많은 집회참가자들이 다짜고짜 달려들어 피해자를 폭행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가족들의 정신적 충격도 상당히 커 이후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의 폭력상황이 벌어졌는데 현장을 통제해야 할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당시 영상을 보면 현장에는 집회를 통제하던 경찰들이 있었지만 경찰은 이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기는커녕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가해자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노출되도록 방관했다. 가해자들의 행동을 확실하게 제지하거나 불법을 저지르고 있음을 고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해자를 잡아달라는 피해자의 요청을 무시한 채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양팔을 제압하여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제대로 방어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피해자가 경찰의 대응에 항의하기 위해 관등성명을 대라고 하니 입도 뻥긋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이것에 공무를 집행하는 제대로 된 경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집회의 자유는 우리나라 헌법을 비롯한 수많은 국제인권규범이 보장하는 근본적 권리로 모든 인간은 평화적 집회를 조직하고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평화로운 집회는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회참가자와 제3자들의 안전이다. 그러므로 경찰은 집회를 관리하되 폭력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또한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혹은 참가자와 시민 사이에 긴장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완화하기 위한 조처를 취해야 하고, 폭력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집회와 관련된 적절한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평의회의 자문기관인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베니스 위원회)‘도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관한 지침에서 법집행공무원이 공공집회를 다루기 위한 적절한 훈련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찰은 지금껏 집회를 진압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과연 우리나라 경찰이 평소 평화로운 집회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더불어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 가자 중요한 것이 책무성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집회 현장에서 자신의 신원을 식별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도 착용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2016년 한국을 방문한 마이나 키아이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방한 보고서에서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관들의 개별 신상을 식별할 수 없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경찰관의 신원을 감추고 더 나아가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집회 현장에 있던 경찰관에게 직접 신원을 물었음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인권단체가 이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문제 제기를 해왔음에도 경찰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것이 경찰 개인의 결정이었는지 그러한 관행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경찰은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공무 집행 시 모든 경찰관이 식별표를 착용하여 책무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태극기 집회에서 폭력 상황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탄핵반대집회에서부터 최근 지역에서 벌어진 태극기 집회에서 시민이나 기자들에 대한 크고 작은 폭력상황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 참가자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계속해서 시민들을 향해 폭언을 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찰의 직무유기로 인해 이번과 같은 유혈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찰은 이번 폭력사태와 관련하여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현장 책임자를 비롯하여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찰관들을 제대로 처벌하여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평화로운 집회를 보장하기 위해, 그리고 집회 내에서 폭력상황이 벌어지는 경우 어떠한 조취를 취할 것이지 구체적인 계획과 그 실행 방안을 시민사회와 공유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새정부 하에서 ‘인권경찰’을 지향하는 경찰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21일
다산인권센터, 경기민권연대, 6.15수원본부, 정의당 수원시위원회, 노동당 수원오산화성 당협, 민중당 수원지역위원회, 수원녹색당, 수원시민사회단체협의회(극단성(成), 수원 경실련, 수원나눔의집, 수원지역목회자연대, 수원민예총, 수원새벽빛장애인자립생활센터, 수원생협, 수원이주민센터, 수원여성노동자회, 수원여성의전화, 수원여성회, 수원일하는여성회,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아우름(구 수원탁틴내일), 수원환경운동센터, 수원환경운동연합, 수원흥사단, 수원KYC, 수원YMCA, 수원YWCA, 전교조 초중등 수원사립지회, 풍물굿패 삶터),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한빛학교, 인권교육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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