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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활동 소식

[활동소식] 폭력의 악순환, 누구의 책임인가


다산인권센터와 프레시안에서는 컨택터스를 비롯한 각종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용역으로 일하면서 받는 비인간적인 처우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용역도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처를 보듬고, 도울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돕고자 합니다. 어려운 길은 한 발을 내딛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래 연락처로 제보 바랍니다. 

 다산인권센터: 이메일 humandasan@gmail.com / 트위터 @humandasan
▶ 프레시안 : 이메일 kakiru@pressian.com





공장 문 안쪽에는 이른바 '용역깡패’라 불리우는 이들이 검은색 티셔츠와 무거운 헬멧, 방패 그리고 자기 키만한 곤봉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새벽에 머리가 깨지고 치아가 무너지는 폭력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공장 밖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공포의 시간이 지난 뒤 찾아간 안산의 SJM공장 안과 밖에는 뜨거운 햇살이 고르게 내리쬐고 있었다. 뒤늦게 붙은 직장폐쇄 공고문은 기약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전쟁, 중간쯤에서 또박또박 그러나 뻔뻔하게 붙어 있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전쟁같은 시간들은 또 다른 얼굴, '용역깡패'라 불리는 그들에게도 끈적끈적한 피로와 더위로 늘어 붙어있었다. 공장안에 있던 노동자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했던 폭력 행위자들인, 그들은 지나치게 젊었다. 아니 사실은 너무 어려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그늘 좋은 곳에서 대장처럼 버티고 있는, 덩치 좋은 이들과 한눈에도 달라보였다. 
'용역'과 '깡패'가 하나의 단어가 된 이유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든 덩치들과 달리, 어린용역들은 공장 정문과 후문, 주변 담벼락에서 고스란히 뙤약볕을 맞으며 불안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나뉘어져 있었다. 

지난해 한진중공업을 비롯 유성기업 등 ‘용역폭력’이 기승을 부릴 때 한겨레에서 보도한 기사가 있다. 어느 지방대 미대 1학년에 재학 중인 용역 알바생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여름방학 5주 동안 부산의 한진중공업,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 서울 명동 3구역 철거예정지 등을 돌며 받은 120만원. 이 돈으로 등록금 일부와 생활비를 벌 수 있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다는 말까지. 그는 ‘깡패새끼’라는 욕을 먹어도 내 등록금이 저들의 사정보다 더 절박하다고 했었다. 

안산 SJM공장 안쪽에서 지루한 시간과 다투며,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그를 떠올렸다. 그의 절박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감당할 수 없이 올라가는 등록금, 하루하루 버텨야하는 생활비...그 때문에 20년을 넘게 일한 공장에서 아버지뻘 되는 늙은 노동자를 내쫒는 일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곤봉을 들고 소화기를 집어 던졌을 그. 그를 그렇게 절박하게 내 몰고 있는 이 사회는 무엇인가. 


 

27일 새벽 SJM 공장에 투입되기 전날 이들은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집결했다고 한다. 그 중 일부가 SJM에 투입되고 나머지는 평택, 익산에 위치한 만도기계에 투입됐다. 한 무리는 컨택터스라는 이름으로, 한무리는 지원가드라는 이름으로. 이 일사분란함 속에서 등록금 벌겠다고, 생활비 보태겠다고 모인 젊은 청년들에게 용역업체 사장님은, 또는 SJM, 만도 아니면, 두 회사의 원청회사인 현대의 사장님들은 무엇을 원했을까. 그들의 욕망과 지시를 옮긴 누군가는 무엇을 말했을까.

"빨갱이 새끼들 때려 눕혀도 괜찮다." "이 일은 회사를 살리는 일이다." "노조원들 말은 무조건 거짓말이다."라고 했을까. 

SJM 공장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대화를 거부했다. 전쟁터에서 만난 아군과 적군 사이처럼 공장 밖을 향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며칠 뒤 찾은 공장에 쳐진 철조망처럼 굳게 닫혀있었다. 그들의 스마트폰은 수시로 '카톡' '카톡'을 울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을 내쫓았지만 거꾸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공장안에 갇혀 있는 그들을 보는 일은 괴로웠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 딴 소식을 검색하고 있을까...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겁니까?”

망설임 끝에 다가간 내 질문을 받아 친 것은 뒤 편에 서 있던 몸집이 건장한 사내였다.

“여기서 그런거 묻지 마세요”

쫒겨난 노동자와 그들을 내쫒은 청년들이 마주한 안산 공단의 작은 공장. 밤낮없이 15년 동안 만든 자동차 부품이 도리어 자신을 향한 폭력의 도구로 돌변해 버린 현실에 좌절하는 노동자. 등록금과 생활비 벌겠다고 선택한 아르바이트로 인간 존엄을 짓밟는 극단의 폭력행위에 가담하게 된 청년들. 그들이 마주한 공장은 직장폐쇄라는 이름만 요란했을뿐, 라인은 숨가쁘게 굴러가고 있었다. 또 다른 어떤 노동자의 노동을 빌어, 공장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닫혀버린 컨텍터스 홈페이지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컨택터스의 노조원들을 위한 휴먼 최첨단 장비, 폭력이 야기되지 않고 물리적 충돌과 부상이 없는 대응, 우세한 신체조건, 강인한 파워, 국내외 분쟁 현장과 아프간까지 다녀온 백전노장, 그러나 노조원들에게 더 없이 인자하며, 노조원들을 때리지 않는 마음씨 좋은 분쟁 현장의 신사-컨택터스!’

컨택터스의 가면은 SJM에서 남김없이 벗겨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어느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내쫓고 있을지 모를 또 다른 컨택터스가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비명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뒷짐지고 서 있는 경찰도 있을 것이다. 절망 속에 뒤척이며, 공장으로 돌아가려는 노동자들의 눈물은 아직도 흐를 것이다. 노동자들의 눈물에 젖어도 찢어지지 않은 어느 공장의 '직장폐쇄' 공고문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 눈물의 홍수를 빠진 채, 나보다 더 절박한 사정은 없다고, 무장한 폭력이 되어 공장의 담을 타 넘을 그 노동자의 아들들은 오늘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