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천시는 시청 앞에 시민휴식공간을 조성하면서 조례를 통해 그 곳의 목적을 제한하고, 집회·시위를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는 것입니다. 이에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조례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며, 조례 내용을 헌법과 법률에 맞게 개선하도록 촉구합니다.
인천애(愛)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에 대한 의견서
1. 들어가며
인천시가 현 미래광장을 청사 내부까지 확대해 청사 정문과 담장을 허물어 시민과 소통하는 시민휴식공간으로 조성하겠다며 ‘인천애(愛)뜰’로 이름 짓고, ‘인천애(愛)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인천시는 이 사업이 민선7기 제1호 지시사항이며 시민소통을 강조했지만, 조례안의 내용은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광장을 시의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시청의 정원으로 전락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서울시에서도 시청광장과 광화문광장 사용 조례가 시민의 광장 이용을 제한하고 상위법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이어져 시청광장 사용 조례가 개정되었다. 현재 입법예고된 인천시의 조례안은 서울시의 과거 광장 조례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후퇴하여 집회 시위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담고 있다. 이 조례안은 시민과의 소통이 아니라 시민을 관리하고 공공공간을 행정을 통해 통제하겠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이에 구체적인 문제점을 통해 ‘인천애(愛)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을 밝힌다.
2. 공공공간으로서 광장
우선 조례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광장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해야 한다. 광장이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에 따라 그 운영과 주체, 기능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미래광장이 도로에 둘러싸여 외딴 섬처럼 주변과는 분리된 공간으로 접근성과 활용도가 낮았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고 광장으로서의 의미를 만드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와 함께 운영과 이용에 있어 차별 없이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광장은 도시의 공공공간이다. 도시의 공공공간이란 개인의 사적공간과는 구분되는 도시민이 자유롭게 만나는 공간이다. 여기에선 사적영역에 이루어지는 행위와 구별되는 공적, 문화적, 종교적, 상업적 또는 정치적인 행위들이 이루어진다.
공공공간은 공공성을 담보해야 한다. 공공성은 공동체의(common), 공동의(public), 널리 공개된(open) 성질을 가리킨다. 즉, 광장이라는 공공공간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하는(물리적이든 절차적이든) 공동의 것이며 특권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장을 조성하고 운영하는 공공기관 역시 공공성을 구현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아야 한다.
광장의 대표적인 예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나 로마의 포럼과 같은 공간들은 공론장의 행위가 일어났던 대표적 공공공간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공론장 또는 공공영역은 시민이 모여 서로 토론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자발적인 정치적 참여가 일어나는 장으로 민주적 정치행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광장에 모인 시민의 힘으로 사회를 더 민주적으로 바꿔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광장에서의 민주주의 실천의 경험은 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고, 시민을 정치적 주체로 참여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3. 인천애(愛)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의 문제
1) 목적의 제한에 따른 문제
조례안은 조례의 목적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사, 시민의 건전한 여가 및 문화 활동과 공익적 행사 등을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광장을 문화공간, 휴식공간으로만 한정하려는 것이며 광장의 의미를 제한하고 축소하는 것이다.
공공공간인 광장에 진입할 수 없는 내용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 이유는 타당한지, 그리고 그것을 시와 일부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지 묻고 싶다. 특히 ‘건전’이라는 추상적 문구는 해석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누가 무엇을 ‘건전한 여가’로 판단하게 되는가에 따라 광장의 이용은 제한된다. 또한 ‘공익적 행사’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면서 집회와 시위를 공익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광장의 역할을 삭제해버린다.
광장은 다양한 의견을 교류하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써 사회를 민주적으로 만드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조례안에서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경우 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넣음으로써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다수의 의견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의 척도는 그 사회가 얼마나 다원적이면서 관용적인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다수의 의견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존재하면서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끊임없이 갈등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민주적 가치이고 지자체가 추구할 사회적 가치이다.
2) 허가제로 운영하는 문제
조례안은 광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허가 신청서를 접수하여 운영심의위원회의 허가를 거쳐야 한다. 광장 사용의 목적을 제한하고 그 내용을 심사해 허가하는 것은 광장 사용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청 광장의 경우,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 진정한 시민들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서울시 조례개정 운동이 벌어졌다. 개정운동의 핵심은 서울광장 사용을 기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고, 시민위원회를 설치해 시장이 아닌 다수 시민이 광장 사용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2011년 서울시청 광장의 조례가 신고제로 개정되었다. 또한, 2015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개최한 '자치법규의 적법성 확보방안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광화문광장 조례가 광장 이용을 '허가사항'으로 하는 것을 서울광장처럼 개정해야 한다는 제안이 되었다.
허가제에 따른 광장 이용의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적되었다. 2005년 서울광장 사용신청 불허로 인한 평등권 침해 진정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광장에 대한 자의적인 사용허가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및 광장사용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3) 집회·시위 금지의 문제
조례안에 따르면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집회 및 시위의 경우 시청 내 본관 앞에 새로 조성하는 잔디마당에서는 허가되지 않고 기존 시청 밖 미래광장(바닥분수 광장, 음악분수 광장)은 시의 허가를 받아야 개최할 수 있다. 기존 미래광장은 남동구가 관리했으며 영리 목적 사용 또는 텐트 등 시설물을 설치할 때 신고를 받았을 뿐 허가 절차가 없어 집회와 시위는 경찰 신고만으로 가능했는데 시가 ‘인천애(愛)뜰’을 조성하면서 미래광장에서의 집회 및 시위는 시의 사용허가를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광장은 놀이와 휴식의 장소일 뿐 아니라, 정부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 '공적 장소'이며 당연히 집회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집회와 시위의 권리는 헌법의 기본권 중 가장 중요한 자유에 속하며,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경우에만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이때에도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기 때문에 집회·시위의 허가제는 원칙적으로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조례안은 위헌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집회·시위를 규율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있음에도 조례로 상위법을 뛰어넘는 규제를 가능하게 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작년 헌법재판소는 원천적 집회 금지 장소를 규정한 집시법 11조에서 국회의사당, 국무총리 공관, 각급 법원 앞에서의 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 규정은 기본적으로 헌법 제21조와 합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이 권력기관을 향해서, 권력기관이 있는 공간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권력기관을 성역화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한국보고서에서 집회의 일시 및 장소에 대한 일률적 금지를 하는 집시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렇게 헌법재판소와 유엔이 집시법의 절대적 집회 금지장소 조항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례로 광장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퇴행적이며 반인권적인 행정이다.
4. 결론
결국 ‘인천애(愛)뜰’은 사용목적의 제한과 허가제 운영, 집회·시위의 금지라는 문제로 광장으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인천시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공간이 시민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이미 많은 곳이 행정적인 통제를 통해서 서로 교류하고 여론을 형성하며 정치적 행위를 하는데 제약이 많다. 시가 광장을 이렇게 운영한다면 나쁜 선례가 되어 인천의 여러 공간이 폐쇄적인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고, 다른 지자체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광장이라는 공간은 정부가 시민의 여가를 위해 시혜적으로 또는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공간이 아니다. 광장은 시민의 공간이자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광장은 시민들이 어떠한 행태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광장문화를 만들고, 가꾸고, 규제하는 것은 시민의 역할이어야 한다. 따라서 광장의 용도는 인천시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광장의 사용 목적을 제한하고 그 목적에 맞는지 심사하는 허가제로 광장 사용을 제한하는 조례는 결국 ‘닫힌 광장’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인천시는 시민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광장을 조성하겠다는 선전만 할 것이 아니라 광장이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소통의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입법예고된 ‘인천애(愛)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폐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2019년 8월 8일
공권력감시대응팀(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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