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시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그 1호 진정을 MBC 아나운서들이 냈습니다. 그 자리에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가 함께 했습니다.
오늘 그들이 준비한 기자회견문입니다.
“저희도 일하고 싶습니다.”
-MBC 부당 해고 아나운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 제출
지난 5월 13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아나운서들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우리 회사’ MBC의 문이 드디어 열렸다는 사실에 벅찬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복귀한다는 기쁨도 잠시, 회사 안에서 우리에게 허용된 공간은 예전의 일터인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구석 회의실입니다. 책상 여덟 개만 간신히 들어가는 비좁은 골방에 배정된 우리는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 나눌 테이블 하나조차 없는 낯선 방에서 온종일 앉아만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입구에는 ‘아나운서국’ 팻말이 붙어있습니다. 국장, 부장, 선배, 후배도 없는 우리만의 아나운서국. MBC 창사 최초로 아나운서 2국이 생긴 웃지 못할 상황. 원래의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골방에서 봄이 가고, 벌써 한여름이 되었습니다.
격리된 것은 공간만이 아닙니다. 전산망도 차단되었습니다. 회사는 가처분 결정을 받은 날 사내 포털에 우리 아나운서들에 대한 방침을 공지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그 글을 볼 수조차 없습니다. 최승호 사장에게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싶어도 사내 메일을 사용할 수 없어 그 또한 요원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일은 언제 할 수 있는 것인지 사 측에 물었으나, 업무 부여 계획이 없다는 차가운 답변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아나운서국 총원이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요즘,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아침 라디오 뉴스를 프리랜서에게 맡기고, 매주 고정 앵커가 하던 주말 정오의 TV 뉴스를 돌아가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우리에겐 일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무진으로부터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 쓸 사람이 없다.”라는 아우성이 들려와도 우리는 가용 인력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법원에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은 문화방송의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업무 공간으로부터 격리당하고, 사내 전산망 접속이 차단되어 회사 소식을 알 수조차 없습니다. 회사로부터 급여는 받지만, 일을 언제 할 수 있을지도 모른 채 온종일 책상에 앉아만 있습니다. 이것이 사법부가 인정한 ‘근로자’ 지위란 말입니까.
노동자의 권리와 공영방송의 의무를 외쳐온 문화방송은 판결문에 쓰인 ‘근로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타당한 이유 없이 우리 아나운서들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나운서국 선배인 변창립 부사장에게는 문자메시지로 면담 요청을 해봤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다는 답장이 날아왔습니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시행되는 오늘, 우리가 정당히 부여받은 일할 권리를 되찾고자 문화방송을 직장 내 괴롭힘 1호 사업장으로 신고합니다.
사랑하는 회사를, 해직의 아픔을 아는 선배 최승호 사장을 고소한다는 것은 우리 아나운서들에게도 뼈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부당한 상황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격리소’에 가본 사람이 MBC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 선배들이 “힘들더라도 이 시기를 즐겁고, 보람차게 보내라.”라고 조언해주는 걸 보며 ‘반복되는 비극 속에서 MBC가 고통에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가, 정말 버티는 것만이 답인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우리는 이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습니다. 더 이상 MBC에, 나아가 다른 직장 어디에서도 직장 내 괴롬힘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9. 07. 16.
MBC 16, 17 사번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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