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화문 하이디스, 그/녀들의 겨울[기고] 광화문 하이디스, 그/녀들의 겨울

Posted at 2016.02.04 10:33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모르겠다. 지나는 사람들의 종종거리는 발걸음이 더욱 시려 보이는 것은. 몇 십 년 만에 찾아 온 한파에 대한민국 곳곳이 얼어붙었다. 빙판이 된 거리, 날지 못하는 비행기, 얼어버린 세탁기 배관과 터져버린 보일러들. 영하의 추위에 얼어붙은 한국사회는 재난이 닥쳐오면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함이 탄로 났다. 복지, 사회적 안전망, 안전과 그 비슷하게 불리 우는 수많은 따뜻함의 조건들은 이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온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국가적 재난에도, 갑자기 바뀌어버린 날씨에도 안전하지 못한 사회는 개개인의 삶과 안녕을 지켜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두말하면 지겨운 이야기가 되었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광화문 한 가운데, 하이디스 농성장의 그/녀들이다.




▲ 민주노총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26일 공장을 폐쇄하고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먹튀자본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민중의 소리 정의철 기자)


광화문 한가운데 그/녀들의 이야기

“4조 3교대였어요. 주말에 휴가도 동료들과 시간을 맞춰서 가야했어요. 트러블도 있었죠. 3교대, 4조 3교대, 그러다가 다시 주간. 이렇게 일을 하다보니까 한 15년을 계속 일하고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취업으로 들어간 첫 직장이었어요. 이렇게 짤리고 나니까, 지금은 공장만 다시 돌리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어도, 다시 배우고, 다시 일하고 싶어요. 3교대로 일했지만 그때가 행복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행복했던 걸 몰랐던 것 같아요.”

34살 효선 씨가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하이디스에 취업 한 그녀는 15년의 세월을 하이디스와 함께했다. 하이디스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가끔은 휴가를 맞추기 위해 동료들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고된 일과가 끝나고 시원한 맥주한 잔에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3교대 근무에 피곤함이 몰려와도 매달 쌓이는 통장의 월급에 웃음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는 길을 15년 동안 걸으며, 오늘과 다르지 않은 평온한 일상을 보냈을 그녀였다. 하지만 평온함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한 순간. 그녀와 그녀의 동료 330여명은 공장에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330여명의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 그 늘어선 이름들의 의미는 늘 반복되던 일상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330여 명 중 109명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희망퇴직을 신청 했어요. 그리고 희망퇴직하지 않은 인원 78명을 정리해고 했어요. 원래는 현대 하이디스였는데, 중국의 BOE 하이디스로 분할 매각되었죠. 그때도 중국에서 중요한 핵심 기술은 다 빼갔어요. 그 다음에는 대만의 영풍그룹으로 넘어갔어요. 시설투자나 설비투자는 하나도 없었죠. 핸드폰 액정 관련한 특허권이 있는데 대만 영풍 그룹은 특허권만 쏙 빼가고, 공장을 폐쇄한데요. 몇 차례 해외로 매각되면서 중요한 기술들은 쏙 빠져나가고, 결국에는 노동자들만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죠.”

지난 10여 년간 하이디스는 수차례 국적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대만으로. 회사는 이윤의 논리에 따라 국적을 바꾸고, 국적의 변화에 따라 핵심기술들은 하이디스를 떠나갔다. 현재 하이디스의 실소유주인 대만의 이-잉크 자본(영풍그룹 계열사)은 특허기술을 외부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매년 몇 백억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시설과 설비투자는 없이 앙상한 공장을 만들어갔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이 핵심기술을 빼가고, 몇 십 년을 일한 노동자들의 삶을 거리로 내모는데도, 노동자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한국 정부기관은 없었다. 노동자들 스스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대만 영사관이 있는 광화문 한복판에 농성장을 차리고, 대만으로 원정 투쟁을 떠났다.


낯선 나라에서의 환대

“저는 2,3차 원정투쟁에 함께 갔어요. 원정투쟁은 대만에 하이디스 상황을 알리고, 영풍그룹을 압박하려는 거였어요. 만나서 협상이라도, 아니 면담이라도 해달라는 바람이었죠. 저는 대만에서 15일인가, 16일인가 만에 강제출국 당했어요. 정말 낯선 곳이었는데 대만 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한국에서도 잘 모르는 사안인데, 대만 분들은 자기 일처럼 함께 해줬어요. 영풍그룹이 그랬다는 것에 같이 화내주고, 정리해고 때문에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더 미안해했어요. 한국정부에서는 외면하지만 대만에서의 따뜻함에 너무 고마웠어요.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근데 다시 갈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억울함을 알리고, 호소하기 위한 원정투쟁이었다. 영풍그룹에 상처받은 마음에 대만의 시민들은 따뜻한 온기와 환대를 보내주었다.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연대.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자본에 맞선, 국경 없는 노동자/시민들의 연대였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향후 몇 년간은 대만에 입국하지 못한다. 대만 입국 자체가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자본은 국경의 벽을 허물었지만, 저항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국경의 벽은 견고했다.
 
언제까지 할 거예요?

“사람들이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물어봐요. 나는 앞으로 1년을 더하고 싶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법원 판결등도 남았으니까. 그거 끝날 때까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 포기할 수 없어요. 아직 내가 원이 풀릴 만큼 싸워보지 못한 거 같아요.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작년에 사랑하는 동료를 먼저 보내기도 했어요. 배재형,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나중에 내가 하늘나라 가게 되면 잘 했다고 칭찬 듣고 싶게. 그렇게 싸우고 싶어요. 적어도 꿀밤 맞지는 말아야죠. 그리고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버틸 수 있어요.”

지난해 5월 하이디스에 배재형이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먹튀 자본의 정리해고는 소중한 목숨마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고통, 그것이 정리해고의 본뜻일 것이다. 누군가는 삶을 포기했지만, 회사는 이 끔찍한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받아놓고, 그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했을 시 주는 위로금의 액수도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도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쉽지만은 않은 시간들이다. 추운 겨울바람보다 더 매서운 것은, 노동자들을 끝으로 밀어 붙여버리는 회사와 법이었다. 330여명의 정리해고가 발표된 시점부터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시간은 멈췄다. 아무리 회사의 경영과 법이라 한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희망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결코 옳은 경영과 법이 아닐 것이다. 법과 이윤의 잣대로 노동자의 삶을 재단하기에는 그들의 삶과 일상은 너무도 소중하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소박하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일하는 것. 국가의 주요한 기술을 유출하지 말고, 함께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이 외침을 외면하는 국가를 대신해서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을 농성장에서 보내고 있다. 국가가 외면한 곳에 동료들의 온기와 타국에서 보내온 연대의 훈훈함이 넘쳐흐른다. 제발 이 엉터리 국가가 노동자들의 외침을 듣기를. 그들이 스스로를 돌보기 이전에 이 사회가 모진 삶에 치인 이들을 먼저 막아주는 안전망이 되기를. 그리고 이 겨울이 끝자락으로 가기 전 에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든 일터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2016년 2월 1일 미디어스

랄라(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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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하이디스, 그/녀들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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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 314 모두가 굴뚝인이다.[사진글] 314 모두가 굴뚝인이다.

Posted at 2015.03.16 10:33 | Posted in 활동소식/이슈&사람


ⓒ 안병주


보자, 그러니까 '희망버스'란 단어가 2011년 한진중공업에 내려간게 시작이었으니, 올해로 4년이 시간이 흘렀습다. 아직 희망버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평택입니다. '굴뚝인' 이창근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지난 3월 14일 토요일, 봄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그 날, 조그만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희망의 봄'이라는 단어가 목에 걸립니다. 안그래도 저 현수막을 버스에 다는 것도 우여곡절끝에...여튼 낯익은 얼굴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 안병주



7년전, 공장위로 헬기가 떠다녔던 그 때 그 시간에도 보였던 저 간판은 그대롭니다.


ⓒ 안병주


저 출입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고 싶다고, 7년의 긴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출근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밖에서 싸우는 동료들을 보면서 안에 있는 동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온갖 잡념이 스치는 정문.



ⓒ 안병주


회계조작도 들어나고, 조작된 서류로 정리해고 했다면 그 정리해고도 당연히 무효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은 것이지요. 법의 잣대는 고무줄인가 봅니다. 아니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닐까요.


ⓒ 안병주


굴뚝밖 곳곳에는 마음들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응원하고 사랑하고 연대하겠다는 글귀가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 안병주


오늘도 내일도 함께 할게요.


ⓒ 안병주


쌍용차 정문 앞에는 여전히도 분향소가 차려져 있습니다. 7년전 정리해고 이후 돌아가신 26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이 소박한 분향소는 여전히 쌍용차 정문앞에 있습니다.


ⓒ 안병주


수백대의 팔려나갈 자동차와 그 공장안을 순찰하는 경찰. 저렇게 생산된 차는 유유히도 도로를 질주할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은 저 쌔끈한 자동차에 흔적도 남지 않습니다. 


ⓒ 안병주


공장안 굴뚝에서는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이창근이 피우는 담배연기 같아 보입니다. 나 여기 있다고 알리는 봉화연기 같았습니다. 


ⓒ 안병주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무대에 섰습니다. 기나긴 싸움끝에 얼마전에야 비로서 복직이 완료됐다고 합니다. 길고 지루한 싸움은 해고의 고통보다 어쩌면 더 고통스럽니다. 쌍차 노동자들은 7년을 싸우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안병주


가족을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도 무대에 올랐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간절함을 눈물로 말합니다. 이 아픔들이 쌍용차 공장 앞에 있습니다.


ⓒ 안병주


밀양 주민이 이창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밀양에 왔던 쌍차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 아픔에 밀양의 할머니들도 함께 하고 있다고, 모두가 아파도 그 아픔을 나누면 희망이 보일 것이라고, 이창근에게 편지를 올렸다.


ⓒ 안병주


공장 앞 거리는 금새 북적이는 장터로 변했습니다. 아이들은 줄을 넘고 그림을 기르고, 여기저기 노랫소리와 물건 파는 소리에 사람냄새가 가득합니다. 고통의 에너지보다 흥겨움이 가득합니다.


ⓒ 안병주


아이들이 그리는 굴뚝,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릴까...그래도 정성들여 색깔을 칠하는 손이 마냥 곱습니다.


ⓒ 안병주

 

한땀 한땀 바느질로 글자를 완성하는 사람들. '굴뚝같은' 그 뒤로 무슨 글자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바느질입니다. 완성된 글자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


ⓒ 안병주


꽃밭에 누운 사람들. 진짜 한번 환한 꽃밭에 누워 하늘을 마음편히 쳐다보고 싶은 노동자. 그 노동자들은 하염없이 굴뚝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 안병주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픔이 아픔을 아는 법입니다. 


ⓒ 안병주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 안병주


가수 지민주님은 굴뚝을 향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가 바람을 타고 굴뚝으로 흘러갑니다. 마음을 울리는 노래는 공장의 벽을 넘어 굴뚝으로 흘러갑니다.


ⓒ 안병주


이제 굴뚝엔 이창근 혼자입니다. 김정욱님은 교섭을 위해 내려왔습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만든 티볼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 안병주


선을 만든 이들은 누구고, 선을 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굴까요. 선을 넘어 굴뚝을 올라간 이창근은 범법자 일까요? 저들이 쳐놓은 선은 '넘으라고' 만든 선이 아닐까요?


ⓒ 안병주


굴뚝이 보이는 철망앞에 자물쇠가 걸렸습니다. 함께 살자 약속을 걸었습니다.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 오늘, 우리 모두가 굴뚝인이 되었습니다.


ⓒ 안병주

 

 

어떤 경우 | 이문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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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에 봄을 올리러 갑니다.[3/14]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에 봄을 올리러 갑니다.

Posted at 2015.03.10 18:18 | Posted in 공지사항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과 김정욱님이 올라가 있는 굴뚝에도 봄은 오겠지요?

사람은 내려오고 봄이 올라가야 합니다.


봄을 올리러 3월 14일 쌍용자동차 굴뚝앞으로 출발합니다.

수원에서 함께 출발하실 분들을 기다립니다.


■ 출발시간 : 3월 14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 출발장소 : 수원역 파출소 앞 (오산방향)

■ 참가신청 : 장혜진 010-2014-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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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빠 말 믿은 딸아이, 세월호 타고 떠났다[기고] 아빠 말 믿은 딸아이, 세월호 타고 떠났다

Posted at 2015.03.10 15:00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쌍용차 자전거 희망 행진 나선 세월호 유가족 세희아빠 임종호씨


오는 14일 쌍용차 희망행진이 김정욱, 이창근 굴뚝 농성장 앞에서 열립니다. 이를 앞두고 지난 8일 서울에서 평택까지 응원 행렬이 자전거를 타고 굴뚝을 향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세월호 유가족 고 임세희양의 아빠 임종호님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굴뚝 앞으로 갔던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 출발하는자전거행진단 ⓒ 안병주


세희 아빠 임종호씨에게 자전거 타기를 권유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그러자"고 대답했다. 전날(지난 7일) 강릉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 콘서트 일정이 있어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때문에 그가 낼 수 있는 시간은 주말과 밤 시간밖에 없다. 혹시라도 약속된 일정이 있는지 생각했던 것이다. 잠시도 쉴 시간 없는 그가 수원에서 평택까지 짧지 않은 거리, 자전거를 탔다. 세월호와 직접 관련된 일도 아닌데 고마웠다. 그러나 고맙다는 인사를 그는 가볍게 거절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서는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마울 게 뭐가 있어요. 이게 내 일인데. 내가 금속노조 조합원이기도 하지만, 저기 굴뚝에 올라간 사람 일이 남의 일인가, 내 일이지. 간담회나 북콘서트 가서 늘 하는 얘기지만, 내 일이라 생각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1등 하면 좋겠다 하지만,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는 2등이고 3등, 10등, 40등인데. 다 재벌 회장 되는 거 아니잖아요. 회장만 있어서도 안 되고. 대부분 사회 나와서 노동자 되고, 비정규직 되잖아. 그럼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가 남 일인가, 내 자식 일이고 내 일이지요.

그래서 나는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월호) 사고 있기 전에 쌍용차에도 많이 왔었어요. 희망 텐트하던 해에는 공장 앞에서 노숙도 했었어요. 그때 정말 추웠는데... 그래서 낯설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야지요.


세희 아빠가 근무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는 금속노조 인천지부 소속의 사업장이다. 그는 기술직으로 입사해 10년째 근무 중이다. 2007년부터 노조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그 해 산업 안전 담당으로 일했고, 2년 뒤에는 노조 사무장, 그 다음에는 노조 지회장도 역임했다. 노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 자전거행진에참여한 세희아빠 ⓒ 안병주


열심히 했지요. 뭔가 바꿔보고 싶었어요. 우리 회사 노조는 굉장히 단단해요. 단체 협약이 잘되어 있어서 회사가 외주 문제 결정할 때도 노조랑 상의해야 할 정도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답답한 게 있었어요. 우리 회사 노조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전체적으로 너무 어려워졌어요. 쌍용차 문제도 있고, 여기 저기 정리해고다, 비정규직 문제다... 해결되지 않고 산적한 문제들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그게 노조 활동하면서 내내 부대꼈어요. 그런데 노동운동한다는 분들 만나면 막걸리 먹으면서 과거 타령이나 하고...

그게 별로더라고. 과거 얘기가 아니라, 현재를 바꿔야 하는데, 의기투합이 잘 안 돼서 답답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노조 활동을 중단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어요. 노조 활동하면서 매 주말마다 집회다, 수련회다, 뭐한다 하면서 시간을 못 보냈거든. 세희랑 세희 동생 경원이는 점점 커가는데,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별로 없겠더라고. 그래서 노조 활동 접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 그런데 세희가 그렇게 된 거예요. 내가 팔자가 그런가 봐(웃음). 결국 요즘은 어디랄 것도 없이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다니고 있잖아.


세희는 아빠 말이 맞다고 믿는 아이였다. 자기 고집 세우던 일도 지나고 보면 아빠 말이 맞았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부터 늘 아빠 말을 따랐다. 수학여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에도 담겨 있다. 가기 싫다던 수학 여행을 떠난 길에도 아빠의 조언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세희는 아빠 말을 믿는 아이였어요. 아빠 조언이 맞다는 경험을 많이 하고서 더 그랬지. 아빠 생각에는 이럴 거 같아 라고 하면, 그걸 따랐지. 강요하지 않았는데 세희는 그랬어. 수학 여행갈 때도 배 타고 가기 싫다고 하는데 내가 그랬거든. 배 타고 가면서 친구들하고 친해지고 좋은 거다. 그리고 그렇게 큰 배는 위험하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겨도 하라는 대로 잘 따르면 별 일 없을 거야.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와... 그런데 그 일이 생겼잖아요. 내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 이후로는 세희 동생 경원이한테 아빠 말대로 하라는 말을 못하겠어. 미치겠어.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그는 수원에서 평택까지 익숙했던 길을 달렸다. 굴뚝이 보이는 쌍용차 정문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김정욱과 이창근, 그리고 그의 동료들 앞에 섰다. 힘차게 '투쟁' 구호도 외쳤다. 노조 위원장으로 외쳤던 구호였고 세월호 가족으로 외치고 있는 구호다.



▲ 쌍용차자전거행진 마치고 발언하는 세희아빠 ⓒ 정택용


 

제가 여기를 자주 왔어요.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왔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세월호 가족으로 왔습니다. 늘 함께 해 왔지만 오늘은 남다릅니다. 누구나 함께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일로 겪게 되는 일 앞에서는 또 달라집니다.

세월호가 그렇고 쌍용차 해고 문제가 그렇습니다. 사건을 겪으면서 더 뚜렷하고 아프게 와 닿는 게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남의 일이지만 내 일처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런 일은 닥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김득중 지부장과 세희아빠 ⓒ 노순택



    

그가 '행진'에 동참한 이유

세희가 없는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그와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지난해 초에 네 가족이 함께 떠났던 일본 여행 같은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곳 온천에서 엄마와 세희가 함께 보았던 별도 이제 볼 수 없음을 안다. 아빠는 일을 할 때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잊혀지지 않는 것을 계속 잊지 않기 위해서 간담회를 다니고, 집회를 다니고,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그를 요청하지 않아도 필요하면 간다. 지난해 4월 말 세희를 일찍 찾았지만 팽목항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 곁에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오랫동안 그 곁을 지키기도 했다. 의경으로 근무하던 21년 전 서해 페리호 사고로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겪기도 했고, 비슷한 참사로 사랑하는 세희를 잃기도 했기 때문에 그는 잘 안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 잊지 않는 사람들이 없으면 모든 것은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을 안다. 그래서 쌍용차 희망행진을 위한 자전거 길에 나섰다.

경원이는 누나가 다니던 단원고에 입학했다. 누나를 잘 따르던 아이. 맞벌이 부모님 대신 자신의 밥을 챙기고 보살피던 누나를 잊지 못하는 경원이가 단원고 1학년이 되었다. 우연하게도 누나의 2학년 반, 번호와 같다.

그런 경원이에게 아빠가 자신있게 다시 "아빠 말을 믿고 따라도 된다"고 말하는 시간이 와야할 텐데. 좋은 세상을 위해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그가 웃는 세상이 되어야 할 텐데...

굴뚝 위에 있는 사람들, 세월호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함께 웃는 날이 온다면 그때 열심히 살아온 아빠 말이 맞다고, 아빠는 경원이에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세희도 아빠에게 "아빠 잘했어. 아빠 말은 언제나 늘 옳았어. 괜찮아요" 말해주지 않을까. 세희 아빠 임종호씨의 자전거 행진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이가 굴뚝을 향해, 세월호 진실을 위해 마음 모을 수 있기를.



▲ 굴뚝농성장 앞에서 발언하는 세희아빠 ⓒ 정택용



2015. 3. 10. 오마이뉴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오마이뉴스] 아빠 말 믿은 딸아이, 세월호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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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차] 고공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지원은 인권조치입니다.[쌍차] 고공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지원은 인권조치입니다.

Posted at 2014.12.24 16:16 | Posted in 활동소식/이슈&사람

지난 12월 22일 쌍용자동차 김정욱, 이창근 두 명의 해고자가 올라가 있는 70m 굴뚝을 찾았습니다.

사람 얼굴은커녕 그나마 손을 힘차게 흔들어야 '저기 사람이 있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거라도 해야 겠다 싶어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안보이는 2014년 겨울.

사진 몇장으로 대신합니다.


ⓒ 안병주


ⓒ 안병주


 

ⓒ 안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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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주



ⓒ 안병주


ⓒ 안병주



[관련기사]

"쌍용차 굴뚝 농성장에 하루 세끼 제공하라" | 오마이뉴스

"혹한 속 굴뚝 농성자에겐 '따뜻한 밥'도 사치?" | 프레시안

“쌍용차, 굴뚝 농성자 인도적 지원하라” | 한겨레


“고공 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지원은 인권조치입니다”
- 쌍용차의 인도적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인권단체 요구사항 -


1. 인도적 조치의 필요성

농성 시작한지 만 하루가 되어서 식사와 약간의 물품이 전달되었습니다. 사측은 농성중인 동료들을 걱정하는 해고 노동자들이 방한용품과 통신수단 유지를 위한 배터리 충전을 요구하자 ‘농성이 길어질 수 있다’ ‘그 정도도 결의 못한 거냐’ ‘호텔처럼 다 갖추려 하느냐’는 등의 대답으로 거절했습니다. 15일 “절대 타협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힌 이후 ‘하루 단 한번 그것도 밥과 물 외에는 전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고했습니다.

현재 상황은 하루 한번 식사가 올라가고 최소한의 온수만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두 농성자가 신뢰할 수 있는 이가 확인 가능한 굴뚝 앞에서 직접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준비한 배터리는 당연히 한계가 있으며 그 마저도 온도가 낮아 쉽게 방전되고 있습니다. 가지고 올라간 1인용 텐트와 비닐은 비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입니다.

농성자들은 허리와 달팽이관 등의 치료를 받아오는 상황이었습니다. 혹한에 동상은 물론이거니와 지병이 악화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굴뚝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불완전 연소되는 유해 연기에도 노출되어있습니다.

이에 우리 인권단체들은 농성자들이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꺽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기본물품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인도적인 조치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에 대해 쌍용자동차 사측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2. 요구사항

첫째 식사는 매번 끼니마다 제공되어야 합니다. 현재처럼 하루 한번만으로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둘째 식사등 물품 지원은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에 의해 전달되어야 합니다.
셋째 혹한의 고공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방한용품(텐트, 따뜻한 물과 방한기구 및 전기, 방한복과 침낭 등)은 제공되어야 합니다.
넷째 70미터 고공에서 필요한 의사소통은 절대적인 권리입니다. 의사소통에 필요한 통신수단(배터리와 전기)는 제공되어야합니다.
다섯째 농성이 일주일을 넘기고 있습니다. 의료진의 건강검진과 치료, 의약품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여섯째 생리현상을 해결 할 수 있는 간단한 위생시설이 공급되어야합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제공은 농성자의 요구사항과 별도로, 어떤 상황과 어떤 처지에서도 모든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이며, 조건임을 확인합니다. 이를 요구하는 것은 절대 과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를 지키는 것이 아주 필수적이며 기본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쌍용자동차 사측이 이러한 인도적 조치를 빨리 시행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갈등과 반목은 절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도적 시각으로 이를 요구하며 이에 대해 끝까지 주시할 것입니다.


2014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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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찰은 무슨 근거로 인도를 틀어막는가![현장] 경찰은 무슨 근거로 인도를 틀어막는가!

Posted at 2013.08.26 14:55 | Posted in 활동소식/이슈&사람
지난 8월 24일, 서울에서는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 그리고 문화제가 진행됐습니다. 서울역에서 진행된 집회를 마치고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집회 참가자들은 공식적으로 해산했습니다. 모두들 깃발을 내리고 문화제가 예정된 광화문 광장으로 각자 인도를 통해 이동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인도 곳곳을 경찰이 막아서면서 발행했습니다. 경찰은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인도의 대부분을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막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통행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는 항의가 시작됐고, 급기야 몸싸움까지 일어났습니다. 이를 빌미로 경찰은 캡사이신을 무차별적으로 분사하고 시민들을 연행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래는 관련 영상과 현장 사진입니다.


동아일보 앞 인도입니다. 사람하나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인도를 완벽하게 막아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변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 많은 시민들이 항의를 했으나 돌아온 것은 캡사이신 분사였습니다.

아래 영상은 권영국 변호사의 항의 장면입니다. (촬영 : 안병주)






 

광화문 광장 주변 이면도로 까지 시민들의 통행을 막았습니다. 밥을 먹으러 간다는데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강하게 항의하면서 이유를 대로가 하자 고작 한다는 말은 '범죄예방'이었습니다.


경찰은 '법치'를 주장하면서 막상 자신들은 법에서 정한 경찰의 권한과 의무를 무시한채 막무가내 모습을 보였습니다.


도대체 왜! 시민들의 통행을 막는 것입니까.


 

무슨 범죄예방을 이런식으로 한답니까.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범법자'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세종문화회관쪽 인도입니다. 집회시위를 근본적으로 방행하는 차벽에서 이제는 인간벽을 쌓습니다.
이들은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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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에 부는 바람, 우리가 만드는 희망!송전탑에 부는 바람, 우리가 만드는 희망!

Posted at 2013.04.17 10:33 | Posted in 활동소식/이슈&사람


지난 4월 15일, 쌍용자동차 송전탑 농성 147일째 되던날. 다산인권센터와 인권교육온다의 활동가들은 아침부터 평택 송전탑 농성장으로 향했습니다. '147'이라고 씌어진 표지판이 괜히 얄밉게 보입니다. 


하지만 송전탑에 올라있는 한상균, 복기성님은 여전히도 힘찬 목소리로 우리를 반깁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디면서 많이 힘들고 지쳤을 텐데...시간이 무심하게 느껴집니다. 추위가 물러가니 이젠 봄바람이 불어닥칩니다. 송전탑 아래 천막 한동이 바람에 쓰러졌습니다. 강한 바람에 송전탑도 휘청일 텐데...걱정입니다. 


일단 우리는 농성장 상징물인 녹슨 송전탑을 꾸미기로 했습니다. 녹을 제거하고 하얀 페인트와 예쁜 꽃을 그려넣었습니다. 복기성님은 자기들이 올라있는 송전탑도 좀 칠해달라고 농담을 건넵니다. 하하. 쓱싹쓱싹 녹가루를 뒤집어 쓰면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송전탑에 자주 오긴 했지만 밥을 올려준 것은 이 날이 처음입니다. 매끼니를 이렇게 올려주나 봅니다. 웃으면서 도시락을 받아줍니다. 일상이 되어 버린 듯 합니다. 땅에서 밥을 먹을 날,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프로젝트. 상추심기! ㅋㅋ 와락에서 얻어온 텃밭상자에다 상추, 치커리를 심었습니다. 한달 뒤면 상추를 된장에 쿡 찍어 쌈싸먹을 생각을 하니...좋습니다. ㅎㅎ


생명이 움트는 봄. 그 봄을 하늘에서 맞는 이들의 아픔이 결코 아픔으로만 남지 않도록 마음을 담아 꼭꼭 심었습니다. 


부디 송전탑에 올라있는 분들이 얼른 땅에 내려와 함께 쌈을 싸먹을 날을 기대합니다. 


세번째 프로젝트. 몇달전 송전탑에 오셨던 분들이 그려놓은 그림이 색이 바래고 지워져서 덧칠을 좀 했습니다. 근데, 시간이 없어서...반만 그렸다는 거...나머지는 다음주 월요일 오시는 분들이 채워주시길~~~



이제 퇴근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함께간 랄라는 손 흔드는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차창밖으로 손을 흔들어주고 크락션을 울려주는 노동자들을 보니 왠지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공장안에 있는 노동자, 공장밖으로 쫒겨난 노동자. 사실 마음은 같을 것입니다.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들의 마음이 저 높아만 보이는 쌍용자동차 공장 안으로 넘실넘실 흘러들어갑니다. 


또다시 먹튀논란에 휩싸여 있는 쌍용자동차. 쫒겨난 노동자들은 아직도 회사 걱정이 태산입니다. 십수년을 일했던 그 일터가 또다시 자본에 의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겠지요. 이들의 간절한 바람에 대한 권력과 자본의 대답은 아직까지도 싸늘합니다. 


매일 이어지는 저녁 촛불문화제도 했습니다. 조촐하게 진행된 촛불은 참여하신 분들의 인사와 노래가 곁들여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권교육온다 활동가들의 무척이나 썰렁한 노래로 송전탑 위와 아래를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다는...???


공교롭게도 생일을 맞은 메달의 생일파티도 빼먹지 않고! ㅋㅋ 케익은 송전탑 위로 올려드렸습니다. 잘 드셨나요? ^^


아이고...이 분들. 자신들이 꾸민 송전탑 앞에서 궂이 인증샷을 찍어야 겠다고 하길래. 카메라 들이댔더니 요염한(?) 포즈를 취하십니다. 쿨럭....여튼! 퀴즈 하나~! 이 분들의 공통점은 인권교육온다 활동가들인데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거 빼고. 하나 더 있거든요. ㅋㅋ 뭘까요????? 맞추시는 분께는 소정의 상품(?)을 이 분들이 드린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ㅎㅎㅎㅎ

다음주 월요일 송전탑에서 다시 만날께요~~~

■ 글.사진 : 안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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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차희망걷기] 우리가 간다, 쌍차문제해결하라[쌍차희망걷기] 우리가 간다, 쌍차문제해결하라

Posted at 2013.02.14 16:22 | Posted in 공지사항



희망걷기에 참여해주세요.
우리들의 걸음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세상을 바꿀 이웃의 마음은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쌍용자동차 희망걷기 일정>

20일(수) 9시 송전탑 결의대회 / 평택 10시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 기자회견 (도보) 송탄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 / 3시 새누리당 경기도당 (도보) 수원역 / 7시 수원역 촛불 문화제


21일(목) 9시 경진여객 / 11시 명학역 2번 출구 (도보)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사무실 앞 집회 (도보) 과천 코오롱 천막 농성장 / 5시 과천종합청사
역 선전전 / 7시 30분 코오롱 천막농성장 촛불문화제

22일(금) 10시 마힌드라사 앞 집회 (도보) 구로 쌍차정비공장 (도보) 민주당사 (도보) 새누리당사 앞 촛불 문화제

23일(토) 10시 대한문 (도보) 정부종합청사 (도보) 청와대앞 기자회견 (도보) 시국대회장소(시청)

<참여 문의>
031-213-2105 / 017-268-0136 / ssnodong@gmail.com

<후원> 
261501-04-128078 국민은행 백승연[쌍차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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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경찰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에서 병력을 철수하라![성명] 경찰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에서 병력을 철수하라!

Posted at 2013.02.06 13:12 | Posted in 논평,성명,보도자료

경찰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에서 병력을 철수하고 
강제연행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를 석방하라!
 

강제 해산되는 인천 콜트악기공장 점거농성자 (출처 : 연합뉴스)




이 겨울, 또다시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콜트콜텍 사장 박영호 라는 악덕기업주에 의해 정리해고를 겪은 것도 부당한데, 이제는 용역과 경찰이 싸움의 근거지인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콜트악기 부평공장)을 해고노동자, 문화예술가, 인권활동가에게서 앗아갔다. 2월 1일은 법원이 대체집행을 하더니 2월 5일은 경찰이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에서 농성중인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2월 5일 오전 7시 58분 인천지방경찰청(청장 이인선)은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의 집에서 방종운 씨(콜트지회장) 등 노동자들, 문화예술인들, 인권활동가들 13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이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미란다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다.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집행이다. 이뿐만 아니다. 경찰은 문을 도끼로 부수고 들어왔고 2층 창문에서 농성자들이 매달려 항의하고 하고 있었음에도 매트리스 설치와 같은 안전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또한 연행과정에서 콜텍지회 임재춘 조합원은 갈비뼈 골절이 의심되어 세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야 했다. 연행된 사람들은 인천 계양경찰서, 부평경찰서, 서부경찰서 등에 흩어져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삼산경찰서는 변호인 접견이나 면회조차 거부했고 이후 항의가 이어지자 겨우 오후 늦게 면회를 허용하였다. 경찰은 2월 5일 저녁에서야 장석석 씨 등 11명을 석방했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의 집에서 벌어진 경찰이 자행한 강제연행의 부당성과 반인권성은 다시금 공권력이 누구의 편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그토록 민생을 얘기하고 있건만 그 이야기가 위선이고 거짓인지 이 사건으로 다시금 확인됐다. 정부는 콜트콜텍 박영호 사장의 위장폐업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 박영호 사장은 법원이 정리해고가 부당하니 복직시키라는 판결도 무시한 채 정리해고를 또다시 감행했다. 정리해고 된 이후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 7년 동안 싸우면서 해고노동자들은 박영호 사장이 버리고 간 공간을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의 집으로 바꾸어놓았다. 이곳에는 해고노동자들뿐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이 다양한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며 꿈꾸고 숨 쉬는 창작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2월 1일 법원의 대체집행과 2월 5일 경찰의 강제연행으로 작품들이 훼손되고 있다.

현재 경찰은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의 집에 엄청난 병력을 배치하고 있으며 공장 주변에 높이 3미터 팬스를 설치하면서 출입을 금지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상황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경찰이 당장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의 집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연행과정에서의 불법성과 폭력성에 대해 경찰에게 책임을 반드시 묻고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촉구한다. 아직 경찰서에 있는 이동호(콜트사부장)씨, 방종운(콜트지회장) 씨에 대해서도 경찰은 즉각 석방해야 한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 기쁘게 일할 수 있도록, 콜트콜텍 박영호 사장이 노동자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공장재가동을 약속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할 것이다.
 

2013년 2월 5일

인권단체연석회의
[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구속노동자후원회,광주인권운동센터,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다산인권센터,대항지구화행동,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HIV/AIDS인권연대나누리+,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울산인권운동연대,원불교인권위원회,이주인권연대,인권교육센터‘들’,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평화인권연대,한국교회인권센터,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DPI,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이상전국42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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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삼성노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 축하합니다~[활동소식] 삼성노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 축하합니다~

Posted at 2013.02.04 17:52 | Posted in 활동소식/이슈&사람


오늘(2/4) 삼성그룹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처음으로 집단가입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에버랜드 정문 앞에서 진행했습니다. 최근까지 '삼성노조'라는 이름으로 상급단체 없이 어떻게 보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던 삼성 노동자들이 더욱 활발한 조합활동을 위해 지난달 14일 금속노조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최근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을 은폐 조작하려는 삼성의 파렴치함은 과거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려는 시도에 대해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을 자행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짓입니다. 언제나 기업의 이윤, 기업의 이미지만을 생각하면서 삼성내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징계와 해고,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던 삼성. 이번 기회를 통해 삼성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엄중이 묻고 따지고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을 모으게 됐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삼성지회'
이제 삼성노조의 공식적인 이름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당당하게 명찰을 달고 더욱 활발한 활동을 다짐하는 이 분들께 우리 모두가 격려와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해고와 징계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면서 웃음 잃지 않고 싸우는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있네요. 더 힘든 길, 어려운 시간이 우리 앞에 닥쳐 온다고 해도 함께 하는 이들과 토닥토닥 서로 힘주면서 싸운다면, 이씨왕조 삼성에서 우리의 권리는 더욱 확장 될 것입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관련기사>

<기자회견문> 

노동계, 삼성을 경제민주화 첫 시험대로 만들어야
삼성그룹 노동자 민주노총 금속노조 처음으로 집단가입
 
지난 1월 14일, 삼성그룹노동자들이 최초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집단 가입하였다. 삼성노조는 2011년 7월 12일 노조를 설립했지만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채 힘겹게 활동을 벌이다 이번에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삼성노조에서 공개조합원으로 활동해온 조합원들이 1차적으로 금속노조에 가입하였으며 이후 상황에 따라 추가가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삼성노조의 설립시기(2011.7.18)에서부터 노조간부들을 차례로 징계해 왔다.(2011년 7월 조장희 부지회장 해고, 11월 김영태 회계감사 정직, 2012년 5월 박원우 지회장 징계, 7월 김영태 회계감사 폭행, 2013년 1월29일 백승진 사무장 정직 2개월 징계 등)
이러한 삼성의 무노조전략에 따라 삼성그룹의 노동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그룹차원의 노조탄압 공포에 짓눌려 왔다. 삼성노동자들은 강력한 보호막을 필요로 했고 삼성지회는 현장 노동자들의 요청에 따라 민주노총의 핵심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 가입하였다.
 
민주노총의 핵심 산별조직인 금속노조가 삼성그룹의 사측을 직접상대하게 됨에 따라 무노조를 고집해온 삼성그룹에 어떤 변화가 발생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금속노조는 산별노조로서 각 개별기업 노동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하는 산별노조와 달리 금속노조가 직접 교섭권 등을 가지고 삼성과 상대하게 된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삼성그룹의 오랜 노동인권탄압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며 최근 경제민주화 흐름과 노동권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삼성 측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에서 58명의 노동자들이 백혈병 등 중대질환으로 사망했으며, 납치·감금·폭행·매수 등 노조탄압의 반복되어왔다. 최근 이마트의 노동자 불법감시, 삼성전자의 불산유출 사건은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이 국가정책과 국민들의 노력 속에 성장했음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최근 사회적 화두인 경제민주화는 정치권을 넘어 산업현장의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그룹에 절실한 문제라는 점, 그룹차원의 감시와 탄압으로 삼성 노동자들이 노동인권을 외치다가 해고와 생계에 어려움에 부딪쳐 공포에 짓눌려온 사례들을 볼 때에 이제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 나서서 지속적이고 범사회적인 운동을 통해 삼성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외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금속노조는 삼성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비롯한 활동을 전국적·지속적·직접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삼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확대하기 위해 사회각계각층에 범국민적 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시민사회에서도 삼성노동권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 삼성의 사회적 지배력에 대한 분석과 공유를 위한 각종 활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복지와 함께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단지 재벌회사들의 지분소유나 거래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현장의 민주주의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후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정치적 말잔치가 아닌 실질적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데 삼성그룹은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한국 재계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이 과연 구태에 연연할 것인지, 구태를 버리고 전향적 태도를 보일 것인지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지켜보며 노력해야 할 때이다.
 
2013. 2. 4.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삼성지회. 삼성노동권감시(준). 다함께. 이윤보다인간을. 인권단체연석회의(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구속노동자후원회,광주인권운동센터,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다산인권센터,대항지구화행동,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HIV/AIDS인권연대나누리+,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울산인권운동연대,원불교인권위원회,이주인권연대,인권교육센터‘들’,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평화인권연대,한국교회인권센터,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DPI,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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